[신년 대담]2011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그의 등장은 구태정치로 인한 염증을 새정치에 대한 희망으로 바꾸기 충분했다. 국민도 여론도 정치권도 술렁였다. ‘신드롬’이란 단어가 수식어 처럼 따라 다녔고 ‘살아있는 위인’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안.철.수. 이 이름 석자가 몰고온 바람은 일시적 광풍을 넘어 대한민국 정치 패러다임 전환으로 이어졌다. 존경받는 학자, 공익을 추구하는 CEO 등 머문 곳마다 ‘소신과 신념’의 길을 걸어온 그.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 전격 양보를 하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가 지난해 서울 노원구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여의도에 입문하는데 성공했다. 아직 국회 입성 8개월 의 초보 정치인임에도 무게감은 이미 3선 의원 이상이다. 최근에는 신당 창당 작업으로 동분서주하면서 차기 가장 강력한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의사’ 출신이라는 동질감의 발로일까? 의료계는 이러한 안철수 의원의 행보에 유독 관심이 높다. 더욱이 규제 일변도식 정책에 의해 위기감이 극에 달한 작금의 상황을 타개해 줄 것이란 기대감도 감추지 않는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보건의료 전문지 최초로 2014년 갑오년 새해 안철수 의원과 ‘대한민국 의료계의 위기’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안철수 의원은 의료계가 주장하는 ‘위기론’에 십분 공감을 나타냈다. 결코 의사들이 소신진료를 행할 수 없는 구조라는 안타까움도 전했다.
그 원인으로는 십 수년 간 지속돼 온 ‘저수가’를 지목했다. 원가 이하의 진료비 수가로 인해 의사와 환자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안철수 의원은 일선 병의원들이 현행 수가로는 운영이 어려워 비급여로 보전해야 하는 상황을 개탄했다. 비급여를 부추기는 기형적 구조라는 얘기다.
때문에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정부가 아무리 보장성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은 계속 증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철수 의원은 “정부는 보장성 강화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건강보험에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것처럼 생색을 내지만 실제 국민들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작금의 상황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하석상대(下石上臺)에 불과하다”며 “이러한 방식으로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은 "이러한 기형적 구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수가 현실화’가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의사의 진료행위에 정상적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의료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이 뒷받침 돼야 한다”며 “진료비 손실분을 비급여로 대체하는 작금의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피력했다.
다만 안철수 의원은 수가 현실화의 전제 조건으로 ‘점진적 정상화’를 제시했다. 수 십년 간 누적된 저수가를 일시적으로 현실화 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판단이다.
안 의원은 “갑작스럽게 수가를 현실화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점진적 개선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모든 비급여를 급여 영역에서 보전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주된 원인으로는 ‘소통 부재’를 꼽았다. 박근혜정부는 물론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소통의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안철수 의원은 진단했다.
우선 정부는 의사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수 많은 의료 현안들이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는 첨언도 곁들였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진주의료원 사태를 지목했다. 폐업 과정에서 토론과 합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홍역을 치러야 했다는 주장이다.
안철수 의원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인데 현 정부는 이를 도외시하고 있다”며 “대화와 합의를 통한 해법찾기가 늘 아쉽다”고 토로했다.
‘소통 부재’는 의료계 내부도 마찬가지다. 보건의료는 이해관계가 첨예한 분야인 만큼 소통의 노력이 필수이지만 각 직역들은 이를 게을리 하고 있다는 아쉬움의 표현이다.
의사와 한의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대학병원과 개원가 등 각각의 직역과 직능이 대립각 세우기는 능숙하지만 정작 대화를 시도하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부처 간 소통 문제도 짚었다. 보건의료 분야 특성상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외에 타 부처가 관여해야 일이 잦지만 이 과정에서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안철수 의원은 “부실의대 문제는 이를 잘 방증한다”며 “의사 교육은 국가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복지부, 교육부, 청와대까지 협의가 이뤄져야 하지만 부천 간 벽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의료 분야의 소통 부재를 해결하기 위한 가교 역할을 기꺼이 자청했다. 지난 연말 개최했던 '원격의료 및 의료 영리화' 긴급토론회 역시 그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보험자인 정부나 공급자인 의료계, 소비자인 환자 모두 대화를 통해 해결책 찾기에 나서야 한다”며 “앞으로 소통 문화 정착에 이바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야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그는 의사다. 아버지 역시 서울의대를 나와 부산에서 40년 넘게 의원을 운영한 의사이고, 동생도 현재 서울에서 한의원을 개업 중이다.
의사 집안 출신인 만큼 누구보다 의료계 고충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의료계의 위기론에 애잔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은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청마(靑馬)의 해에는 부디 의사들이 사명감과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의사들이 일하는 만큼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며 “의대 나온 사람으로서 입법 활동에 의료계 현실을 잘 반영토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틈틈이 의료계 현장에 나가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다짐도 전했다. 실제 안 의원은 최근 서울의대 동창회 등 의료계 모임 참석 빈도가 부쩍 잦아졌다.
가톨릭학생회 출신 자격으로 묵묵히 이주 노동자 무료 진료소인 라파엘클리닉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는 것 역시 의료현장의 고충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함이다.
안철수 의원은 대담의 말미에서 의사들에게 "병(病)이 아닌 사람을 고치는 인술(仁術)을 펼쳐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하루 100명씩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 일상에 매몰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힘들 수록 의사는 병이 아닌 사람을 고치는 직업이라는 사명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의 소명의식이 대한민국 의료를 건강하게 지켜낼 것”이라며 “그 믿음으로 국회에서도 잘못된 의료제도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