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숙경기자. 기획 1]어쩌면 그들의 정체는 영원히 비밀로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누구도 쉽게 짐작하지 못했고 아무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이었다. 마치 유령과도 같았던 그들의 존재는 지난 5월 부산의 한 정형외과 의원에서 척추 수술을 받던 환자가 사망하면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최근 3년간 42차례 대리수술이 이뤄졌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1. “척추성형술(vertebroplasty), 척추의 압박골절에서 사용되는 시술로 간단한 수술인 경피적 척추후굴복원술 (kyphoplasty) 할 때 피부 국소조직에 리도카인 마취를 해야 하는데 한쪽은 의사가 하고 반대쪽은 의료기기업체 사장이 맡습니다. 이후 메스로 1cm정도 절개합니다. 이 역시 한쪽은 의사가, 반대쪽은 그 사장의 몫입니다.
척추 바늘(의사가 칭하는 명칭)을 ‘C arm’으로 관찰하며 척추 중심부까지 삽입합니다. 이후 가이드 핀을 넣어 교체를 합니다. 이 부분에 핸드드릴 같은 걸 넣어 풍선카테터가 들어갈 공간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도 의사와 의료기기업체 사장의 역할 분담이 이뤄집니다. 그곳에 풍선카테터를 넣어 공간 확보를 하는 것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 사장이 있는 경우에는 직원이 함께 와서 시멘트를 섞습니다. 업체에서 시멘트를 섞고 준비를 하고 시멘트 주입을 한쪽은 의사가, 반대쪽은 의료기기업체 사장이 합니다. 봉합 (suture) 마무리까지도 말입니다. 때로는 의사가 양쪽 다 하기도 하지만 풍선척추성형술(kyphoplsty), 척추성형술 (vertebroplasty)은 주로 사장과 좌우 반씩 나누어 시행 했다고 보면 됩니다”
#2. “PLIF 수술(스크류 박는 수술)을 할 때는 어시스트를 하는 직원이 소프트티슈 등 일부를 절개한 적도 있습니다. 전기수술기(bovie)가 직원 손에 들려 필드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기수술기를 쓸 때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공공의료기관도 피하지 못한 대리수술 논란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가 진행된 본관 654호실에서는 수술실의 한 영상이 빔프로젝트를 통해 공개됐다. 수술용 모자와 가운을 입은 성인 남성이 지목됐는데 줄곧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그가 의료진이 아닌 의료기기 회사의 영업사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순간 국감장은 술렁였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은 혀를 찼다. 특히 의사 출신인 윤일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국립의료원 소속 의사가 수 년 간 의료기기 회사 사장과 직원을 대리수술을 시켰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국립의료원 내부감사 결과와 함께 적나라한 실상에 분통을 터뜨렸다.
내부감사에 따르면 지난 9월 21일 대리수술 의혹을 제기한 내부자 1인 외에 내부자 3인(의사 2명, 직원 1명)과 외부자 1인(의료기기 회사 관계자)이 입을 모아 A과장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의료기기 회사 사장과 직원에게 무려 42건이나 대리수술을 시켰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
5명의 진술 내용도 거의 일치하며, 굉장히 구체적이다. 예컨대, 의료기기 회사 직원이 뼈에 스크류를 박으려고 망치질을 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윤 의원은 “더 놀라운 것은 수술에 참여한 해당 의료기기회사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국립의료원에 의료기기를 대여하거나 납품한 적도 없다는 점”이라면서 “그럼에도 수술장 방문 기록에 대리수술 의혹 날짜와 일치하는 방문 기록이 17건이나 남아 있었으며 2016년 5월 30일에는 이 회사 사장이 수술장 방문 사유를 ‘시술’이라고 적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윤 의원은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감에도 국립의료원은 내부감사를 통해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종결졌다”며 “감사 과정에서도 의료원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한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개인 문제’로 축소하려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것도 같은 이유다.
대리수술, 의사 의료기기 사용법 숙지 과정?
지난 10월 부산의 한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대리수술을 하는 도중에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진 사건, 파주의 한 병원에서도 영업사원에 의한 대리수술을 받은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다.
대리수술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의료기기 특성상 계속해서 성능이 업그레이드되다 보니 의사들이 이를 사전에 완벽히 숙지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변명이 될 수 없었다.
의료기기업체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한 영업사원은 “수술실 방문기록과 출입 내역을 적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라면서 “실제로는 적발된 것보다 훨씬 많은 대리수술이 자행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원들 입만 단속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간 대리수술을 감추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윤일규 의원은 국감장에서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의원이기 전에 30년을 넘게 진료한 신경외과 의사로서 이런 대리수술 의혹에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복지부는 철저한 감사를 해야 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며 의료계 현실을 개탄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의사 사회에 대한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자 의료계 단체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대검찰청을 방문, 무자격·무면허 대리수술 고발장을 제출하는가 하면 젊은 의사들도 “이미 스스로 의사이기를 포기한 이들이 최소한의 도덕·법리적 분별능력마저 상실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의사라는 탈을 쓴 자들이 자행하는 불법에 언제까지나 ‘관행’이라는 이유로 침묵할 수는 없다. 묵묵히 의학을 일궈온 선배 의사들과 미래 국민건강을 책임질 젊은 의사 전체가 대신 비난받는 불편한 현실을 언제까지 감내해야 하는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리수술, 변명의 여지없는 명백한 불법”
사실 PA(진료보조인력) 문제가 편법의 공간에서 성장했다면 이른바 ‘대리수술’은 불법의 토양에서 자라났다. 대리수술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의료기기 회사도 그 어떤 변명의 여지없가 없다는 게 전반적인 목소리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외과계열 C교수는 “새로운 기계나 수술이 나오면 본인이 수련한 병원에 가서 새로운 수술을 익히는 것이 효율적이겠만 그렇게 해주는 종합병원이 어디 있으며 의사는 또 어디 있겠는가. 대략 영업사원에게 배우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새로운 의료기기 도입 초기에 임상 적용 시 작동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영업사원의 조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많은 병원이 신규 장비 도입 시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진행한다. 의료진이 바뀌는 등 사용자의 요구가 있으면 수시로 교육하기도 한다.
일부 의료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행위가 과연 가능 하기나 한 것이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중소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한 D봉직의는 “경기도 소재 지역 4곳에서 봉직을 했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대리수술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새로운 기구가 나와 잠깐 옷을 입고 사용 방법을 설명은 해줬어도 일명 망치질, 꼬메기 등을 시킨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이 안 간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는 환자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라는 것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의료 기관을 찾는 일반 국민의 상식에서는 환자가 잠든 사이에 사전 동의 없이 외부인이 들어와서 나의 수술 장면을 지켜보고, 기기 작동 방법을 알려준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수술실 외부인 참관 시 환자 및 보호자 동의, 환자 동의를 전제로 CCTV 설치, 의료진 이외의 출입자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 출입관리대장 관리방안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간 암묵적으로 이뤄져 왔던 대리수술로 관련 단체는 물론 복지부, 국회에서도 비상이 걸린 상태다. 국민 건강과 함께 의료인의 면허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데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의료인력 부족 등 총체적 대책 마련 시급
의료계 내 대리수술 의사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하면서도 의료인력 부족에서 기인한 복합적인 문제라고 의견도 나온다.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인구 1000명당 OECD 국가 임상 의사 수를 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3명으로 OECD 26개 회원국 중 꼴찌”라고 밝혔다.
軍병원에서도 의료기기 납품업체 직원이 의료행위를 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감사원의 ‘군 보건의료체계 운영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역시 의료인력 부족에서 기인한 문제로 풀이된다.
이번에 대리수술 논란이 더 확산된 것은 군(軍) 병원마저 예외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근 감사원의 ‘군 보건의료체계 운영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A병원 정형외과 담당 군의관 6명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의료기기 납품업체 직원에게 무릎 부상 환자의 전·후방십자인대 수술에서 무릎에 구멍을 뚫게 하는 등 의료 행위를 돕게 했다.
이들은 “의료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감사원은 군의관 6명과 의료기기업체 직원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군의관에게도 경징계 이상 징계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또 지난해 군병원에서 506건의 코 보형물 삽입 수술이 이뤄진 점을 확인하고 수도병원과 양주병원, 고양 병원을 표본으로 선정해 점검했다.
3개 병원에서 이뤄진 코 보형물 삽입수술 171건 가운데 80건은 군복무 중 외상이나 연골결손이 된 사례가 아닌데도 환자 요청 등으로 이뤄진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고양병원에서 축농증으로 입원한 환자는 군의관에게 “코를 높여줄 수 있느냐”고 부탁해 축농증 수술 2주 뒤 코 높이 성형 수술도 함께 받았다.
감사원은 국군의무사령관에게 “앞으로 군병원에서 미용 목적의 코 성형 수술이 시행되는 일이 없게 하고, 지휘·감독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를 줬다.
감사원 조사에서 군의관들은 “의료인력이 부족해 납품업체 직원이 의료행위를 하도록 했다”며 불법행위 사실을 인정 하기도 했다.
의료계 한 인사는 “만약 대리수술을 했다면 대한의사협회 차원에서 자율징계 등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부족한 의사인력 대책을 비롯해 실질적인 해법이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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