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국내 소화기내시경 분야 의료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대부분의 내시경 장비 공급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에 의학계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지난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가 주관하고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주최한 '의료기기 국산화 개발 활성화-소화기내시경을 중점으로'를 주제로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주제발표를 맡은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조주영 이사장[사진 左]은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만 하더라도 창립 초기 회원이 50여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평생회원이 약 8000명으로 120배 성장했다. 국제 표준 교과서를 제작하고 해외 의료진에게 내시경 술기 교육을 제공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내시경 분야 국제학술지 발표실적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해 5위 이내의 상위권을 기록했다. 조주영 이사장 본인 또한 의료진들에게 내시경 수술법을 교육하는 비디오 제작에 참여했다. 이처럼 내시경 분야에서 한국 의사들의 활약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내시경 장비 대부분은 일본 제품이다. 이미 전세계 시장 점유율의 90%를 올림푸스를 비롯한 일본 기업이 차지하고 있을 뿐더러 국내 제조 기업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반면 내시경 장비 수요는 계속 많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위나 대장내시경뿐만 아니라 각종 시술과 수술에도 내시경 장비가 활용되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일본에서 수입하는 의료기기 품목 가운데 7.5%가 내시경 기기에 해당한다.
조주영 이사장은 “내시경 장비는 시스템 당 연간 600만원에서 최대 3000만원까지 수리비가 소요된다. 전체 의료기관에서 많게는 500억에 달하는 비용을 해마다 지출하고 있는 것”이라며 “건강검진에 내시경이 많이 활용되는 만큼 장비 국산화를 통해 예산 절감도 도모할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이어 “국민보건 수호와 더 나은 미래가치 창출을 위해서라도 내시경 장비 국산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수요 많아진 내시경, 국산화 갈 길 멀다"
"국산 의료기기 제품 수준보다는 병원과 의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인식 개선 시급"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고대구로병원 소화기내과 이범재 교수는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기업 R&D에 투자하고 있지만 몇 년 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현실”이라며 “시장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은데다 이미 소수의 기업이 독점하고 있고, 병원에서 사주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범재 교수는 “솔직히 말하면 국산 의료기기라 하더라도 새로운 제품이 등장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두려움이 의사들에게 있다. 익숙한 장비만 사용하게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같은 장기를 관찰하더라도 제품별로 카메라가 비춰주는 모양이 조금씩 달라 의사 입장에서는 눈에 익고 편한 장비를 찾아야 안심이 된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텐데 시장 장벽마저 높으니 국산화가 어려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이 같은 지적에 공감대를 나타냈다.
권덕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저력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시기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기술 부족의 문제라기보다 병원에서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 국내에서 제조되는 의료기기 어려움”이라고 밝혔다.
이어 “진흥원에서도 현재 기업의 R&D 애로사항을 조사하고 범부처 의료기기 지원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의료기관에 개방형 실험실을 운영해 국내 의료장비 사용을 격려하고 보완점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