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산업협회 이슬 회장이 2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구교윤 기자
“비대면 진료는 단지 하나의 시장이 아닙니다. 웨어러블 기기를 비롯해 의료기기, 디지털 약국 같은 주변 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격의료산업협회 이슬 회장은 21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대면 진료 법제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촉구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 실장은 “한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진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했지만, 이후 정식 제도화 없이 시범사업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며 “이러한 제도적 미비는 국민 권리를 제한하고,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약(藥), 대면으로 수령"…이용자 대다수가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아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빠르게 확산된 비대면 진료는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상적인 의료 접근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임시 허용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약(藥) 배송 제한과 플랫폼 기준 미비 등 제도적 공백 속에서 제도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실장은 “작년 2월부터 비대면 진료가 전면 허용됐지만, 여전히 약은 대면으로 수령해야 한다”며 “이용자 대다수가 이 부분을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한 디지털 공론장 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이용자들은 서비스 품질과 안정성에 대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으나, 처방약 수령 방식에는 큰 불편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국민은 11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업계에서는 150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실장은 “해외 기업들은 진료는 비대면으로 가능한데, 약은 직접 받으러 가야 하는 한국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전제로 도입된 제도인데, 약 수령 방식은 그 취지를 전혀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는 진화 중인데 한국만 제자리"
이 실장은 또 “해외 사례를 보면 국내 상황이 더 절박하게 느껴진다”며 세계 주요 국가들의 비대면 진료 정책을 비교 사례로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2022년부터 전면적인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으며, 공공보험 체계도 이를 포함하고 있다.
프랑스는 진단, 자문, 모니터링을 포함한 5가지 유형으로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했으며, 민간 플랫폼에 대한 인증 제도와 디지털 처방전 연계를 필수화했다.
인도네시아는 2010년대부터 비대면 진료를 도입했으며, 현재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진료까지 가능해진 상태다.
이 실장은 “한국은 비대면 진료 근거가 부족하고 약(藥) 배송도 허용되지 않으며, 플랫폼에 대한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다. 어떻게 보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삼중 규제’에 갇혀 있는 국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해외는 이미 규제 방향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시장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 헨지에너스 같은 플랫폼은 의료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의사에게 치료법을 제안하는 고도화된 서비스를 상용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전화 상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법과 제도가 기술 발전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세계보건기구(WHO), 미국의사협회(AMA) 등 국제 보건 기구들도 비대면 진료를 공공 의료 체계와 연계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역시 비대면 진료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인도네시아 국민의 58%, 인도 55%, 호주 54%, 중국 53%가 12개월 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경험이 있으며, 싱가포르·필리핀·베트남도 40%를 넘는 수치를 기록했다.
이 실장은 “국내 IT 인프라나 의료 서비스 수준, 국민 인식이 동남아보다 낮은 것도 아닌데 투자 유치 규모는 인도네시아 헤일로닥 한 곳에도 못 미친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한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실패하고 있다”고 거듭 비판했다.
이어 “지금이야말로 법제화를 통한 도약 시기”라며 △네거티브 규제 방식 도입 △의약품 비대면 전달 허용 △민간 플랫폼 기준 정립 등의 구체적 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끝으로 이 실장은 “비대면 진료는 단순히 불편함을 덜어주는 서비스가 아니다. 불평등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환자 중심 의료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인 제도”라며 “기술 발전 리스크만을 근거로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릴 기회를 빼앗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대면 진료 사장을 바라는 국민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기존 의료 한계를 보완하고 국민 건강권과 신산업 육성을 동시에 실현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