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필자가 여자의사로 첫 발을 내딛은 시기는 1990년이다. 현재 의대를 다니는 학생이나 전공의들이 처한 상황과는 시간적, 사회관습적, 문화적 차이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특히 여자 의대생은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전체 전공의 티오(TO)도 적었다. 이 때문에 비군보 남자의사와 경쟁하는 전공분야는 여자의사가 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경우가 적잖았다.
또 남자의사나 남학생과 비슷한 성적 및 성취도를 보이는 경우 여자가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자 의대생이 늘어났고 여자의사 비율도 남자의사와 동일한 수준에 육박했다. 여자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사회적 분위기와 구조도 많이 개선됐다.
필자는 여자의사가 남자의사보다 유불리하다는 것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나 현재나 여자의사가 가진 장점에는 차이가 없다. 그저 필자가 경험해온 여자의사 장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의대생 시절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전공의 앞두고 적잖은 난관 직면"
의대생 시절에는 여자라서 차별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전공의가 되는 과정에서 많은 난관이 있었다.
'결혼을 할 것인지', '여자가 내과의사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등에 대한 답(答)을 찾아야했다. 특히 전공의 1년차에 처음으로 환자를 배정받은 날, 여자의사를 주치의로 배정받은 환자들의 실망스러운 표정에서 '결코 순탄치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당시 1년차가 주중에 퇴근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려웠기에 밤에도 병원에서 환자를 보거나 공부를 하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근무 중에 환자가 잠이 들었는지 병동을 돌아본 뒤 잠깐의 수면을 취하곤 했다. 그런데 환자나 보호자, 병동 간호사에게는 큰 힘이 됐던 모양이다.
한두 달이 지나면서 '여자선생님이 담당 의사여서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자주 봐주고, 설명도 잘해주니 너무 좋았다'라고 고백(?)을 하는 환자들이 나타났다.
의학드라마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살던 시절이었고 지금 돌아봐도 필자 의사생활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후배 여자의사들이 공감능력 기반으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
성별 차이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성향상 여자는 남자보다 꼼꼼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의사라는 직업이 환자 마음을 읽어주고 보호자도 위로할 수 있어야 하고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적절한 타이밍에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적어도 '임상의'로 성장해갈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남자가 아닌 여자라서 느끼는 장점이 많았다.
'최초의 여성 OOO' 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따라다니지만 굳이 여자, 남자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성별을 떠나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개인적 사심이 아닌 조직과 구성원 발전을 위해 일한다는 원칙이 있으면 그것으로 경쟁력은 충분하다.
필자가 여자라는 이유로 내과전공의 선발과정뿐만 아니라 교수 임용 때 설왕설래 어려움이 있었다는 후일담을 듣기는 했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실패하지 않았기에 항상 소신껏 일한다는 생각을 갖고 지낸다.
개인적으로 "여자의사분들이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한 그러길 바란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방향을 정하고, 그리고 진심을 다해 노력하면서 본인을 도와줄 조력자들과 공감하고 소통에 힘쓴다면 어느새 스스로가 빛을 발하는 북극성같은 존재가 돼있을 것이다.
누가 보아도 알아볼 수 있는, 그리고 누가 보아도 빛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