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上] HLB 간암치료제 '리보세라닙'이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신약 승인을 받지 못하면서 국내 바이오업계에 후폭풍이 거세다. HLB는 주가 급락으로 시가총액이 무려 6조 원가량 증발했다. 미국 현지에 대거 채용한 마케팅 인력은 해고 절차를 밟고 있으며 국내 증시에서 코스피 이전 상장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HLB는 진양곤 회장이 직접 나서 중국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 CMC(화학제조품질) 문제와 해외 바이오리서치 모니터링(BIMO) 미완료를 FDA 허가 보류 이유로 꼽으며 빠른 시일 내 재도전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아직 정확히 공개되지 않은 허가 보류 지적 사항을 확인해야 향후 진행 과정을 가늠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그런 측면에서 HLB가 제시하는 일정보다 훨씬 긴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편집자주]
HLB는 지난 5월 17일 "간암 1차 치료제로 미국 FDA에 신약허가를 신청한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 '캄렐리주맙' 병용요법과 관련해서 CRL(보완요구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다.
HLB에 따르면 FDA가 CRL을 통해 보완 요구한 사항은 두 가지다.
구체적으로 ▲항서제약 캄렐리주맙의 일부 미비한 점으로 인해 병용요법으로 사용되는 리보세라닙 승인 보류 ▲해외여행 제한으로 인한 BIMO Inspection(임상 사이트 실사) 미완료 등이다.
중국 항서제약 CMC 지적…"문제 보완 기간, 1년 넘게 소요될 수 있어"
HLB의 미국 자회사 엘레바는 지난해 5월 16일 리보세라닙 NDA를, 항서제약은 지난해 5월 31일 캄렐리주맙의 BLA를 신청했다. 캄렐리주맙은 중국 항서제약이 개발한 PD-1 항체 저헤제로 면역항암제다.
FDA는 병용요법을 하나의 약물로 보고 CDER로 이관해 심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1년여 심사 결과 항서제약의 캄렐리주맙 CMC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HLB는 CMC 전반(제조공정)이 아닌 퍼실리티(facillity) 문제라며 "최근 5년간 CMC 문제로 이슈가 돼서 CRL을 받은 경우 다시 허가를 받는 기간이 평균 6.7개월"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으로 퍼실리티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심사 기간을 추정하는 건 섣부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CMC 문제로 보완 과정을 거치게 될 경우 지적받은 부분에 대한 데이터를 다시 수집하고 각각의 evidence(근거)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HLB 관계자는 "항서제약은 앞서 CMC에 대한 지적을 받고 추가실험을 해 이상 없다는 데이터를 FDA에 제출했다. 그래서 최종 결과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새로운 이슈는 아닐 것으로 생각해 추가 보완 서류를 제출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퍼실리티는 조명, 공조시설, 배관, 위생시설 등을 말한다. 이에 퍼실리티 이슈는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험실 내 시설에서 미비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정확한 내용은 FDA 미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제조공정→시설 문제" HLB 입장 번복으로 주주들 혼란
다만, HLB가 해명 과정에서 지적받은 부분이 CMC 어느 부분인지에 대해 입장을 번복하면서 주주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CMC는 크게 제조공정, 시설로 구분된다. 진양곤 HLB그룹 회장은 "심사 과정에서 항서제약은 CMC 실사에 대해 마이너한 내용을 지적받았고 이를 수정 보완해서 해결된 내용을 답변했다고 저희에게 수차례 피력했다"며 "하지만 캄렐리주맙 제조공정 지적에 대한 항서제약 측 답변이 FDA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후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도 진 회장은 "시설 문제라면 보완에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우리는 공정과 관련된 마이너한 지적 사항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프랭크 지앙 항서제약 부사장은 지난 23일 HLB 바이오 포럼에서 "CMC보다 세부 항목인 퍼실리티 문제"라며 "공정 문제보다 시설 문제가 해결하기 쉽다"고 밝혀 HLB측을 당황시켰다.
이후 HLB측은 다시 "공정이나 생산시설이 아닌 건물 내 일부 퍼실리티 문제"라고 번복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FDA 허가가 보류됐는데 구체적인 지적 사항이 무엇인지 파악도 못한 상태에서 입장을 번복하며 빠른 해결이 가능하다고 섣불리 언급하면 주주들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임상시험 실사 미완료…HLB "美FDA 귀책 사유"
FDA는 CMC 외에도 '여행 제한으로 인한 BIMO 미완료'를 CRL 발행 이유로 꼽았다.
BIMO는 FDA가 임상 스폰서(제약사), CRO(임상시험수탁), 병원 등 3~5곳의 현장 실사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FDA는 실사 미완료 국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HLB는 러시아(13개소), 우크라이나(8개소)로 추정하고 있다. 미완료 사유가 '여행 제한'으로 기재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임상 참여 피험자가 많고 미국·서유럽 대비 비용이 적게 든다.
이에 다수 국내 기업들도 해당 국가에서 임상을 진행한 바 있는데,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부분 제약사들은 타 국가로 임상 계획을 변경했다.
다만, HLB는 전쟁 발발 전에 임상시험이 종료돼 실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것이란 예상을 못했다는 입장이다.
또, 앞서 금년 3월말 진행된 파이널 리뷰 미팅에서 FDA가 임상 사이트 실사를 마치지 못했다고 언급했는데도 당시 HLB가 "특별한 이슈 없이 종료됐다"고 밝혀 질타를 받고 있는데, 고시 의무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HLB 관계자는 "파이널 리뷰에서 최종 결과 발표까지 2개월이나 남았고, 알릴 의무가 없기 때문에 실사가 완료되지 못했다는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BIMO는 회사가 할 일이 아니라 FDA가 진행할 사안이며 해당 국가를 방문하면 하루면 끝나는 일이다. 심지어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원격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며 "이건 우리 귀책 사유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FDA 귀책 사유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업계에서는 단순히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전쟁 지역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임상 설계 및 결과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 임상 3상은 121개 의료기관에서 54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아시아인 82.7%, 비아시아인은 17.3%였다"며 "백인(코카서스 인종) 비중이 적은 데다, 백인 비율이 높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실사도 어려웠기 때문에 임상시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