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과 전문의는 산술적으로 주당 114시간을 근무하고 있다. 밤에 산모가 오면 병원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일상이 없는 생활이다. 졸업하는 전공의들에게 산과를 권유하면 ‘너무 무섭다’, ‘교수님처럼은 못 산다’는 말을 듣는다.”
지역 고위험 산모 진료를 책임지는 권역모자의료센터가 전문의 부족과 낮은 수가, 의료사고 부담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호소가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에서 충분한 민사 배상이 담보되고 중과실이 아닌 의료과실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제도 보완을 주문했다.
조현진 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 권역모자의료센터장(산부인과 교수)은 22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지역·필수·공공의료 간담회’에서 산과 진료 현장 인력난과 경영 부담을 설명하며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밤에도 나가고 환자 이상해도 뛰어나가고, 일상이 없는 산과 교수”
조 센터장은 “낮에 최소 3명이 근무하고 밤과 주말에 각각 한 명이 당직을 선다고 계산하면 일주일에 228시간이 필요하다”며 “전문의 2명이 담당하면 1인당 산술적으로 주 114시간을 근무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해진 시간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밤에도 산모가 오면 병원으로 나가고 환자 상태가 갑자기 이상해지면 즉시 뛰어가야 한다”며 “산술적으로는 114시간이지만 일상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토로했다.
병원이 환자를 많이 진료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도 산과 인력 확보를 어렵게 하고 있다.
조 센터장은 “해운대백병원은 모자의료진료협력 시범사업 대표병원 참여 이후 고위험 산모 환자가 약 1.8배 증가했다”면서 “고위험산모집중치료실을 150% 확대했고 신생아중환자실도 확장하고 있지만 환자가 1.8배 늘면서 적자도 1.8배 증가했다”고 말했다.
과거 산과 진료가 건강한 산모의 분만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현재 권역모자의료센터는 고위험 산모와 태아를 장기간 관찰하고 응급상황에 대응하는 역할도 커졌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전공의들에게 적극적으로 산과를 선택하라고 권하기 어렵다”며 “수가가 개선됐지만 분만 전 고위험 산모를 진료하는 과정에 대한 보상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조 센터장은 “고위험 산모의 태아가 오늘 하루, 내일 하루를 더 견디면 생존율이 높아진다”며 “매일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분만실을 지키지만 노동 강도와 위험이 수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권역모자의료센터, 상급종합병원 평가시 배점 확대 필요”
조 센터장은 산과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별도 ‘산과 지역의사제’ 도입을 건의했다.
현행 지역의사제를 통해 병원별로 배정되는 인원이 2~3명 수준이고 이들이 모두 산과를 선택하는 것은 아닌 만큼, 일정 규모 이상 고위험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전문의를 국가가 집중적으로 지원·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고위험 산모를 연간 일정 규모 이상 진료하는 산과 의사들을 국가가 관리해 이탈을 막아야 한다”며 “소송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국가가 산과 의료진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어야 인력 충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역모자의료센터에 대한 상급종합병원 평가 배점 확대도 요청했다.
권역모자의료센터 운영에 올해 처음으로 상급종합병원 평가점수 0.25점이 반영됐지만, 배점을 높이고 산과 전문의 4명 등 인력기준 충족 여부와 연계해야 병원 차원의 인력 확보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센터장은 “산부인과 전공의 자체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산부인과 전공의 중 산과를 선택할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며 “제도를 미리 공표하면 병원도 향후 평가에 대비해서 전공의들에게 산과 진료를 적극적으로 권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만 건수가 적더라도 대학병원 분만실에는 24시간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놨다.
그는 “소방서에서 불이 나지 않는다고 사람을 빼지는 않는다”며 “분만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다면 분만 건수가 한 달에 5건이든 10건이든 응급환자와 수술, 분만에 대응할 의료진과 의사 보조인력이 3교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李 대통령 “의료과실 형사처벌, 필수의료 회피 초래”
이재명 대통령은 조 센터장 발언 이후 고위험 필수의료 의료진이 감당하는 ‘사법 위험’을 별도 언급했다.
의료사고에 대한 민사 배상이 보험이나 합의를 통해 충분히 보장된 경우 중과실이 아닌 의료과실에는 형사책임 특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악의를 갖고 일부러 사고를 냈다면 처벌해야 하지만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진료하다 발생한 과실까지 형사처벌 위험에 빠뜨리면 의료진은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진이 위험한 진료를 회피하면 국민이 오히려 더 큰 위험에 처하는 모순이 발생한다”며 “배상이 충분히 담보될 정도로 책임 보험에 가입돼 있거나 합의가 이뤄졌다면 과실범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대통령 지적에 대해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으로 의료기관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에는 정부가 보험료를 지원해 최대 18억원까지 배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형사 책임과 관련해서도 ▲환자에 대한 사고 설명 ▲적절한 배상 ▲고위험 필수의료 해당 ▲중과실이 아닐 것 등의 조건을 충족하면 특례를 적용하는 제도가 내년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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