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에게 CT촬영 판독을 맡긴 부산 M병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간의 법정 공방이 눈길은 끈다.
요양급여비 환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현(現)병원장과 전(前) 병원장이 각자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사건을 맡은 재판부의 서로 다른 해석으로 엇갈린 판결이 나왔다.
최근 부산광역시 금정구 소재 M병원 박 모 원장은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재판장 문준필)는 “병원에서 CT장비를 운용하는 비전속 전문의가 병원에 전혀 출근하지 않고 외부에서 일해왔다는 이유로 공단이 요양급여비를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박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해당 판결 6일 뒤 전 병원장인 의사 김 모씨가 낸 소송에서는 공단이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이승한)는 “병원이 특수의료장비 설치인정기준을 위반했고, CT 촬영장치 관련 요양급여비용을 부당 청구했다”며 “급여비 환수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두 소송 모두 1심 판결이고, 현(現) 원장과 전(前) 원장의 변호인, 피고 공단 측 변호인 모두 동일하며 사안 역시 같다. 재판부만 달랐을 뿐이다.
원고 측 소송대리인 허아영 변호사(법무법인 엘케이파트너스)는 "사안은 같은데 사건 당사자인 박 원장과 김 전 원장에게 처분이 각각 내려졌고 2개의 처분서가 존재한다"며 "각 사건의 재판부가 다르게 배정됐다"고 설명했다.
허 변호사는 “판결이 나왔을 때 원고, 의사들이 당황스러워했다"며 "그러나, 양 재판부 모두 공단 측의 운영지침이 법규성(강제성)이 없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공단, 박 원장에 5870여만원·김 前원장에게 4879만원 요양급여비 환수 처분
지난 2011년 M병원은 CT(전산화단층 촬영장치)를 특수의료장비로 등록하면서 영상의학과 전문의 박 모씨를 ‘비전속’ 특수의료장비 운용인력으로 신청했다.
비전속으로 계약된 영상의학과 전문의 박 씨는 병원에 출근하지 않고 의료영상정보시스템(PACS)을 사용해 전송된 영상파일을 판독하면서 전화로 상담하는 방식으로 일해왔다.
이에 대해 공단은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운영지침)’ 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운영지침에는 ‘CT 운용인력으로 영상의학과 전문의와 방사선사를 둬야하며,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전속’ 또는 ‘비전속’으로 1명 이상 둬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단 측은 “비전속이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최소 주 1회 이상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것”이라며 M병원이 요양급여비를 부당 청구했다고 판단, 김 전 원장과 박원장에게 각각 요양급여비 환수 처분을 내렸다.
박 원장에게 CT관련 총 5870여만원의 요양급여비용을, 김 전(前) 원장에게는 4879만여원의 요양급여비용을 환수처분했고, 이에 두 의사가 각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제11부 "지침 강제성 없어 환수 처분 부당" ↔ 제12부 "지침 외 상위 규칙에 따른 처분 정당"
두 재판부는 해석을 달리했고, 이에 따라 박 원장과 의사 김 씨의 희비도 엇갈렸다.
제11 재판부는 공단이 처분 근거로 삼은 ‘특수의료장비 운영 지침(이하 지침)’이 운영지침은 업무 처리 지침에 불과해 행정조직 내부에서만 효력을 가질 뿐, 대외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으므로 이에 따른 처분은 부당하다고 봤다.
또 "의료법에 따라 제정된 운영규칙 제3조에는 CT의 운용인력기준으로 '영상의학과 전문의:비전속 1명 이상, 방사선사: 전속 1명이상'으로 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 의미에 관해서는 규정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제12 재판부는 ‘지침’ 외에도 상위 규칙이 있는데, 공단이 상위 규정에 비춰 처분을 내린 것이므로 환수 처분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지침의 상위 규정에 해당하는 '특수의료장비 규칙 제3조 제2항'에는 특수의료장비를 운용할 인력 가운데 영상의학과 전문의는 특수의료장비의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 총괄 및 감독, 영상화질 평가, 임상영상 판독 업무를 수행한다고 명시돼있다.
재판부는 “지침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 비전속 1명 이상’을 규정한 것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그 병원에 전속돼있을 필요는 없고, 다른 병원 근무를 겸하는 것도 가능하며 출근일수를 특정해 제한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관련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해당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관리감독 및 평가, 판독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병원은 기준을 위반한 것이고, 진찰 및 검사료는 요양급여비용으로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또 “병원에서 주1회 이상 근무하지 않았다고 해서 김 씨가 지침을 위반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김 씨의 처분 사유는 규칙을 위반해 촬영장치 요양급여비용을 부당 청구해 지급받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양측 모두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패소한 박 원장 간의 소송에 대해, 병원 측은 패소한 의사 김 씨의 소송에 대해 항소한 상태다.
허아영 변호사는 “항소심에서는 각자 승소한 판결을 근거로 주장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