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원그룹이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깃발 꽂기에 바쁜 가을 시즌을 보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가는 요충지에 중소형 병·의원 개소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해외서는 외국인 환자를 연계할 시스템 구축에 종횡무진이다.
베트남 병원 체인 케어플러스는 지난 9월 21일 차병원그룹과 진료협력센터(Patient Referral and Care Center) 구축과 의료진 교육에 대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이달 5일 밝혔다.
진료협력센터는 1, 2차 병·의원과 3차 병원이 협력해 진료의뢰, 회송, 전원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의료협력 네트워크 관리 센터다.
케어플러스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연간 20만명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1차 의료기관으로, 진료협력센터를 통해 베트남 내 3차 병원뿐 아니라 차병원과의 연계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차병원그룹 역시 일산차병원과 회원제로 운영되는 차움에 국제진료센터를 두고 외국인 환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영탁 차국제병원장 겸 분당차여성병원장은 베트남 호치민에서 열린 협약식에 참석해 “차병원을 직접 방문하거나 베트남에서 의료상담을 받고 싶은 환자에게 진료 및 건강진단 서비스 제공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병원그룹의 동남아 진출은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됐다. 차병원그룹은 지난 2017년 싱가포르 메디컬 그룹(SMG) 지분을 일부 매입한 데 이어 2019년에 추가 지분을 확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SMG는 싱가포르,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약 40개 전문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업무협약을 맺은 케어플러스도 SMG 제휴사다.
차병원그룹은 이미 미국과 호주 등에서 병원과 난임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동남아 진출을 통해 환태평양 의료 네트워크를 확장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송도 중소형 난임전문병원·잠실 의원급 난임센터 추진
이에 맞춰 국내에서는 외국인 환자를 위한 병·의원 개소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지난 9월 12일 차병원그룹의 성광의료재단과 글로벌 특화 병원 유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인천경제청은 글로벌 특화 병원에 대해 “송도국제병원 부지에 글로벌 세포치료·안티 에이징·난임 치료 메카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차병원이 난임전문병원, 임상시험센터, 줄기세포치료센터, 바이오-셀 은행 등의 의료시설과 의대 일부 학과와 학생들이 이전하는 차의과학대 송도캠퍼스, 차바이오그룹이 운영하는 연구시설, 시약 생산시설 등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송도국제병원 부지는 인천국제공항에 근접해 외국인 환자의 접근성이 높다. 여기에 부지 면적이 총 8만719㎡인데 이는 800병상 규모로 건설 중인 송도세브란스병원 부지보다 넓다.
하지만 인천경제청은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향후 고부가가치 창출 잠재력이 있는 특화된 진료과목 중심의 중소형 종합병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인천경제청은 “해당 부지는 중앙부처가 승인한 종합병원 부지로, 병원을 제외한 용도 변경이 어렵다. 또 IFEZ(인천경제자유구역)에 송도세브란스병원과 청라아산병원 등 각각 800병상 규모의 대형 종합병원이 유치돼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중소형 종합병원은 보통 300병상 미만 규모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오는 2024년부터 제재하겠다고 밝힌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기준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차병원그룹은 이에 더해 서울 잠실역 인근 롯데캐슬골드에 국내 미혼 여성과 외국인 환자를 위한 난임센터 개소를 준비 중이다.
차병원 측은 잠실 난임센터에 대해 “의료관광으로 강남 지역에 유입되는 해외 거주 교포나 외국인이 많다”며 “이들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병원 틈바구니에 또 병원 개소, 난립 지적도
이 같은 차병원그룹의 확장세에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우선 인천지역에는 청라의료복합타운에 800병상 서울아산병원청라, 그리고 송도에도 800병상 규모 송도세브란스병원이 건립 중이다. 특히 송도세브란스병원은 송도국제병원 부지와 직선거리로 불과 4km 떨어져 있다.
보건의료노조 인천부천본부와 인천공공의료포럼은 인천경제청 발표 직후인 지난 9월 13일 성명을 내고 “인천경제청과 성광의료재단이 체결한 송도 글로벌 특화병원 추진 양해각서는 필수의료 확대 등 시민들의 건강권 보장이 아닌 개발 논리에 맞춰져 있다”며 “필수의료 부문 의료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시민 생명 및 안전과는 무관한 비필수의료 분야에 초점을 맞춘 병원을 송도에 건립하겠다는 것은 정부의 필수의료 강화 방향에 찬물을 끼얹고 인천 의료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인천경제청과 차병원그룹이 추진하는 특화 병원 서비스는 ‘줄기세포치료, 안티 에이징(항노화)’ 등으로 이는 통상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며 “이번 양해각서에는 ‘글로벌 특화병원 운영을 위한 제도개선을 중앙정부에 건의하는 등 협력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데 ‘제도 개선’과 ‘규제 완화’를 통해 우회적인 방식과 편법으로 극단적 영리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인천경제청은 “난임 분야는 인구절벽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되고 소아과·산부인과와 관련이 있는 필수의료”라면서 “이번 본 사업은 최근 한 언론에서 제기한 영리병원과는 관련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잠실 난임센터 역시 주변 산부인과 병·의원의 반발이 심하다. 잠실을 포함한 서울 송파구 내 난임센터만 4곳이 있기 때문이다.
송파구 A산부인과원장은 “이 지역 난임센터 여력은 충분한 상태”라고 밝혔으며, 또 다른 산부인과 개원의는 “대학병원에서 의원급 난임센터를 짓는다면 일차의료 시스템을 위협하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차병원 측은 “미혼 여성들을 위한 난자은행에 초점을 맞춰 기존 난임센터와 차별화할 계획”이라며 “최대한 지역 산부인과 병·의원들과 상생(相生)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