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원 내부에서 환자 전자의무기록(EMR)을 진료와 관계없이 들여다 보는 행위에 대한 관리가 한층 강화된다.
환자 기록을 새로 작성하거나 수정하는 경우는 물론 단순히 열람한 경우에도 누가, 언제 환자 기록에 접근했는지를 별도 접속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환자정보 보호를 강화한다는 취지이지만 일선 의료기관에서는 EMR 시스템 개편과 접속기록 관리·점검 등에 따른 행정적·전산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시행 예정일은 오는 12월 10일이다.
개정안은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전자의무기록을 기재·추가기재·수정하거나 이를 열람한 경우 이력관리 장비에 접속기록을 별도 보관토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번 조치는 앞서 개정된 의료법 후속 조치다. 기존에는 전자의무기록에 추가기재 또는 수정을 한 경우 접속기록을 보관하도록 했지만, 앞으로는 ‘열람’으로까지 대상이 확대된다.
사실 환자정보에 대한 접근기록 자체가 새롭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개인정보 보호 관련 규정에서도 접속자와 접속 일시, 수행 업무 등을 기록하도록 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역시 시스템 접속기록 보관·점검 의무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의료법 차원에서 환자 진료기록의 ‘단순 열람’까지 명시적으로 관리 대상에 포함하면서 병원들의 관리 책임이 더욱 명확해졌다는 점이다.
특히 병원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로그를 남기는 것’과 ‘로그를 관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대형병원의 경우 하루에도 수 많은 의료진과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원 등이 EMR에 접속한다. 진료 과정에서 여러 환자의 기록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업무도 빈번하다.
진료지원 업무나 협진, 응급상황 대응 과정에서 의료진이 여러 환자의 기록을 조회하는 경우도 적잖다.
따라서 단순 열람까지 모두 접속기록 관리 대상이 되면 병원은 방대한 로그를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것은 물론 특정 접속이 정당한 업무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
특히 무단열람 의심 사건 발생시 단순히 접속자 확인 수준을 넘어 접속 당시의 업무 목적과 환자와의 관계, 진료 또는 행정업무상 필요성 등을 함께 확인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 병원 관계자는 “환자정보 보호와 내부 직원 무단열람 방지에는 이견이 없지만 EMR 접속 인원이 많은 대형병원은 단순 열람까지 확대되면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록을 저장하는 시스템뿐 아니라 이를 검색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능까지 필요해질 경우 병원의 전산 투자와 관리 인력 부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우려는 의료기관마다 EMR 시스템과 전산 인프라가 다르다는 점이다.
대형 상급종합병원은 자체적으로 대규모 전산조직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소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은 외부 EMR 업체의 시스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제도 시행을 위해서는 기존 EMR이 단순 열람에 대해서도 의료법상 요구되는 방식으로 접속기록을 생성·보관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시스템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정부가 제도를 시행하더라도 실제 시스템에 해당 기능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의료기관들은 최근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 강화를 위해 접근권한 관리, 인증, 암호화, 접속기록 보관 등 다양한 보안조치를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결국 병원 입장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의료법이라는 서로 다른 규율 체계에 맞춰 EMR 접근권한과 로그 관리체계를 정교하게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는 “의료기관 규모와 전산환경을 고려한 단계적 적용과 충분한 준비기간, EMR 업체의 시스템 개선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누가 환자기록을 봤는지’에 대한 감시 강화가 아닌 의료진의 정상적인 진료행위는 보장하면서 실제 무단열람을 효과적으로 걸러낼 수 있는 관리체계”라고 덧붙였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역시 11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조치가 의료진 감시와 책임 추궁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협의회는 “전자의무기록은 환자를 잘 치료하기 위한 임상 정보 시스템이지 의료진의 모든 행동을 기록해 사후 책임을 묻기 위한 ‘블랙박스’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의료분쟁 발생 시 EMR 열람·수정 기록을 토대로 의료진의 진료 행위를 사후 재구성할 경우 비공식적인 동료 자문과 협진은 물론 정상적인 진료기록 보완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접속기록 이용목적 제한과 정상적인 진료·협진 목적 접근에 대한 보호, 조작 고의성 추정 금지, 의료분쟁·수사 과정에서 무분별한 활용 방지 등 안전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협의회는 “환자 정보는 철저히 보호하되 정상적인 진료는 위축시키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전자의무기록 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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