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先) 진입 기술 개정안으로 오남용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평가 및 관리 역시 엄정해져야 합니다."
서준범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진단보조 인공지능(AI)의 적절한 적용' 포럼에서 이같이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선진입 의료기술 안전관리 강화·신의료기술 재평가 근거 규정 마련 및 평가유예 기술의 기간 연장 등을 위한 내용의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을 지난해 10월 입법 예고했다.
올해부터는 개정안에 따라 평가유예기술 사용기간이 최대 4년(1회 연장)까지 연장되고, 신의료기술평가 신청 중인 선진입 의료기술은 결과 통보 시까지 지속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지나치게 기업 친화적이며 환자와 의료진에 대한 고려 부족" 지적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지나치게 기업 친화적이며 환자와 의료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가유예 기간 연장은 근거 창출 연구의 어려움을 보완하려는 목적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료기관과 기업의 이윤 추구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또한 퇴출 메커니즘이 없는 새로운 제도는 임상적 유효성이 부족한 기술이 시장에 장기적으로 잔류하게 방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제도 빈틈 생겨 평가 유예 제도와 혁신 의료기술 충돌"
서 교수는 "선진입 기술의 사후 관리 부분들이 굉장히 많이 약화되고 오남용 위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이러한 우려에 대해 동의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장 큰 문제가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평가 유예 제도와 혁신 의료기술 충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평가 유예 제도는 새로운 기술이 근거가 부족하지만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게 분명할 때 1년을 한도로 유예해주기 위해 2015년 시작됐다. 이후 2018년 의료 인공지능 등 다양한 혁신 의료 기술을 조기에 도입하기 위해 혁신 의료 기술 제도가 생겼는데, 2022년 평가 유예 기술 대상을 확대하고 유예 기간을 늘리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은 평가 유예로 선진입할 수도 있고 혁신 의료 기술로도 선진입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중복이 되니 혁신 의료 기술 평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갑자기 신청을 취소하고 평가 유예 기술을 신청해서 통과하는 거다. 똑같은 기술인데 제도에 따라 선정 여부가 달라지는데 정책적으로 옳지 않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시장 즉시 진입 의료기기 제도'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올 하반기 시행 예정인 시장 즉시 진입 의료기기 제도는 평가를 받지 않고 식약처 허가만 받으면 쓸 수 있게 해주고 급여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나중에 신의료기술 평가에서 떨어져도 계속 쓰게 해주겠다는 거다. 이건 보험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라고 꼬집었다.
"진입 장벽 낮췄으면 적절한 관리로 빠른 퇴출도 가능해야"
서 교수는 기술 도입 후 현장에서 원하는 성능이 나오지 않을 시 즉시 퇴출해야 한다며 관리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도입된 기술 중 일부는 인허가 과정과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적용했을 때 유용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적절한 관리가 이뤄져 빠르게 퇴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제도를 바꿔나가는 과정에서 빈틈이 발생했고, 개정안은 그 틈을 더 확대하겠다고 얘기하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원래 취지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기존 제도에서는 혁신의료 기술로 통과되면 보건의료연구원에서 연구 계획서를 평가하고, 그 결과를 엄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평가 유예 제도로 근거 마련에 대한 규제가 무너졌다"며 "평가 유예 항목 확대를 재고하고, 다시 엄정한 평가와 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