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MRI·CT 등 특수의료장비 설치를 위한 ‘공동활용병상제’ 폐지 방침을 밝힌 후 4년이 지났지만 의료계 반대 및 법적 근거 부재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한 가운데 관련 법적 근거가 마련될 전망이다.
특수장비 도입·교체 연한 기준을 ‘병상’에서 ‘의료 수요’로 전환,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병상 거래를 원천 차단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의료법 개정안’을 지난 7월 1일 대표발의했다.
현행법령은 의료기관이 MRI·CT 등 특수의료장비를 설치하려면 200병상 이상을 갖춘 의료기관(市 지역 기준)에 한해 허용하고 있다.
200병상 미만 의료기관은 다른 의료기관과의 병상 공동활용을 전제로 병상 수 합이 해당 기준을 충족하면 장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활용병상 충족률은 전국 평균 46.3%, 서울은 25.1%에 불과하다. 이에 제도 운영의 전제가 되는 병상 확보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병상 수가 부족한 중소 의료기관은 장비 설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병상 1개당 약 300만원을 지급하고 병상을 확보하는 등 ‘병상 거래’를 하며 제도 취지를 훼손하는 음성적 거래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개호 의원은 “이는 규제가 시장을 왜곡하고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사례로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규제는 의료기관의 합리적인 장비 도입과 교체를 원천적으로 제한해 의료서비스 질(質) 저하를 초래하고 최신 의료기술 도입과 노후 장비 교체가 지연됨에 따라 국민들의 진료 접근성과 치료 수준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병상 수를 기준으로 한 획일적 규제는 현실과 괴리가 큰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의원에 따르면 일례로 서울 대형 의료기관은 MRI 및 CT 장비를 39대 운영하고 있다. 이에 7800병상을 운영해야 하지만 약 2000병상만 운영해도 실제로는 장비 운영이 허용되고 있다.
이 의원은 “이러한 형평성 문제도 심각하다”며 “더욱이 CT 장비는 이미 일반적인 진료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종합병원에 대해서는 별도 시설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규제 체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동활용 대상 의료기관이 폐업 또는 이전하는 경우, 해당 의료기관은 즉시 병상 기준 미달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에 장비 추가 도입은 물론 노후 장비 교체조차 불가능해지는 문제가 발생해 또 다시 병상 거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특수의료장비는 외래 진료 중심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설치 기준을 입원 환자 수용을 전제로 한 병상 수에 연동시키고 있는 현행 규제에 기인한다.
이 의원은 이를 “의료 수요와 공급 간 합리적 연계를 저해하는 비합리적 규제”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행 제도는 고가 의료장비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도입 취지를 상실한 채 시장 왜곡, 의료서비스 질 저하, 규제 형평성 훼손, 행정 비효율 등 다층적인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수의료장비 설치 기준, ‘병상→의료 수요·진료 기능’ 전환
이에 이번 개정안은 특수의료장비 설치 기준을 의료기관 병상 수가 아닌 실제 의료 수요와 진료 기능을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게 골자다.
장비 공급을 시장 원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전면 개편해 획일적인 양적 규제를 지양하고, 장비 성능·운영 적정성·의료인력 확보 등 질적 기준 중심 관리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히 장비 사용 연한에 따른 차등수가제를 도입해 노후 장비의 자연스러운 퇴출을 유도하고 신규 장비 도입을 촉진하는 한편, 영상의학과 전문의 등 필수 의료인력의 적정 배치도 의무화한다.
이개호 의원은 “장비 운영 전문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비현실적이고 왜곡된 현행 규제를 정상화하고, 의료서비스 질적 향상과 국민 건강권 보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가 지난 2022년 보건의료발전협의체 회의에서 의료비 증가 원인으로 꼽히는 공동활용병상제 폐지 검토 방침을 밝히자 개원가를 중심으로 의료계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개원가는 “제도가 폐지될 경우 자체 보유 병상이 부족한 의료기관은 CT나 MRI 설치가 불가능해지고, 1차 의료기관 특수의료장비 신규 도입이 막힌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정부는 잦은 인사교체 등의 요인이 겹치며 관련 폐지안·혁신안을 공개하지 않았고, 올해 2월 열린 전문기자협의회 간담회에서도 제도 시행 일정을 공개하지 못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측은 “존속 인력 기준, 공동병상에 대한 설치 인프라 기준, 품질 평가 등 3가지 방안으로 특수의료장비 관리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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