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인의 업무범위를 사전에 조정하는 법안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의료법 내에서도 중첩돼 매년 법적 분쟁이 발생하던 직역 간 업무범위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이지만 직역단체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보건의료인기본법' 일부개정안이 통과했다.
김 의원은 "보건의료 분야의 빠른 발전에도 불구하고 낡은 의료법 등 보건의료 관련 법률로 전문성을 갖춘 개별 인력들이 역량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건의료인력 간 업무범위가 불분명하고, 이를 조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없다"며 "이에 직역 간 업무가 중첩되는 영역을 중심으로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지난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보건의료인 간 업무범위 관련 유권해석 요청에 대해 해석 사례는 총 828건이다. 간호인력 수술보조행위 등을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해당 법안은 복지부 장관 소속 '보건의료인력 업무조정위원회'를 신설, 업무범위를 업무 전문성과 환경을 고려해 해석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위원회에는 보건의료직역과 시민대표, 전문가가 참여하며, 보건복지부 차관인 위원장 1명과 3명 이내 부위원장을 포함해 50명 이상 100명 이하로 구성한다.
회의는 위원장, 부위원장 및 위원장이 매 회의마다 지정하는 위원을 포함해 25명 이내로 구성한다.
복지위 전문위원실은 복지부가 그동안 '의료인 업무범위 협의체', '의료법체계연구회' 등을 운영해 왔지만 실질적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법안 취지에 공감했다.
다만 전문위원실은 "모든 직종을 포함할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면서 "심의안건 관련 직종 추천 위원의 포함 여부 등을 명시하지 않아 업무조정위원장의 재량사항으로 해석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협 "직역 고유 전문성 훼손" 반대 VS 병협·간협 "신중 검토" VS 간무협 "찬성"
직역단체 간 의견은 엇갈리는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보건의료인력 업무범위를 업무조정위원회에서 심의하는 것은 직역 고유의 전문성이 훼손되거나 축소될 수 있고 비전문가 위원 구성은 전문적 의사결정 과정에 기여할 가능성이 낮다"며 반대했다.
또 "각 직역별로 자격 및 업무범위를 규정하고 있는 개별 법률이 있어 위원회 심의에 따른 잠재적 분쟁 소지가 있다"며 "복지부의 광범위한 임명권이 위원회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병원협회는 "보건의료인력 숙련도와 개별 의료기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위원회 차원에서 업무범위의 획일적 기준을 마련하는 건 오히려 불필요한 직역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신중검토 의견을 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도 신중검토 입장이다. 간협은 "각 직역의 업무범위 사항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해당 직역을 규정하는 개별 법률 규율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약사회는 "보건의료 분야 전문성을 감안해 위원회 및 분과위원회에서 보건의료 전문가 중심 논의와 결정이 필요하다"면서 조건부 찬성을 표했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도 조건부 찬성하며 "응급구조사는 응급의료법에 따라 5년 마다 업무범위를 조정하고 있어 위원회 심의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물리치료사협회·대한영양사협회·대한위생사협회·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대한임상병리사협회·대한작업치료사협회 등은 찬성했다.
정부부처 간 의견도 엇갈렸다. 복지부는 "직역 간 불필요한 갈등을 해소하려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반면 행정안전부는 "별도 위원회 설치보다는 기존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또는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 분과·전문위원회 형태 활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