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재활’ 20년 전만 해도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낯선 개념이었다. 뇌졸중 질환 치료는 수술로 막힌 부위를 뚫어주거나 터진 부위를 메우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면 이미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평생 마비나 사지 쇠약 등의 부작용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뇌재활을 전문 의료진을 찾아보기도 힘든 그야말로 ‘뇌재활 볼모지’였다. 하지만 의료기술이 발전하고 재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국가적 차원 재활병원제도 도입과 의료보험체계 접근성 등을 기반으로 뇌재활은 빠르게 발전했다. 이제 뇌손상을 입은 환자 대부분은 적기에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연구 분야 역시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의료진 노력 등을 뒷받침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으로 발돋움했다. 20년 이상을 뇌재활 분야에 몸담은 임성훈 서울성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를 만나 국내 뇌재활 치료 현황과 나아갈 방향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약물치료→전기자극‧가상현실(VR) 활용 운동치료 등 발전
뇌졸중 질환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에 신경학적 변화를 가져오는 질환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뇌경색과 뇌출혈 등이다.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은 약재를 투여하거나 혈전을 제거하는 시술을 통해 혈관을 다시 뚫어주고, 뇌출혈은 혈종 제거술이나 혈관 수술로 터진 곳을 막는다.
의학 기술 및 다양한 술기 발전으로 적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중증도 발전을 막고 사망률도 낮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뇌재활’은 뇌졸중 수술 이후 영역이다. 수술로 응급상황을 넘겨도 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동안 우리 뇌는 손상을 입게 된다.
임성훈 교수는 “뇌재활은 치료를 마친 후 보통 2~3일 이내 시작된다”며 “대학병원에서 뇌졸중 발생 후 72시간 내 일상생활 동작을 다시 수행할 수 있도록 급성기 재활을 진행하고 그 후는 재활병원 등으로 전원해서 치료를 이어간다”고 설명했다.
뇌재활은 보통 약물을 뇌에 투여해 치료하는 방식이 전통적이었는데, 최근에는 전기자극이나 가상현실(VR)‧로봇 등을 활용한 운동 치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된다.
임성훈 교수는 “뇌재활은 손상 부위에 약재를 적절하게 투여하면서 환자 증상을 개선하는 것이 일반적 방법이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의료기술 발전으로 뇌에 직접 전기자극을 할 수 있게 돼 환자 기능을 훨씬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운동치료나 작업치료도 로봇이나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해 환자 참여도를 높여 더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국내 뇌재활, 치료‧연구 등 세계 선도…환자 접근성도 우수”
뇌재활은 현재 너무나 당연한 개념으로 자리잡았지만,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뇌재활 볼모지’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치료 뿐 아니라 연구 분야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선도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임성훈 교수는 “20년 전만 해도 경미한 뇌경색 등으로 마비가 왔는데 적절한 재활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몸의 감각이 떨어지고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환자가 뇌졸중 질환을 겪어도 꾸준한 치료를 통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사회로 돌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배경에는 국가의 권역별 공공재활병원 설립을 통한 의료 접근성 강화 등이 자리한다.
임 교수는 “해외와 비교하면 미국은 우수한 의료진이 많지만 지역 편차가 심하고 병원마다 상황이 달라 적기에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며 “유럽이나 호주 등도 의사와 환자가 일대일로 재활치료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구 밀도가 높고 재활의학과의 경우 의사수가 인구 대비 적절한 편이라 접근성이 우수하다”며 “특히 국립재활원 등 국가적 공공재활병원 설립 등으로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적기를 놓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연구 또한 최근 20년 사이에 국내 의료진 수준이 굉장히 향상됐다”며 “뇌재활과 관련된 국내 의료진 논문이 최근 세계적으로 저명한 탑 저널에 실리는 사례가 증가하는 등 전반적인 의료 수준이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이어 “재활의학과가 전공의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뇌재활은 개원에 적합한 세부전공은 아니라 큰 관심은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뇌재활은 아직 연구가 필요한 미지의 영역이 많은 매력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젊고 유능한 인재 유입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환자 중증도 고려치 않고 일괄 전원 등 재활의료전달체계 개선돼야”
임 교수는 국내 재활치료 문제점으로 ‘재활의료전달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성훈 교수는 “현재 의료시스템으로는 중증도와 무관하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든 환자가 대학병원에서 재활병원으로 전원 된다”며 “아직 치료가 더 필요한데 재활병원으로 옮겨져 회복이 힘들어지는 사례들이 있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양질의 재활치료를 이어갔다면 더 좋은 경과를 가져갈 수 있었는데, 너무 이른 시기에 1차 의료기관으로 전원해 예후가 나빠지는 것이다.
이는 중증환자 비율을 신경 써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의 경영 환경을 고려했을 때, 환자 ‘재원일수 최소화’가 병원 평가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재활 환자 중증도가 병원 평가에서 빠져있기 때문에 적절한 회복 기회를 놓치는 환자가 부지기수”라며 “중등도나 경도 뇌질환 환자들은 초기 집중적 재활치료를 통해 좋은 경과를 가져갈 수 있는데 제도가 가로막고 있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특히 사지마비 등의 증상이 있는 환자는 초기 대학병원에서 급성기를 치료하고 전원하면 재활병원에서도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이 줄어 큰 장점이 있다”며 “중증 환자는 필요에 따라 조금 더 오래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성훈 교수는 "병원 적정성 평가 때 재활환자의 중증도 고려 항목을 포함해서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자가 발생하면 중증도 고려없이 빠르게 요양병원 등으로 전원해야 하는 것이 현행 의료전달체계”라며 “일률적인 질병 코드에 대한 분류 체계를 탈피해 환자 증상을 고려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직접 나서 시스템적 변화를 이끌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