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복지부-의협 루비콘 강 건너나
2012.05.23 12:00 댓글쓰기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이 이달 임기를 시작한 지 20여 일이 지났음에도 공식적인 접촉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 당국자와 관계자들 모두 "의협으로부터 어떤 접촉 제의도 받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고, 의협 측도 이를 인정했다.

 

노 회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임채민 장관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했으나 복지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기관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취해왔다.

 

최근에는 그 발언 수위가 높아져 기싸움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온다.


DRG로 갈등 증폭되나 


의-정 간 냉기류는 지난 22일 의협의 포괄수가제(DRG) 관련 기자간담회 이후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환자가 불안한 상태임에도 의사가 조기퇴원을 강요할 수 있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적정수가 체계를 마련하기 전에는 제도를 시행해선 안 된다며 '선보완 후시행'을 주장했다. 이는 복지부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임 장관은 최근 "예정대로 오는 7월 DRG를 시행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선시행 후보완 원칙'을 분명히 했다.

 

복지부 핵심 당국자 역시 DRG 시행 방침을 재확인했다.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DRG는 오는 24일 건정심 안건으로 올라간다. 지난 18일 건정심에 앞서 진행된 비공개 간담회에서 DRG 안건은 통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만 놓고 보면 의협에 매우 불리한 구도다. 이런 구도를 깰 만한 의협의 경우의 수는 많지 않다.

 

의협은 오는 24일 건정심에서 DRG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건정심 탈퇴를 선언할 방침이다. 사실상 탈퇴 수순밟기라는 분석이다.

 

복지부도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당국자는 "의료계가 참여하지 않으면 모양새가 좋지 않더라도 정부 정책은 차질없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DRG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면 만성질환관리제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 예민한 현안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인식도 작용했다.


醫 '의약계 발전 협의체' 보이콧


의협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주관하는 '의약계 발전 협의체'에서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모임은 보건의료 직능단체 부회장급 인사가 참여하는 자리로 복지부가 업계 의견을 듣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지난 4월 첫 만남이 이뤄졌고 매달 진행될 예정이다. 병협과 치협, 한의협, 약사회, 간호협회, 의학회가 참석하고 있다. 그러나 협의체의 핵심 파트너인 의협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

 

복지부는 협의체를 통해 민원을 해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부회장급 인사가 참여한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적지 않다. 정부와 직능단체의 교감이 이뤄지는 소통창구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의협 고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참여하기 어렵지 않겠느냐. 이러한 입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와의 냉기류가 상당기간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협 핵심 관계자도 "확인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건정심 등 불합리한 구조에서 우리가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며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현 집행부가 정책결정에서 큰 현안이 쌓여 있다"며 "예전 집행부와는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의협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협의체를 지속해서 운영할 방침이다. 굳이 의협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타 직능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정책 방향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료계, 근본적으로 신뢰가 없다


복지부는 의협의 강경 노선을 내부 문제로 진단한다. 의협은 정부가 부당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불만이 많다.

 

최근 정부와 의료계의 불협화흠은 근본적으로 서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복지부는 "의협의 행보는 정치적 해석과 함께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풀어보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한다. 정부를 공적으로 몰아 내부의 단결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의협이 오는 12월 대선을 이용해 복지부를 압박하려 한다는 인식도 드러냈다. 만성질환관리제 등 여러 정책에서 정부가 양보했음에도 의료계가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내비쳤다.

 

복지부 당국자는 "의협이 계속 반대하면 우리도 일정대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건정심 탈퇴 등 의료계 내부적으로 논의된 내용에 대해선 "건정심은 법 개정사항이며, 의협이 거부 의사를 밝히면 다른 대상을 찾으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강한 의협을 표명한 노환규 집행부는 정부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면 내부적인 타격이 작지 않다. 노 회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힘없이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회장은 만성질환관리제, 의료분쟁조정법을 연이어 비판했고, 의사가 잠재적 범죄자로 몰렸다며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노 집행부는 이달 출범해 지지세력이 비교적 견고하고, 시간적으로도 부담이 덜 하다.

 

의협 집행부는 정부와의 갈등국면을 긴 호흡으로 보고,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관건은 "의사를 코너로 몰지 않겠다"라고 말한 임채민 장관의 발언을 어떤 의미로 보느냐다. 하지만 임 장관은 기존의 정부 정책은 예정대로 시행할 것이라고 말한 만큼, 의료계가 요구하는 수준의 획기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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