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치료제, 전기차 보조금 같은 마중물 절실"
의사 출신 웰트 강성지 대표
2023.05.31 16:20 댓글쓰기

"전기차가 자동차 산업 변화를 이끈 것처럼 디지털치료제(DTx)도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겁니다. 미래 먹거리로 디지털 헬스케어를 키우려면 규제혁신과 함께 정부 예산 지원이 절실합니다." 지난 4월 국내 2호 디지털치료제 'WELT-I'를 선보인 웰트 강성지 대표[사진]는 우리나라에서 이제 첫 발자국을 내딛은 디지털치료제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한 이 같은 조건을 제안했다.

의사 출신 창업가인 강 대표는 디지털헬스케어 시장에 10년간 몸담아 왔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보건복지부에 들어갔다가 삼성전자에 입사, 2년여만에 웰트를 세워 분사했다.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며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그와 디지털치료제 '사업'을 너머 '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과 향후 과제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강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Q. 디지털치료제란

학교에서 공부해도 성적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할까. 온라인 강의를 찾아 듣는다. 디지털치료제는 온라인 강의에 해당한다. 질병을 앓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맞춤형 의료 플랫폼인 셈이다. 의사가 기존 치료제와 더불어 처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형태 약(藥)이다. 


Q. 'WELT-I'가 두 번째 디지털치료제로 이름을 올렸다. 소감은

허가 그 자체도 의미 있지만, 더 큰 성과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국내 최초 '비대면 임상(분산형 임상)'으로 식약처 허가를 획득했다. 물론 대면과 비대면 임상 이중 설계로 진행됐지만, 비대면 임상 분야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전(全)과정 비대면 임상 데이터로 허가 심사대를 통과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결과다. 


Q. 분산형 임상을 선택한 이유

비용과 시간이 획기적으로 절약되서다. 실제 분산형 임상과 대면 임상을 비교해보니 기간은 1/2, 비용은 1/4 줄었다. 웰트는 기존 임상과 동등한 수준의 신뢰도를 갖춘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면서도 방문 횟수는 줄이고 중도 일탈률은 낮추도록 임상을 설계했다. 게다가 후기 임상 진행 시 환자 추적 관찰에도 유용하며, 글로벌 기준에 맞게 설계해 미국 진출 시 활용할 수 있다. 빅파마들과 경쟁이 힘든 국내 바이오벤처들에게 비대칭 전략으로 쓸 수 있는 새로운 임상 방식이다. 


Q. 분산형 임상 시행은 코로나 특수가 영향이 컸다

그렇다. 감염병 확산 방지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 허용되면서 분산형 임상도 추진됐다. 그러나 분산형 임상과 비대면 진료는 전혀 다르다. 분산형 임상은 식약처와 병원 IRB 관리 아래 진행되기 때문에 안전성이 보장된다. 따라서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가 개척한 분산형 임상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어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정도로 발전하길 바란다. 


Q. 디지털치료제 1, 2호 모두 '불면증' 대상이다. 왜 그런가

해외에서 불면증 디지털치료제를 많이 출시했기 때문에, 이들을 따라잡고자 동일한 적응증을 대상으로 골랐다. 암, 희귀질환과 같은 적응증을 타깃으로 하면 심사 기준을 새로 만들어야 하고 선례가 없어 상용화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수출도 쉽지 않다. 이에 해외 시장을 장악 중인 국내 바이오시밀러처럼 '디지털시밀러' 전략을 취했다. 같이 가야 멀리갈 수 있다. 




Q. 디지털치료제는 어떻게 진화할까

WELT-I의 경우 1.0 버전에서 2.0, 3.0 버전으로 업데이트될 것이다. 전기차에 비유하면, 엔진이 아닌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차 개발이 1.0 버전이다. 이후 전기차 충전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산업이 성장하면서 자율주행까지 등장한다. 버전이 높아질수록 자율주행 프로그램은 고도화되고, 이때부터 소비자 편익과 기술가치가 반영된 가격 차별화가 가능하다. 디지털치료제도 마찬가지다. 디지털치료제 처방 후 환자 의료 데이터가 의사에게 공유되고 여기에 웨어러블 기기로 측정된 의료 정보들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환자 질병 단기 예측이 가능해진다. 아마도 5.0 버전까지 가면 '당신의 상태를 모니터링한 결과 한 시간 뒤 심근경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서비스 제공도 가능할 것 같다.


"분산형(DCT) 임상, 개발 비용 및 시간 획기적 절감"

"디지털치료제, 환자 중심 의료 패러다임 견인"

"건강보험 급여 적용 외 디지털 헬스 혁신 바우처 등 재정 지원 필요"

"가격 경쟁력 등 기반 미국 같은 큰 해외시장 진출 적극 모색" 


Q. 의료 패러다임이 바뀌는게 아닌가

그렇다. 디지털치료제는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 구현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용자가 무엇을 구매할지 예측해 미리 제품을 준비해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배달하는 쿠팡의 로켓배송 서비스가 의료 분야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디지털치료제도 의료정보 플랫폼으로 환자와 의사를, 병원과 지역사회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같은 환자 맞춤형 의료서비스 제공으로 질병 예측도를 높이고 치료 만족도를 향상시켜 환자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Q. 심평원과 수가 협상은

정부와 큰 문제 없이 급여 적용 논의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의료체계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했을 때 비용 절감 효과 및 자원 효율화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원만한 협상을 진행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Q. 신약 개발 제약사들은 심평원 '약가 책정'에 불만이 많다.

어쩔 수 없다. 100원짜리 불면증 치료제 약가를 기준으로 약가를 10원 책정한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단, 한국에서 10만명에게 팔 걸 미국서 1000만명에게 팔면 된다. 여기서 수가를 2배 더 받을려고 애 쓰기보다는 더 큰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할 경우 기존 기업들이 당황할 수 있다. 레미케이드가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한 국산 바이오시밀러에 타격을 입은 것처럼 말이다.


Q. 국내 디지털치료제 산업 성장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

산업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과감한 재정 지원이 시급하다. 규제혁신은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여전히 혁신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한 재정 투입이 요원한 상태다. 과거 전기차 산업 육성을 위해 보조금을 투입했듯이, 디지털치료제 산업 성장을 이끄는 마중물이 될 재정적 지원이 절실하다. 의사, 환자 모두 처음 경험하는 신기술인 만큼 널리 사용될 수 있게 디지털 헬스케어 혁신 바우처를 지원했으면 한다. 혁신이 동력을 잃지 않도록 독일과 미국처럼 정부가 직접 투자해야 한다.


Q.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다

영광이었다. 방미를 통해 식약처와 WELT-I의 비대면 임상 허가 사례를 미국 정부, 대학 등에 소개하는 기회를 가졌다. 디지털치료제는 규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분야인 만큼 국내 규제수출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미국 진출을 위해 숙제를 안고 있는데 이번 방미 경제사절단에 참여해 다양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Q. 상장 계획은

상장이 우선되는 상장은 건강한 기업 성장 방식이 아닌 것 같다. 아직은 상장 추진 계획이 없다. 


Q. 마지막으로 창업을 꿈꾸는 의사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서 "웬만하면 의사하세요"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창업이 개원과 다르기 때문이다. 개원은 혼자 병원을 열어 사업을 하면 되지만, 창업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흐름을 타야 하는 일이다. 개인의 역량 외에도 다양한 변수와 환경적 영향을 받는 일이다. 물론 "웬만하지 않은 의사"라면 창업을 하는 것도 괜찮다. 게다가 객관적으로 창업하기 좋은 시점이다. 주식이 산업의 지표라고 볼 때 계속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많이 내려가 있으니 지금 시작한다면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흐름을 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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