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바뀌었는데 법원 판결은 아직도…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이후 잇단 ‘거액 배상’…醫 “필수의료 걸림돌”
2026.07.21 16:30 댓글쓰기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 의료인의 형사처벌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체감 변화가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하위법령 마련 등 후속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법원에서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의료기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의료계 우려가 증폭되는 모습이다.


특히 중증·소아·응급·분만·외상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영역에서 수 억원대 손해배상 판결이 이어지면서 제도 시행 전까지 필수의료 기피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국회는 지난 4월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형사처벌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은 오는 2027년 5월 27일 시행될 예정으로, 정부는 현재 대상 의료행위와 적용 범위 등을 담은 하위법령을 마련 중이다.


의료계는 해당 제도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사법부 판단은 여전히 엄격한 책임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최근 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대부분 필수의료 영역에서 의료기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전신마취 수술 후 회복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뇌손상을 입은 사건에서 병원이 회복실 환자 상태를 적절히 관찰하지 못했다며 약 6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발열 증상을 보인 환자가 응급실을 찾았다가 안구운동장애 등 후유장애를 입은 사건에서는 의료진이 신경학적 이상 소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며 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또 다른 사건에서는 수술동의서를 받은 뒤 실제 수술까지 약 90분이 경과한 점을 문제 삼아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다며 병원 책임을 인정한 판결도 있었다.


최근에는 호흡곤란과 청색증 증상을 보인 신생아의 상급병원 이송이 지연돼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의료진을 상대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수사 중이다.


의료계는 각각의 사건마다 사실관계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 고난도 필수의료 현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응급상황이나 중증환자 진료 특성상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존재함에도 결과 책임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의료진은 고위험 환자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최선을 다한 의료행위와 명백한 과실을 구분하는 사회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누구도 위험한 환자를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형사처벌 완화 법안이 통과됐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민사상 거액 배상과 형사 수사 부담이 여전히 존재한다”며 “의료진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아직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의료계는 현재 마련 중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제도의 실효성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제한되거나 중대한 과실 인정 범위가 모호할 경우 입법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는 하위법령에 입법 취지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며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의료진이 불가항력적 사고까지 모두 책임지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도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이 실제 현장에서 안착하려면 형사절차뿐 아니라 민사책임 판단 기준과 의료감정의 전문성 강화 등 후속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의료 전문 변호사는 “필수의료를 국가가 보호하겠다는 정책 기조와 의료현장에서 체감하는 법적 위험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게 향후 의료개혁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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