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히는 간납사(간접납품회사) 갑질 행태에 제동을 건다.
의료기기업계 병폐로 자리잡은 '간납사 갑질 횡포'를 근절하는 실질적인 장치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의료기기 유통과 공급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연구 목적은 의료기기 유통 시장에 대한 실태 조사와 불공정 이슈 파악이다.
의료기기 유통산업 시장 규모와 주요 참여자, 단계별 거래구조 등을 파악하고 과도한 수수료를 수취하거나 불리한 결제조건을 요구하는 등 불공정 행위 실태를 분석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병원과 특수관계 간납사 급증…'불공정거래' 피해도 증가
공정위가 이 같은 연구용역을 발주한 이유는 일부 간납업체가 벌이는 불공정 행위에서 비롯됐다.
간납사는 병원과 의료기기 업체 중간에서 병원 구매업무를 대행하는 회사를 말한다. 별다른 역할 없이 소위 '통행세' 성격의 이용료를 징수하며 병원에 납품되는 의료기기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간납사 중에는 병원장 가족이나 친척, 지인 등 특수관계자 등이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2022년 8월 발표한 '의료기기 유통질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44개 의료기기 간납사 중 16곳(36%) 지분구조가 특수관계에 해당했다.
이 가운데 2촌 이내 친족이 운영하거나 의료기관이 지분을 소유한 간납업체가 각각 7곳을 차지했다. 이렇다 보니 간납사가 사실상 병원 '리베이트 창구'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올해 초 의정 갈등으로 촉발된 의료 대란이 지속되면서 업체들의 고충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간납사가 병원들의 재정난을 이유로 업체에게 의료기기 대금결제 기한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간납사들의 일방적인 통보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지만 병원과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수긍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실태 조사에서 단가 후려치기나 불리한 결제조건 요구, 물류비용 전가 등 일반적인 유통시장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 여부도 실태조사를 통해 파악할 계획이다.
또 외국 경쟁 당국의 제도, 거래 실태도 분석해 향후 제도 개선 및 불공정 행위 조사에 참고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의료기기 공급 회사와 간접납품회사 간 불공정 거래행위에 따른 비용 증가는 최종적으로 국민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개선방안 등 경쟁 당국의 역할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묘해지는 수법으로 업계 고충 가중…"실효성 있는 장치 필요" 호소
다만 의료기기업계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위가 간납사 불공정 거래 해결을 위해 나선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2021년 간납업체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장치로 '의료기기 대리점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표준계약서는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거래지위상 우위를 이용한 불공정한 약관 등에 대한 피해를 막고자 거래 당사자 간 기준을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
공저우이는 표준계약서로 업체들의 고충이 해소되길 기대했으나 도입 4년이 지나도 현장 반응은 미지근하다. 표준계약서 작성에 대한 법적 강제력이 없다 보니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은 적다는 이유에서다.
A의료기기 기업 관계자는 "계약서 작성을 요구했다가 밉보이기라도 하면 거래가 끊기는 경우도 많아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국정감사 등에서 지적이 나오면서 잠시 이슈가 될 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잠잠해진다. 실효성이 없는 정책으로 오히려 간납사들의 갑질이 교묘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 의료기기산업협회도 오래 전부터 유통구조개선TF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며 불공정 거래 폐해를 주장했으나 제도 개선을 위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의료기기산업협회는 이번 공정위 실태 조사가 충실이 이행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정부에서 실태 조사를 나선다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용역 업체가 선정되면 협회도 직간접적으로 협조해 조사가 충실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