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이 진단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료진 치료 선택에 폭넓은 재량을 인정했다.
여러 치료법이 가능한 경우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선택을 과실로 단정할 수 없고, 검사·설명 의무 위반이 있더라도 환자 상해(傷害)와의 인과관계는 별도로 엄격히 입증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제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지난 16일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기소된 피부과 전문의 A씨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B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13년 7월 당시 12세였던 환자 등 부위 피부발진을 진료한 뒤 답손(Dapsone)을 처방했다.
답손은 한센병과 포진피부염 등 일부 피부질환 치료에 쓰이는 약물로, 독성간염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투약 전후 혈액검사와 간기능검사가 필요하다.
환자는 답손을 복용한 뒤 같은 달 31일부터 고열 등의 증상을 보이다 8월 4일 해당 병원 응급실에 내원해 입원했고, 이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B씨가 진료를 맡았다.
환자는 증상이 악화돼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됐으며, 8월 21일 전격성 간부전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같은 날 간이식을 받았다. 간장애 5급 판정도 받았다.
검찰은 A씨가 답손 처방 후 정기적인 혈액검사와 간기능검사를 하지 않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부작용과 발열 발생 시 대응 방법을 설명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봤다.
B씨에게는 답손에 따른 약물과민반응증후군이 의심되는데도 스테로이드를 조기에 투여하지 않고 투여와 중단을 반복해 치료를 지속하지 않은 책임을 물었다.
원심은 두 의사 주의의무 위반으로 환자 상태가 악화됐다고 보고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엇갈린 검사 결과…“스테로이드 지속 투여만 옳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두 의사 형사책임을 서로 다른 이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먼저 B씨에 대해서는 스테로이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지 않은 선택이 당시 의료수준에서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났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당시 환자 상태가 답손에 따른 약물과민반응인지, 아니면 중증 감염인지 명확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약물과민반응에서 흔히 증가하는 호산구는 정상범위였지만 백혈구와 감염 관련 지표는 크게 올라 두 질환이 함께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스테로이드는 약물과민반응 치료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감염이 원인이라면 상태를 악화시킬 위험이 있었다. 피부과 협진에서도 면역글로불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B씨가 스테로이드 투여를 중단하고 면역글로불린 치료로 전환한 것을 두고 “당시 임상의학 지식 및 준칙 범위 내에 있는 합리적인 치료법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의사는 환자 상황과 당시 의료수준, 자기 지식과 경험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상당한 범위 재량을 가진다”며 “진료 결과를 놓고 그중 어느 하나만 정당하고 다른 조치를 취한 것은 과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사 책임 인정돼도 형사 책임은 별개”
A씨에 대해서는 혈액검사와 간기능검사를 하지 않고 부작용 대응을 설명하지 않은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이 같은 과실 때문에 환자가 간이식과 간장애에 이르렀다는 인과관계는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검사했더라도 약물과민반응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조기 치료가 간이식을 막았을지도 불분명하다는 의료감정 결과가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의사 과실이 인정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과실 때문에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과실이 없었다면 상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까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한 민사소송에서는 병원을 운영한 학교법인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돼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사재판에서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 이익으로’라는 원칙에 따라 과실과 인과관계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돼야 하므로 민사재판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진료 결과만을 근거로 특정 치료를 정답으로 단정하거나, 검사·설명 의무 위반만으로 환자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까지 물을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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