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와 병원 AI 동행, 의료혁신 반드시 가야할 길”
김종엽 대한의료정보학회 이사장(건양대병원 의생명연구원장)
2026.09.14 08:24 댓글쓰기

[특별기고]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지난 3년, 의료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 있다. 다름 아닌 “사람은 늘릴 수 없는데 일은 계속 늘어난다.” 


환자는 다른 산업처럼 병원도 빠르게 바뀌기를 기대하지만, 정작 현장은 기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성형 인공지능(AI)가 우리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필자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자 직접 코드를 짜는 개발자로서 이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 병원 디지털 전환은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 병원은 크게 네 갈래로 변하고 있다. 


첫째는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으로 대표되는 임상 영역 AI다. 


둘째는 업무 자동화(RPA)다. 음성 기반 전자의무기록(EMR)처럼 비임상 영역의 반복 업무를 걷어내는 흐름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셋째는 환자 경험 디지털화, 넷째는 이 모든 것을 떠받치는 인프라와 보안 재설계다.


시장 무게중심이 ‘완성된 제품을 사는 것’에서 ‘빠르게 만들어 현장에서 다듬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AI모델이 두세 달이면 세대를 갈아치우는 시대에 1~2년짜리 중장기 계획을 세워 완제품을 기다리는 방식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


제약사 병원 AI 진출,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지점에서 전통 제약사 움직임이 의미심장하다. 


제네릭과 신약에 기대온 의약품 시장이 정체되면서, 국내 제약사들은 디지털헬스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보고 헬스케어 스타트업과의 협업에 나서고 있다. 


대웅제약, 유한양행, JW중외제약, 동아에스티 등이 AI 기업과 손을 잡았다. 


일부 제약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심전도 원격 모니터링 플랫폼이나 안저 판독 AI 같은 외부 솔루션의 의료기관 영업과 판권까지 직접 맡고 있다.


나는 이 흐름이 단순한 사업 다각화 이상이라고 본다. 


디지털헬스 솔루션은 신약과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약은 기술이전만으로도 상업화의 상당 부분이 완성되지만, 디지털헬스는 ‘임상 이후 유통 구조’가 성패를 가른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면 현장에 닿지 못한다는 뜻이다.


바로 여기에 제약사와 AI 기업 상생 구조가 있다. 제약사는 수십 년간 다져온 병원 네트워크와 의료진과의 신뢰 관계, 그리고 규제·인허가 경험과 영업 채널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AI·디지털헬스 기업은 기술과 속도, 특정 진료현장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가지고 있다. 


한쪽은 길을 알고, 한쪽은 차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둘이 제대로 맞물릴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동행’이 성립한다.


현장 안착 관문은 사람과 제도


다만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여러 분석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듯이 디지털 전환 걸림돌은 기술30%, 사람과 조직이 70%다. 기술은 이미 준비돼 있고, 진짜 문제는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산업혁명기에 방직기를 부수던 이들을 러다이트(Luddite)라 불렀는데, 오늘의 병원에도 러다이트는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혁신의 대명사인 실리콘밸리 기업조차 이 저항 비율이 평균적으로 상당히 높다고 하니,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셈이다. 


여기에 추가로 현장 의지만으로 닿지 못하는 영역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망분리와 클라우드 규제다. 


미국 국방·정보기관조차 더 이상 물리적 망분리에 기대지 않고 ‘아무도 신뢰하지 않고 항상 검증한다’는 제로 트러스트 방식으로 옮겨갔다. 


우리 공공 부문도 2025년부터 망분리 의무화 규제를 완화하고 제로 트러스트 기반 보안 프레임워크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료기관은 여전히 가장 보수적인 영역으로 남아, 망분리에 갇혀 인터넷도 SaaS도 마음껏 쓰지 못하는 사이 정작 폐쇄망 내 데이터가 더 허술하게 관리되는 역설마저 벌어진다. 


개인정보보호 영역에서 클라우드 활용의 길이 넓어져 온 만큼, 이제는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도 보안 패러다임의 전환에 발맞춰 정비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안정적인 시장이 형성되려면 수가·급여 등재와 평가·인증 체계가 함께 정돈되어야 한다. 


명확한 매출 구조를 확보한 의료 AI 제품들이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결국 제도가 곧 산업의 토양임을 보여주며, 좋은 기술이 현장에 안착하려면 규제·보안·수가라는 세 개의 빗장이 동시에 풀려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병원·제약사 ‘디지털헬스 동행’ 기대”


이미 산·학·연·병이 함께 의과학 특화 AI 모델을 만드는 대형 컨소시엄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병원은 현장 문제와 임상 데이터를, 제약사는 네트워크와 자본 그리고 규제 역량을, 디지털헬스 기업은 기술과 속도를 가지고 한 테이블에 앉게 될 것이다. 


각자가 가장 잘하는 것을 내어놓을 때, 솔루션은 비로소 실험실을 벗어나 진료실에 안착한다. 다만 시간이 많지 않다. 경험상 지금부터 1년 반 남짓이 일종의 골든타임이다. 


이 융합 시점을 제때 통과하면 대한민국 의료계는 가속도가 붙어 치고 나갈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지금의 성장 기울기를 유지하는 데 그칠 것이다. 


기술은 이미 준비됐다. 남은 것은 사람의 결단이다. 가장 큰 리스크는 실패가 아니라 지금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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