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한해진 기자] 국내 의료산업은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유독 ‘국산화’에 이르러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아직도 대부분의 치료재료 영역이 글로벌 의료기기회사가 생산하는 제품군에 의존하고 있다. 환자를 위한 안전성과 유효성 입증이 필수적인 의료기기는 장기간에 걸친 투자와 끈기 있는 개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결실을 맺은 분야가 있다. 10년간의 노력 끝에 국내서 처음으로 폐동맥 인공심장판막 개발에 성공한 태웅메디칼의 이야기다.
본래 태웅메디칼의 주력 제품은 소화기 스텐트였다. 폐동맥 인공심장판막 개발에 뛰어든 계기는 당시 인공장기개발 정부과제를 맡았던 서울대병원 연구팀(김기범, 김용진, 임홍국)과의 협업이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김기범 교수는 “처음에는 10년에서 15년 주기로 교체를 해야 하는 인공판막의 사용 기간을 늘리는 방법을 연구했다”며 “판막에 사용되는 프레임을 만드는 기술이 필요한데 태웅메디칼이 보유한 프레임의 성능이 좋았기 때문에 2009년부터 협약을 맺고 공동 개발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인공심장판막은 크게 대동맥과 폐동맥 제품으로 나뉜다. 연구팀이 택한 것은 폐동맥 제품이었다. 태웅메디칼 측은 “소아 심장병 환자들의 삶에 있어 필수적인 제품의 국산화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고 밝혔다.
태웅메디칼 측은 “소화기 스텐트를 개발하게 된 계기도 우리나라 환자들이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을 바꿔보고자 한 것”이라며 “서울대병원 연구팀과의 미팅을 통해 인공판막이 환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알게 됐고 그럼에도 수입산에만 의존해야 하는 환자들의 선택권을 넓혀 주고자 개발에 뛰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제품 자체가 많지 않아 거의 백지 상태에서 출발해야 했다. 늦더라도 확실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팀과 수없이 많은 논의를 거쳤다.
“의료기기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안전을 위해 품질관리 및 생산 전 과정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하나의 케이스만 잘못돼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한다는 각오를 갖고 단계적으로 나아갔다.”
임상에서만 3~4년이 소요됐다. 기나긴 개발 기간 동안의 투자비용 또한 중소기업으로서는 부담이었다. ‘내 가족에게 쓸 수 있는 의료기기’를 만들겠다는 회사의 원칙이 이를 버텨내는 원동력이 됐다.
태웅메디칼 측은 “안전성 검증을 위해 어느 정도의 물리적 시간이 요구되는데 외부 상황 변화 등으로 인한 궤도 수정, 장기간에 걸친 투자비용 등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 “매년 치료재료 평가에 따라 보험가가 낮아지는 데 대한 후발주자로서의 부담도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 가족에게 사용하는 의료기기,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 줄 수 있는 뜻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개발에 매진했다”고 덧붙였다.
“환자에 맞춤형 시술 가능 등 국내 산업환경에서 고무적인 제품”
해당 제품은 인체 심장판막과 동일한 3가닥 판막 조직으로 제작됐으며 면역거부반응이 제로에 가깝다. 직경 또한 다양한 크기로 제조가 가능해 환자별 맞춤형 시술을 할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수술로 삽입됐던 기존 인공판막과는 달리 시술을 통한 삽입 및 교체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의 두려움 중 하나인 재수술에 따른 리스크가 줄게 된다.
대한소아심장학회 김영휘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은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은 어렸을 때 작은 판막을 삽입하고 성장에 따라 동맥 크기에 맞는 판막으로 교체 수술을 해야 한다. 가슴을 여는 수술은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며 “시술을 통해 판막을 교체할 수 있다면 환자들의 두려움도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한 번 재수술을 받을 때마다 환자의 생존율은 대략 2%씩 감소한다. 시술을 통한 인공판막 교체는 이런 부담을 줄여준다.
태웅메디칼의 폐동맥 인공심장판막이 출시되기 전에는 미국에서 나온 풍선확장형 제품이 북미 및 유럽 지역에서 주로 쓰였다.
김 이사장은 “풍선확장형은 직경이 한정돼 있어 다양한 환자들에게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며 “최근 중국에서 개발된 자가확장형 판막 제품은 풍선확장형이 아닌 대신 판막을 심장까지 전달하는 장치(딜리버리 시스템)가 너무 굵고 정제돼 있지 않아 환자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태웅메디칼의 제품은 딜리버리 시스템이 가늘고 판막이 잘못된 위치로 이동하지 않게끔 안전장치가 돼 있다”며 “추가 시술이 필요할 경우 기존 판막 안에 삽입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밝혔다.
현재 많은 선천성 심장병 환자들이 판막 삽입 대신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약물 치료가 인공판막이 가져오는 효과를 전적으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수술을 결정한다 해도, 인공판막 제품군은 3000~5000만원 상당으로 워낙 고가에다 크기도 제한돼 있으며 재수술 및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시술을 통해 환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 국내 업체와 대학병원의 협업으로 개발됐다는 데 의료 현장에서도 큰 의의를 두고 있다.
김 이사장은 “중국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통해 인공판막을 개발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의료산업의 척박한 환경을 고려할 때 이런 제품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며 “합병증 관리가 이슈인 심장수술 영역에서 고무적인 결과”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