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 옛말…진료과 '빈익빈 부익부' 심화
필수의료 붕괴 시작…"포기하는 의사들에게 과연 누가 돌 던질 수 있나"
2025.04.16 11:00 댓글쓰기

[기획 3] 절체절명 위기에 놓인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야심차게 추진한 정부 의료개혁이 오히려 필수의료 붕괴에 가속도를 붙이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일명 ‘바이탈(vital) 진료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해당 진료과목 교수들 이탈까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필수의료 붕괴가 이미 시작됐다”며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필수의료를 포기하면서 밖에서 보는 것 보다 현장은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를 전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 이탈이다. 사명감으로 필수의료를 선택했던 전공의들마저 이번 의정사태를 계기로 진로를 변경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해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 절반 이상이 일반의로 재취업한 가운데 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는 외면 받았다.


전공의 재취업 진료과를 살펴보면 산부인과 2.6%, 소아청소년과 1.5%, 외과 1.2%였던 반면 정형외과 8.4%, 안과 7.1%, 이비인후과 7.6%, 피부과 6.8% 등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의원급 취업 사직 전공의들, 필수의료 외면”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은 “의원급으로 취직한 사직 전공의 대부분이 필수의료가 아닌 일반의, 피부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직 전공의 대부분 수도권, 인기과에 취직하는 등 이런 사태가 길어질 경우 필수의료뿐 아니라 지역의료도 붕괴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사직 전공의들이 아직 수련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만큼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의 진로 변경 수치는 명확치 않지만 해당 전문과목 교수들의 우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뜩이나 필수의료 분야는 전공의들의 중도포기율이 높았고, 이번 의정사태가 결정적 계기로 작용하면서 이들의 결심을 폭증시켰다는 울분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소위 ‘낙수효과론’에 많은 필수의료 의사들이 상처받았다”며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버티던 이들을 루저(loser) 취급한 형국”이라고 일침했다.


전공의 지원이 저조한 비인기과들은 중도 포기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필수의료 분야이자 대표적인 기피과를 선택했던 전공의 중도 포기율은 인기과 대비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공의 중도 사직률이 높은 진료과는 핵의학과(6.1%), 심장혈관흉부외과(4.1%), 산부인과(3.4%), 외과(3.3%)로 대부분이 필수의료 분야다.


반면 전공의 지원율이 높은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등은 0.3%~1.2%의 낮은 사직률을 보였다. 


정부는 젊은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줄여보겠다는 취지로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는 물론 펠로우에게도 월 100만원씩 별도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급 대상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신경과 △신경외과 등 8개 필수의료 과목을 수련 중인 전공의다.


펠로우는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대한의학회에서 인증한 소아 또는 산부인과 분야 세부전공 수련과정에 있는 전임의가 대상이다.


관련 예산으로는 414억6000만원이 투입될 예정이지만 의정갈등 사태로 악화된 필수의료 인력난 해소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아울러 지방에서 필수의료 분야에 종사 중인 의사에게 오는 7월부터 월 400만원의 근무수당 지급이 예정돼 있지만 이 역시 실효성 우려가 크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정사태 이후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 수련 포기 분위기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월 100만원 수당이 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붙잡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너지는 진료과목 균형추…부정할 수 없는 경제논리


사실 진료과목 수급 불균형은 비단 의정사태에 기인한 현상이 아닌 의료계의 고질적 문제였다.


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소위 비인기 필수의료 전문과목의 전공의 지원율은 2014년 84.4%에서 2023년 62,5%로 주저 앉았다.


반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인기 전문과목은 2014년 132.3%에서 2023년 170%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인기 진료과목에 비해 낮은 임금, 높은 업무강도, 의료사고에 따른 법적 책임 부담 등이 필수의료 분야 기피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진료과목별 수익 편차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국내 의사의 평균 임금은 진료과에 따라 많게는 3배 가까이 차이난다. 


안과 등 소위 돈을 잘 버는 인기과는 평균 연봉이 4억원대에 달했으며 필수의료 분야인 소아청소년과는 1억원대로 연봉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안과 전문의의 연평균 임금은 3억8900만원으로 28개 진료과목 중 가장 높았다.


이어 △정형외과 3억7600만원 △신경외과 3억2600만원 △피부과 2억8500만원 △재활의학과 2억8000만원 순이었다.


반면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 연봉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평균 임금은 1억3500만원으로 28개 진료과 가운데 가장 낮았다.


△산부인과 2억3700만원 △응급의학과 2억3400만원 △흉부외과 2억2600만원 △외과 2억2400만원 등 필수의료 분야 대부분이 전체 평균인 2억3700만원을 밑돌았다.


진료과별 건강보험 수가 격차도 필수의료 기피현상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대표적인 필수의료과인 내과의 원가보전율은 72%, 외과 84%, 산부인과 61%, 소아청소년과 79%에 그쳤다.


특히 산부인과(61%)의 원가보전율은 안과 139%의 44%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 20년간 전문과목별로 불균형한 건강보험 수가체계 영향이 누적되면서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특정 과목에 대한 기피현상이 더욱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의료기관의 주요 수익원인 비급여 소득 역시 인기과와 비인기과 차이가 극명했다. 의사들이 비급여 수익률이 좋은 진료과목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보험업계에 따르면 정형외과의 보험금 지급액 대비 비급여액 비율은 71.0%에 달한다. 전체 진료과목의 평균 비급여 비율인 57.8%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도수치료와 증식치료, 체외충격파치료 등 비급여 물리치료 때문에 비급여 비율이 높고 보험금 지급액도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필수의료나 기피과로 분류되는 산부인과 비급여 비율은 51.5%로 평균보다 낮았다. 


그간 인기과로 꼽힌 안과의 경우 2020년 비급여 비율이 80.3%로 높았으나 백내장 수술 관련 보상기준이 강화되면서 28.9%로 낮아졌다.


의료계 한 인사는 “실손보험을 통해 비급여 치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구조가 인기과와 비인기과를 나누고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보상 없이는 기피과 절대 해결 안돼”


문제의 핵심은 필수의료 분야 기피현상이다. 경제논리와 함께 과중한 업무 부담, 의료소송 위험 등이 주요 원인이다.


흉부외과에서 고난이도 심장수술을 수년간 트레이닝한 전문의들이 상대적으로 편하고 수익이 되는 하지정맥 수술을 하는 개원가로 향하는 이유다.


응급수술을 하던 외과 전문의들도 개원가에서 항문 질환 같은 비응급 수술을 하거나 미용수술 쪽으로 가고, 분만하던 산부인과 전문의들도 난임치료나 질성형 같은 분야로 빠지고 있다.


나아가 젊은의사들은 힘들고 수익도 적은 필수의료 대신 기대 수익이 큰 진료과목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의대 정원을 늘이면 증가인원 대다수는 미용 분야로 흘러 들어갈 게 자명하다. 개인적으로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 집단적 결과는 전체 의료 시스템 붕괴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보상이 더 많은 쪽으로 움직이게 돼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제대로 된 보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중증·응급·소아·분만 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들이 비필수 분야로 ‘흘러들어’ 갈 수밖에 없게 현실을 만들어 놓고, 의사수를 늘려 해결하겠다는 발상에 개탄하는 이유다.


그들이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 제대로 된 금전적 보상을 받고, 행복한 개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외에 대책이 없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원로는 “인기과와 인기과는 원래부터 정해진 게 아니다”며 “대표적 기피과인 흉부외과가 미국에서는 인기과다. 다른 분야 의사 대비 2∼3배 보상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구조 속에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젊은의사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냐”며 “낙수효과를 운운할 게 아니라 경제논리로 접근해야 작금의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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