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은 올여름 의대생·전공의 복귀를 계기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교육부와 대학들이 2학기부터 의대생 복귀 원칙을 정했고, 전공의도 하반기 추가모집을 통해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언뜻 보면 ‘갈등 종료’에 가까운 장면이지만, 복귀 이후 드러난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 현재 상황은 새로운 시험대에 가깝다는 평가다.
복귀 이후 본과·실습 현장 격차…교육 정상화는 ‘이제부터’
올해 의대 교육 현장은 정원 확대와 갈등 장기화 여파로 인프라 부담이 누적된 상태다.
여러 대학에서 강의실·실습실 부족, 기자재 확충 중단, 교수 충원 지연 등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으며, 증원된 학생 규모에 맞춘 시설 투자가 사실상 속도를 잃은 것으로 파악된다.
일부 대학에서는 정권 교체 이후 신축 계획 자체가 중단되면서, 증원된 정원을 수용하기 위한 강의 공간과 학생 편의시설 확보가 대학 재량에 전적으로 맡겨진 상황이 됐다.
이런 인프라 공백은 실습 교육에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크다. 정원 확대에 따라 본과 실습 대상 학생 수가 기존보다 크게 늘어나면 조 편성당 학생 수 증가와 환자 배정 축소로 인해 실습 참여 기회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향후 본과 3·4학년에서 수백 명의 학생이 동시에 임상실습에 나설 경우, 병원 내 환자 수와 교육용 병상 확보가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두고 의정사태 당시 충북의대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채희복 교수는 지난 10월 ‘계간의료정책포럼’을 통해 “의대 증원으로 인해 의대, 대학병원, 종합병원들의 기능은 마비됐고 목숨만 유지한 채 활동이 멈춘 상태”라며 “정부가 충북대에 애초 약속했던 140명 교수 충원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충북의대 신축 건물 3개동 계획이 정권교체 이후 모두 중단된 상황을 전하며 실습과 관련해서도 “5년 뒤 본과 3학년 150명, 본과 4학년 50명 총 200명이 동시에 병원에 실습을 나오게 되면 정상적인 실습교육을 받기에는 배정할 환자 수가 부족하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올해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전국 국립의대의 동일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증원 계획 축소로 인해 인프라 예산이 대거 삭감되면서 해부학 실습실 같은 최소 교육시설 확충도 지연된 상태이며, 배정 예산 자체가 사라진 대학도 적지 않았다.
경북대는 올해 1357억원 규모의 확충 계획이 확정돼 있었지만 실제 배정액은 18억4000만원에 불과했고, 전북대는 의대5호관 신축 예산 142억원이 전액 취소됐다. 제주대도 내년도 관련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시설 확충비 10억원으로 160명이 들어갈 강의실 3개를 확보했을 뿐 실험실과 신관 개축은 착수조차 못하고 있다”, “시설 예산이 전액 삭감돼 해부학 실습실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정원 확대와 갈등 장기화는 교수·전공의 이탈이라는 또 다른 악영향을 남겼다. 올해 1~9월 전국 10개 국립대병원에서 사직한 교수는 217명에 달했고, 이탈은 의료공백과 교육 차질로 직결되고 있다.
강원대병원·경북대병원 등은 상반기에만 수백억 원대 손실을 기록했으며, 전공의 이탈로 “수술을 못하니 의료 수입이 오를 수 없고 입원도 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진료량이 30% 감소해 연간 530억원 손실을 기록 중”이라는 현장 보고도 나왔다.
지역거점 국립대병원들은 “상식적으로 운영이 불가능한 기업체와 같은 상황”이라며 인력 유출 방지를 위한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의대정원 확대의 후폭풍이 가라앉기 전에 복귀가 이뤄진 만큼, 교육과 수련의 불균형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많다.
실습 병상과 교수 충원 지연, 실험실·강의실 부족, 전공의 공백, 지역 거점병원의 재정 악화 등 서로 연결된 문제들이 누적된 상태에서, 의대생 복귀만으로 교육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장의 우려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전공의 복귀도 수치 이상 문제…기피과·비수도권 격차 심화
전공의 복귀는 숫자상으로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하반기 모집에서는 수도권·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충원율이 높아졌고, 응급실·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는 일정 부분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복귀 규모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과 달리, 실제 수련 현장의 여건은 여전히 정상화와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전공과별 편차는 더욱 뚜렷해졌다.
전공과별 편차는 더욱 뚜렷해졌다. 피부과·안과 등 일부 과는 예년 수준에 가까운 충원율을 보였지만,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외과 등 필수과는 지원이 크게 줄었다.
전문의 자격시험 응시 추세에서도 이런 흐름이 그대로 반복됐다. 내년 2월 치러지는 전문의 시험 응시자는 총 2155명으로 올해 557명 대비 약 3.9배로 증가했지만, 정작 심장혈관흉부외과는 14명, 소아청소년과는 80명에 그쳐 2년 전보다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응급의학과, 외과 등도 모두 감소하며 기피과 흐름이 더욱 굳어지는 양상이다. 지방 수련병원 가운데는 여전히 필수 당직을 구성하기조차 쉽지 않은 곳도 남아 있다.
이번 전문의 시험 추진 과정에서 허용된 ‘조건부 응시’ 조치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정부는 하반기에 복귀한 전공의들에게 내년 2월 전문의 시험 응시를 허용했지만, 합격 후 8월까지 수련을 완료하지 못하면 합격이 취소되는 방식이다.
의료인력 수급을 감안한 결정이었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전문의 수련이라는 본질적 가치가 훼손된다”는 반발이 컸다. 실제로 대한의학회 투표에서도 ‘찬성’ 12표, ‘반대’ 12표로 동률이 나왔고, 정부의 행정적 필요에 의해 수련 원칙이 흔들린 선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전공의 공백이 길어진 만큼 수련 품질 저하에 대한 우려도 해소되지 않았다.
지난 1년여 동안 교수·전임의가 수련병동과 응급실 업무를 대신했고, 그 결과 교육·연구 역량이 소진된 상태라는 지적이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복귀 전공의들이 당직·수술·회진 교육을 예년 속도로 되찾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일부 학회에서는 전공의를 ‘허드렛일’에서 배제하고, 전문 간호사 등 타 인력을 투입해 핵심 술기 학습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는 개선 방안도 제기됐다.
‘특혜 봉합’ 논란…2라운드 가능성 배제 못해
복귀가 선언된 직후부터 가장 많이 제기된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마무리했느냐’에 대한 평가다.
의대생 복귀의 경우 대학별 학사 운영이 들쑥날쑥한 가운데 복귀 조건이 사실상 대학 자율에 맡겨지면서 형평성 논란이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결과적으로 유급·제적 원칙이 흐려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전공의 복귀 논의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초과정원 허용, 군 입영 등 요구가 폭넓게 수용되면서 “해 달라는 것을 대부분 들어준 타협”이라는 지적이 의료계 안팎에서 동시에 제기됐다.
반대로 의료계 내부에서는 “진료 공백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는 반론도 존재해 복귀 방식을 둘러싼 평가는 지금도 엇갈린다.
또 ‘2라운드’ 갈등 가능성을 예고하는 신호도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의대 정원 조정 논의가 다시 진행되고 있고, 검체검사 수탁 구조 개편, 성분명 처방, 한의사 엑스레이 허용 등 의료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책들이 연이어 추진되고 있다. 갈등이 완전히 정리되기도 전에 새로운 충돌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결국 의대생·전공의 복귀는 ‘끝’이라기보다 정상화를 향해 가는 첫 단계라는 점이 더 크다.
누적된 학습 격차·수련 공백, 기피과 인력난, 지역 편차, 복귀 방식의 형평성 논란, 그리고 정부·의료계 간 신뢰 회복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갈등 초기와 다르지 않다.
복귀 합의가 의정 갈등의 마지막 장(場)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갈등의 서막이 될지는 앞으로 몇 달간의 운영·정책·신뢰 회복 과정에 달려 있다.
지금 드러난 상황만 놓고 보면, 의대생과 전공의가 돌아온 ‘이후 시간’이야말로 갈등의 진짜 시험대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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