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의협 새 집행부 주도권 싸움 '팽팽'
상호 불신 고착화된 상태서 포괄수가제 실타래 풀릴지 주목
2012.06.17 20:00 댓글쓰기

[분석]의사단체가 수술 거부(안과의사회 백내장·의료계는 수술 포기라고 주장)를 선언한 이면에는 더는 정부 주도의 의료정책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7월 시행 예정인 포괄수가제(DRG)는 의정 갈등을 촉발한 불쏘시개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신뢰 부족이 문제를 키웠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중요한 정책 파트너임에도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 비공식 라인을 통해 일부 접촉이 있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복지부 관료들은 의협 집행부를 믿기 어렵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의협 집행부도 굳이 대화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복지부는 의협의 행보를 벼랑 끝 전술, 정치적이라고 비판한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의협이 정부와 대화하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며 "또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이 최근 임채민 복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의전 결례를 이유로 거절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전 예고 없이 공문을 보내놓고, 의전 결례를 주장한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것이다.

 

반면 의협은 복지부가 관료주의에 매몰됐다고 분개했다. 의협 고위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 무작정 끌려다니던 의협은 잊어달라"며 "이제 의사들도 국민건강을 보호하고 전문가 위상을 갖출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복지부가 두 기관이 인정할 수 있는 선에서 포괄수가제를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의협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건의료 틀을 바꾸겠다고 말해왔다. 포괄수가제는 이런 방향성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복지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이 장기국면으로 접어드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복지부-의협, 여론 주시


복지부는 의사단체의 수술 거부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실제 수술 거부가 이뤄지면 관련 법을 통해 면허정지 등의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엄포했다.

 

의협은 오늘(18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포괄수가제에 관한 정부의 강행논리를 비판하고, 여론조사 내용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이번 설문조사가 포괄수가제 정국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갤럽 등 유수 여론조사 기관을 물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환규 의협 회장이 포괄수가제와 민영의료보험을 연계해 정부를 비판한 만큼, 관련 내용이 설문조사에 포함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의협은 실제로 '포괄수가제 = 의료의 질 하락'을 주장해오다, 최근에는 의료 민영화로 대응 방향을 틀었다. 또 포괄수가제로 인해 민영 의료보험 가입자가 손해를 보는 등 여러 부작용이 크다는 점을 환기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협의 주장은 허구"라고 규정한다. 의료 민영화를 강하게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포괄수가제를 지지하고 있는 점을 반박 논거로 삼았다.  

 

관건은 의협의 여론조사가 어떤 결과를 도출하느냐다. 의협은 포괄수가제에 부정적인 의견이 의미 있는 통계로 입증되면 이를 동력으로 삼아 대정부 투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복지부는 의협의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의협의 여론조사는 불리한 여론을 되돌릴 히든카드이기도 하다. 대다수 언론매체가 의협을 비판하는 상황에서 포괄수가제를 반대할 명분이 필요하다.

 

복지부는 현재 여론이 나쁘지 않다는 점을 알면서도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듯하다. 무엇보다 의협에 관한 정보가 없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다. 의사단체 회장 선거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복지위 구성 촉각…의협에 성금 이어져


복지부와 의협의 갈등은 단순히 포괄수가제로 끝날 성격이 아니다. 이 점은 두 기관 모두 인지하고 있다. 당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구성되면 복지부로서는 부담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복지부가 국회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포괄수가제를 밀어붙였다고 진단했다. 복지위가 구성되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란 인식을 보였다.

 

현 의협 집행부는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러모로 국회와의 스킨십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정책 허구성을 면밀히 전달하고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내부적인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수술 거부 신중론을 내비친 조인성 경기도의사회장이 내부적으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 회장은 급기야 의료계의 여론을 따르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 회장과 거리가 있는 일부 시도의사회장들도 바짝 몸을 낮춘 상태다. 취임 초기 윤리위 구성 문제 등으로 공격을 받았던 노 회장은 내부에서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일부 시도의사회를 시작으로 의협으로 성금이 이어지고 있다. 의협은 이러한 여론과 성금을 토대로 정부의 일방통행식 정책에 제동을 걸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복지부도 의협의 행보를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 활동으로 내다봤다. 복지부 당국자는 "솔직히 현 의협 회장이 정치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포괄수가제를 반대해서 이러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통해 안과의사들이 연 평균 4억원 안팎의 매출(비급여 제외)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의협과의 소통을 위해 자료 공개에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칫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복지부와 의협은 앞으로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문제와 참조가격제를 두고 또 다른 일전을 벌일 태세다.

 

참조자격제는 같은 약효를 가진 의약품군에 대해 일정 수준까지만 약값을 건강보험에서 보상하고 이를 넘는 고가약은 차액을 환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건강보험 약제비 비중을 줄이는 정책으로 보이지만, 의료계는 약사의 대체조제가 확대되고 의사의 처방권을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계한다.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대해서도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로 인한 폐해이며 의료계를 압박하려는 수단으로 본다.

 

복지부는 과거 집행부와 전혀 다른 의협의 행보에 적잖이 당황하고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협은 복지부의 이런 반응을 정확이 파악하고 있으며 앞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겠다고 했다.

 

의협 전임 한 간부는 "현 의협 집행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호불호를 떠나 성과가 있으면 내부적으로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정부가 그런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 대화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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