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성간 기자 = 암 환자에 흔히 사용되는 방사선 치료가 부정맥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워싱턴 대학 의대 심장 리듬 전문의 필립 쿠쿠리치 박사는 주변 조직 손상 없이 암 조직만 정확하게 조준해 파괴하는 정밀영상의학 전문의 클리포드 로빈슨 박사와 함께 부정맥의 하나인 심실빈맥(ventricular tachycardia)을 방사선으로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AP 통신이 1일 보도했다.
심실빈맥은 심실에서 발생하는 빠른 맥을 말한다. 가슴 압박감, 오심, 구토를 수반한다. 심실빈맥은 갑작스럽게 심장이 멎는 심정지(cardiac arrest) 주요 원인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30만 명이 급성 심정지로 목숨을 잃고 있다.
심장의 전기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심박동이 1분에 60~100회가 유지된다. 그러나 심장의 아래 부분인 심실에서 전기신호에 단락(short-circuit)이 발생하면 심장이 엄청나게 빠르게 뛰면서 심실이 혈액을 제대로 펌프질 해 내보지 못하게 된다.
치료법은 전극 도자 절제술(catheter ablation)이다. 이는 카테터(도자)를 심장 안으로 밀어 넣어 단락이 발생한 조직을 태우는 것이다. 그러면 그 부위에 상처조직이 형성되면서 잘못된 전기 신호가 차단된다.
새로 개발된 방사선 치료의 경우, 환자는 항암 방사선 치료와 마찬가지 자세로 누워 15분 동안 음악을 듣고 있으면 된다.
워싱턴 대학의 발달생물학자 스테이시 렌츨러 박사는 증여된 인간 심장과 생쥐 심장에 방사선을 조사하는 실험을 통해 한 차례 중간 강도 선량(moderate dose)의 방사선 조사로 단락된 심근세포가 잘못된 전기신호 전달을 스스로 바로잡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방사선을 맞은 부위에서는 심근 세포가 휴면 상태에 있는 특정 유전자들을 일시적으로 깨운다. 이 유전자들은 심장의 전기시스템 형성에 도움을 주는 '노치'(Notch)라고 불리는 신호 전달 경로에 관여한다.
이 신호 전달 경로가 활성화되면 해당 부위들이 자극을 받아 전기신호 전달이 활발해진다고 렌츨러 박사는 설명했다.
렌츨러 박사의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근거로 쿠쿠리치-로빈슨 박사 연구팀은 2017년과 2019년에 증상이 아주 심한 몇몇 심실빈맥 환자를 대상으로 방사선 치료를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환자들은 증상이 놀라우리만큼 좋아졌다. 일부 환자는 최장 6년 후까지 효과가 지속됐다.
이 치료법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연구팀은 그 이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특별 승인을 받아 80여 명을 더 치료했다. 이 치료법이 FDA 승인을 받으려면 더 강력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래서 연구팀은 약 400명의 환자를 모집해 본격적인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참가 환자들은 무작위로 방사선 치료 또는 전극 도자 절제술을 받게 된다. 연구팀은 이 두 가지 치료 방법이 효과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 분석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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