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책임 병원들 대규모 '자격상실' 위기
의료진 이탈에 '인력기준 미충족' 태반…평가 유예로 일단 '유지'
2024.10.16 12:05 댓글쓰기



의과대학 증원으로 인한 의료대란 사태 이후 진료현장 의료진 이탈이 가속화 되면서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권역심뇌혈관센터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책임기관들의 자격상실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의료진 공백으로 파행 운영이 잇따르면서 상당수 기관들은 최소 인력기준 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이들 기관에 대한 시설, 장비, 인력기준을 엄격하게 관리해 온 정부는 이와 관련해서는 일찌감치 ‘유예’ 방침을 정하고 장기전에 대비한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전공의처럼 이들 기관에도 ‘특례’를 적용한 게 아니냐는 조소(嘲笑)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인력기준 미충족으로 자격상실 위기에 놓인 필수의료 책임기관들 실상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권역응급의료센터 10곳 중 7곳 ‘기능 마비’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응급의료 최종 관문인 권역응급의료센터다. 


현행법에는 응급의료 서비스 제공 기관을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국 응급의료기관을 체계적으로 지정함으로써 응급의료체계 혼란을 방지하고 각각의 응급의료기관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응급환자 중에서도 상태가 위중한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최상위 응급의료기관으로, 현재 전국에 44개 병원이 지정, 운영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상급종합병원 또는 300병상 이상 병원으로, 중증응급환자 진료는 물론 대형 재난, 재해 발생 시 응급의료를 담당한다.


중증 응급환자 생명을 사수해야 하는 ‘최상위 응급실’인 만큼 충족해야 할 기준도 까다롭다.


가장 중요한 의료진의 경우 △응급실 전담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이상 △소아응급환자 전담 전문의 1명 이상을 배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년도 응급실 내원 환자수가 3만명을 초과하는 경우 응급실 전담 전문의 1명을 확보하고, 매 1만명 마다 1명을 추가 배치해야 한다.


이러한 인력기준을 충족함과 동시에 원활한 교대근무가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 12명 이상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의료대란 사태 이후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진 이탈이 잇따르면서 권역응급의료센터 운영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별위원회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의 및 전공의 근무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상황은 심각하다.


8월 21일 기준 전국 44개 권역응급의료센터 중 70%가 넘는 31곳의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가 12명 미만으로 집계됐다. 남은 의료진이 4명 밖에 없는 병원들도 있었다.


365일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한 근무조에 2명 이상, 최소 12명의 응급의학과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 수는 지난해 4분기 총 910명이었으나 올해 2분기 566명으로 급격하게 줄었고, 최근 513명까지 감소했다. 이는 기존 대비 43% 가량 줄어든 수치다.


이러한 인력 감소에는 전공의 사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전공의는 지난해 4분기 322명에서 올해 2분기 69명으로 급감했고, 최근에는 21명만이 남은 것으로 집계됐다.


더 큰 문제는 전문의들 마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떠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446명이던 권역응급의료센터 내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는 최근 400명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타과 전문의는 올해 1분기 기준 30명에서 최근 48명으로 늘어났다. 타과 전문의로 의료공백을 겨우 메꾸고 있다는 의미다.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교수는 “권역응급의료센터 대부분이 인력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럼에도 응급의료 위기를 부인하는 정부 행태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역외상센터·심뇌혈관센터 ‘붕괴’ 가속화


권역외상센터와 권역심뇌혈관센터 등 ‘골든타임’ 사수를 위해 촌각을 다퉈야 하는 필수의료 책임기관들도 의료진 부족으로 파행 운영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권역외상센터’는 교통사고, 추락 등에 의한 다발성 골절, 출혈을 동반한 중증외상환자에게 도착 즉시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 장비, 인력을 갖춘 외상 전문 치료센터다.


피를 철철 쏟는 환자 또는 뼈가 최소 10개 이상 부러진 환자 등 생사의 기로에 놓인 중상을 입은, 즉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크게 다친 사람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만든 곳이다.


2012년 도입 첫 해 가천대 길병원과 경북대병원, 단국대병원, 목포한국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등 5개소 지정을 시작으로 현재 총 17개소가 지정, 운영 중이다.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면 복지부로부터 외상전용 중환자실과 수술실, 입원병상 등 시설장비 설치비 최대 80억원과 외상 전담전문의 인건비 매년 7억~27억원을 지원받는다.


권역외상센터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응급의학과,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의 외상외과 세부전문의를 1명 이상 배치해야 한다.


24시간과 365일 외상환자 치료를 위한 준비와 당직을 감안하면 적어도 8명 이상의 외상 전담전문의가 필요하다.


권역외상센터별 지정 초기 전담전문의를 최소 8~10명을 유지했다. 일부는 20명 넘게 배치했다.


하지만 의료진이 잇따라 이탈하면서 원광대병원과 목포한국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외상센터는 외상 전담전문의가 2~4명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그나마 어려사리 버티던 잔여 의료진도 이번 의정갈등 사태로 업무 피로도가 극에 달하며 하나 둘 외상센터를 등지고 있다.


지방 권역외상센터 외상 전담의는 “외상센터는 의료진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한 명이 이탈하면 팀워크는 깨지고, 남은 의사들의 업무 강도는 세질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정 초기에 비해 외상외과 전문의 수가 절반 이상 줄어든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이탈이 가속화 되고 있다”며 “얼마다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뇌졸중, 심근경색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권역심뇌혈관센터도 의료진 이탈에 따른 위기감이 팽배하다.


권역심뇌혈관센터는 24시간 365일 골든타임 사수를 위해 응급환자 대응, 심·뇌혈관 중재시술, 심장수술, 뇌수술, 재활치료, 예방관리 분야 전문의 등을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몇 해 전부터 의사 구인난이 심화되면서 인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센터 지정이 취소되는 등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


실제 목포중앙병원은 지난 2018년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조건부 지정돼 이후 평가를 받아왔고, 심장혈관흉부외과 전문의 채용기준을 채우지 못해 결국 2년 전 지정이 철회됐다.


문제는 목포중앙병원 뿐만이 아니다. 젊은의사들의 심뇌혈관 분야 기피로 의사 양성이 날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들의 인력난은 심화돼 왔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의료대란 사태는 권역심뇌혈관센터들의 근심을 더욱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해 기준 전국 심장혈관흉부외과 전공의는 72명, 신경외과 전공의는 106명으로 집계됐는데, 이들 대부분이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해 진료현장을 떠났다.


이번 사태로 젊은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심화된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원대 복귀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 권역심뇌혈관센터 교수는 “흉부외과, 신경외과 전공의들 이탈은 심뇌혈관 의료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며 “‘골든타임’이라는 단어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푸념했다.


이어 “정부가 환자를 살리라며 지정한 각종 필수의료 책임기관들이 정작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웃픈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덧붙였다.


“환자 살리라던 정부가 오히려 환자 생명 위협”


이처럼 최일선에서 필수의료를 사수하고 있는 여러 책임기관들이 의료대란 사태에서 의료진 이탈로 자격상실 위기에 놓였지만 정작 정부는 여유로운 모습이다.


정상적이라면 인력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기관에 대해 ‘지정취소’ 등의 패널티를 부여했겠지만 정부는 일찌감치 ‘평가 유예’ 카드를 작동시킨 상태다.


실제 정부는 의정갈등 초기인 지난 2월 전공의 집단사직 등 사태가 심상찮게 돌아가자 ‘비상진료대책’을 발표하고 각종 평가에서 병원들의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특히 각종 평가 유예는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별도의 진료 정상화 선언이 이뤄지기 전까지 무기한 적용키로 했다.


때문에 이들 센터가 의료진 이탈에 따른 인력기준 미달 상황에 처했음에도 별도의 패널티 없이 자격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권역심뇌혈관센터 등의 인력기준 미충족에 대해서는 당분간 별도의 패널티 적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상진료체제가 가동되고 있는 만큼 이들 기관 외에도 여러 제도에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며 “진료 정상화가 이뤄질 때까지는 평가를 유예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의정갈등 장기화로 응급의료 붕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연이은 ‘현실 부정’ 행태로 인한 의료계의 공분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응급의료 현장은 잇단 의료진 이탈로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기우(杞憂)라고 치부하려는 정부에 ‘분노’하는 분위기다.


실제 최근 잇단 응급실 뺑뺑이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우려 여론이 확산되자 보건복지부는 전국 응급실 408곳 중 진료 제한이 발생한 곳은 1.2%인 5곳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의료계는 “정부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의정갈등에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지 반년을 훌쩍 넘기면서 업무에 과부하가 걸린 응급실 의료진은 응급의료체계가 ‘붕괴 직전’이라고 가슴을 쳤다.


전공의들이 의대정원 증원에 반발하며 의료현장을 떠난 지가 길어지면서 남아있던 의료진이 한계에 부닥치며 현장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응급의료 대란’을 부정했다. 특히 대다수 병원들이 문을 닫는 추석 연휴기간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 진화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복지부는 추석연휴에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 대비해 9월 11일부터 25일까지 약 2주간을 ‘추석명절 비상응급 대응주간’으로 지정했다.


특히 국민들의 의료이용 불편함을 최소화 하겠다며 평소(3600개소) 보다 많은 4000개소 이상의 당직 병·의원을 운영하고, 비상진료 체계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복지부와 지자체는 전국 병원들에 추석연휴 동안 응급실 운영을 독려하고 나섰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주도한 간담회에 참석했더니 공무원이 무조건 응급실 불이라도 켜 놓고 있어달라고 읍소했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 정부에게 필요한 건 환자를 살리는 응급실 기능이 아닌 국민의 눈을 가리기 위한 응급실 가동률인 것 같다”고 일침했다.


다행히 추석연휴 기간 우려했던 응급의료 대란은 없었다고 정부는 안도했지만 이면을 들여다 보면 ‘진료 제한’ 건수가 지난해 대비 68%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에 따르면 지난 추석연휴(9월 14일∼18일) 5일 동안 전국 각 병원 응급실에서 중앙응급의료센터로 알린 진료 제한 메시지는 총 1879건이었다.


작년 추석연휴(9월 28일∼10월 3일) 6일간 집계된 1523건보다 23.4%(356건) 늘어난 수치다. 일평균으로 따지면 올해 추석이 평균 376건으로 작년 254건보다 48.0% 늘었다.


특히 ‘응급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진료 제한이 전체 34.3%(645건)에 달했다. 지난해 대비 68.4%(262건) 증가했다.


김선민 의원은 “정부는 이번 추석연휴 응급실 혼란이 없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응급실 진료 의사들 혼란은 작년보다 더 컸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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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10.16 19:28
    정부가 정말 중요한 것이 환자 목숨이었다면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하고 전문의들이 과로로 사직할 때 정부는 대화가능성을 열어두고 진지한 논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중요한 것은 개혁을 한다는 허상의 이미지였기 때문에 의료교육 붕괴가 일어나도 부실 수련 문제가 부각되도 응급의료가 무너져도 지방의료가 망해가도 아무런 대응도 대책도 없이 문제가 없다고 언론플레이하는데 급급하다.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누가 환자를 돌보고 있었는지 누가 의료문제를 방치해왔는지. 그게 의사들인지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었는지 말이다. 국민들의 잘못된 현실인식과 정치만 생각하는 여론이 정부가 잘못된 방침을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국민들은 비판해야하며 언론은 전문성에 기반해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체계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올해 증원이 시작되면 붕괴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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