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한 기간이 만료됐어도 약정된 의료소모품은 모두 구매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병의원 등 의료계에서 약정된 계약의무 불이행에 따른 책임을 명확히 한 사례로 주목된다.
서울남부지방법원(판사 김유성)은 지난달 13일 의료소모품 공급 계약을 둘러싼 분쟁에서 A의료법인이 의약품 및 의료용품 도매업체인 B사에 1억6612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A의료법인은 지난 2014년 9월 B사로부터 인공신장기 등을 무상으로 임대하는 대신 계약 기간 동안 인공신장기용 소모품인 투석기(Dialyzer)와 혈액회로(Blood Line) 등 필수 소모품 4만5500세트를 구매하기로 약정했다.
계약기간은 7년이며, 약정 구매수량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1년간 자동 연장되는 조건이 포함됐다.
그러나 A의료법인은 지난 2022년 10월까지 약 2만7000세트 구매 후 소모품 구매를 중단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계약 기간은 최대 8년이므로, 2022년 9월 11일에 기간 만료로 계약이 종료됐다고 주장하며 B사에 기기 철거를 요청했다.
이에 B사는 "계약은 약정 구매수량을 모두 구매할 때까지 자동 연장된다"며 A의료법인이 소모품 구매 의무를 불이행한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우선 계약기간과 관련해 A의료법인 주장대로 2022년 9월 종료됐다고 봤다.
계약서상 '1년 범위 내에서 자동 연장된다'는 문구는 통상 '자동연장 기간 상한을 1년으로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는 판단이다.
다만 A의료법인이 계약기간에 약정된 약정된 소모품 수량 중 1만7000여세트를 구매하지 않은 것에 대해 B사의 판매이익 손실로 판단하고, A의료법인에 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소모품 판매가와 수입가, 그리고 수입 과정에서 발생한 관세 및 부대비용을 고려해서 손해배상액을 약 1억6611만원으로 책정했다.
한편, A의료법인은 B사가 계약 종료 후에도 인공신장기를 수거하지 않아 병원 운영에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계약 종료 후에도 A의료법인은 약정 구매수량에 대한 의무가 남아 있으므로 그 의무가 이행되기 전까지 B사가 인공신장기를 철거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계약 의무 불이행 시 손해배상 책임을 명확히 하며, 의료기관과 의료기기 공급업체 간 계약 관계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특히 계약 종료 여부와 관계없이 약정된 의무가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 추가적인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