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메르스 여파 등으로 인해 의료기기 관련 법령 개정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심지어 2013년 12월 발표된 ‘신의료기술제도 개선 대책’의 경우 2년을 훌쩍 넘겼지만,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신의료기술제도는 국내 의료기기 업계가 꾸준히 지적해 온 대표적인 ‘악법’이다. 신제품의 조기 시장 출시를 막기 때문에 수출 경쟁력 제고에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인허가를 득하더라도 신의료기술로 지정되면 또 다시 관련 서류를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 제출하고, 평가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전형적인 이중 규제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정부 기관에 수차례 민원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 간 이기주의 등으로 인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에서는 신의료기술제도의 폐단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기요틴을 천명한 지난 2013년 12월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신의료기술 시장 출시 지원을 위한 대책이 발표됐다.
식약처가 국내외 임상시험자료를 확인해 품목허가를 한 제품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 이전에 조기 시장 진입을 허용하도록 법령 개정안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됐다. 올해 1월 1일자 시행이 목표였다.
그러나 법제처 심의과정에서 법령 개정안은 좌초됐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에 따르면 개정대상법령에 관한 위계 문제와 조문 편제에 관한 재검토 권고로 복지부가 지난 4월 법제처 송부안을 철회했다.
결국 2014년 11월 입법예고가 된 이후 6월 현재 법령개정안의 전면 재검토가 들어간 상황이다. 당초 시행 예정 목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협회 관계자는 “신제품의 조기 출시를 위해서는 의료법 하위법령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과 국민건강보험법 하위법령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에 관한 규칙’이 개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당초 입법예고한 개정안에도 문제점이 있다. 치료재료 전문평가위원회가 기술의 안전성·유효성 등에 대한 심층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평가할 경우 NECA에서 신의료기술로 평가하도록 회부 권한을 부여했다.
이렇게 될 경우 NECA 직권으로 신의료기술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종전보다 까다로운 제약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B사 관계자는 “기존 기술과의 비교임상 관련 사례가 없을 경우에는 아예 제품이 사장(死藏)될 수 있다”며 “특히 영세한 업체가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 산업 특성을 고려했을 때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복지부에서는 의료법 법령체계 중심으로 개정 내용을 보완한 뒤 관련 법령 개정을 재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관계자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발표된 것처럼 제품의 빠른 상용화를 위해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회원사의 현실적 애로사항 타개를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정부 측에 의견을 개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