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27년이다
.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통상 행보인 청와대 파견이나 교육도 없이 보건복지부 본부에서 청춘과 열정을 불살랐다
. 국장 취임 직후 스위스 제네바 한국대사관 파견이 공직생활의 유일한 외도
(?)였다
. 그는 타고난 일복인지
, 특유의 성향 탓인지 확언할 수 없지만 유독 사업부서와 오랜 연을 이어왔다
. 때문에
‘돌격대장
’이라는 수식어가 늘 수반됐다
. 특히 직역 및 직능 간 갈등의 고리가 얽혀 있는 보건의료정책이 그의 주된 전장
(戰場)이었다
. 그동안 최전선에서 선 굵은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그가 이제는 보건의료정책의 큰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수립하는 야전사령관을 맡았다
. 그 간의 연륜과 특유의 논리력이 빛을 발할 때가 왔다
.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난 김강립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공직생활 마지막 여정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겠다
”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
우문현답
그가 후배 공무원들과 술자리에서 늘 외치는 건배구호는 ‘우문현답’이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있다’라는 의미다. ‘탁상행정’을 탈피하자는 구호이기도 하다.
현장중심 정책에 대한 소신은 그의 행보에도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각을 세울 때마다 그는 늘 현장에 있었다.
지난 2015년 9월 보건의료정책관으로 발령 받았을 당시는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반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김강립 실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현장을 찾았다. 전국 15개 지역을 돌며 의사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의견을 듣고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의약분업 이후 무너진 신뢰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새롭게 입안하려는 정책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숨겨진 의도부터 찾으려 애쓰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불신의 시발을 잘 알기에 보듬고 설득하는 수고를 마다할 수 없었다. 때로는 정중한 사과로, 때로는 진심어린 다짐으로 다가갔다.
성토를 쏟아내던 의사들도 차츰 비난조에서 타협조로 바뀌었다. 진심이 통하자 대화가 풀렸고, 좀처럼 회복이 힘들어 보였던 신뢰도 다시금 쌓이기 시작했다.
김강립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의약분업 이후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 함께 추진해야 하는 보건의료정책에 걸림돌이 된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어 “무너진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했고, 나름 의미있는 성과들이 도출됐다”며 “이제부터는 국민건강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협심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공동추진
전문가평가제와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김강립 실장은 보건의료정책관 재임 동안 가장 의미있는 성과물로 주저없이 이 두 사업을 꼽았다.
정부 주도가 아닌 의료계와 함께 공동추진 하는 사업으로, 그동안 요원했던 관계 회복의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곁들였다.
실제 의료인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감시하는 전문가평가제(동료평가제)는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마련했고, 지역의사회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은 11월부터 6개월 간 광주, 경기, 울산에서 진행되며, 구체적인 제도 모형을 확정하고 필요 시 제도 도입을 위한 법·제도 개선이 추진될 예정이다.
김강립 실장은 전문가평가제를 자율징계권의 시작이라고 평했다. 의협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징계 양형을 결정하면 복지부가 그대로 처분을 내리는 만큼 사실상 자율징계권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사실상 의사들의 자율징계권이 시행된 것”이라며 “의사들 스스로 권위를 지키고, 국민 신뢰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도 의미있는 변화다. 사실 의료계가 오랜기간 ‘원격의료’ 프레임에 갖혀 있었던 만큼 복지부가 이 사업 계획을 내놨을 때만 해도 반발이 예상됐다.
하지만 ‘원격의료’와 분명히 선을 긋고, 참여율 독려를 위한 보상기전을 마련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의사협회와 손을 잡고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실제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은 대상기관 선정부터 향후 평가까지 복지부와 의사협회가 공동추진 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이 사업에는 1870개 기관이 선정됐고, 1392곳이 등록을 완료했다.
김강립 실장은 “의료계와 함께 진행하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나아가 의사 주도로 만성질환 환자들의 건강관리가 이뤄진다는 측면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향후 과제
보건의료정책실은 보건의료정책관과 공공보건정책관, 한의약정책관, 건강정책국, 건강보험정책국, 보건산업정책국 등 6개국 22개 부서로 구성돼 있다. 소속 직원도 200명이 넘는다.
그만큼 아울러야 하는 정책도 많다. 직제 부서들의 담당정책의 무게감이 적잖은 만큼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하지만 그는 ‘준비된 보건의료정책실장’이라는 내외부의 평가에 걸맞에 벌써부터 각 분야 정책의 맥(脈)을 간파하고 전략 수립에 한창이다.
현재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사업이 바로 2차 상대가치 개편이다. 저평가 돼 있는 수술‧처치를 인상하고 고평가 된 검체‧영상을 인하하는 명제는 정해졌지만 세부작업은 아직 조율 중이다.
김강립 실장은 2차 개편이 7부 능선을 넘은 만큼 이제부터는 3차 개편을 준비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미 방향까지 설정해 놨다.
1차가 진료과목, 2차 행위별 개편이 골자였다면 3차는 15년 동안 제자리 걸음 중인 진찰료와 입원료를 손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다음 상대가치 개편은 진찰료와 입원료가 될 것”이라며 “다양한 종별과 직군에 대해 일괄 적용 원칙은 비합리적이다. 이러한 부분을 집중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산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수출지표 등을 통해 ‘신성장동력’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의료산업을 육성,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강립 실장은 “다른 분야들이 수출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도 보건의료산업은 20%의 성장을 기록했다”며 “육성 필요성이 충분한 만큼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강립 보건의료정책관은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와 미국 시카고대대학원 사회복지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행정고시(제33회)에 합격해 첫 공직에 입문했으며 보험급여과장, 장애인정책팀장, 의료정책팀장, 보건의료정책과장, 보건산업정책국장, 사회서비스정책관, 연금정책관 등을 역임했다.
2012년 1월부터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에 파견됐고, 지난해 9월 복지부로 복귀해 보건의료정책관으로 재임했으며 최근 보건의료정책실장으로 발령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