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갑(정부·의사)과 을(제약·의료기기)
잘못된 영업방식 '리베이트 문화' 철퇴 가해지는 추세
2013.07.22 12:31 댓글쓰기

[기획 2]국내 의약 시장에서 사용자와 공급자 관계는 명확하다. 제약사가 의약품을 공급하면 의사는 처방을 내리기 때문에 여기서 형성되는 갑을관계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빗나간 영업방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최근 굵직한 리베이트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자사 의약품 처방을 위해 수십억원이 넘는 리베이트를 뿌린 업체들이 잇따라 적발된 것이다.


골프나 회식 접대는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았다. 한 의사가 수천만원 짜리 명품 시계를 받은 국내 모 대형제약사의 리베이트 사례는 의사와 제약사 간 갑을관계를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제약사, 의사 눈치에 정부 일괄 약가인하 조치 등 '속수무책'


작년부터 시행된 일괄 약가인하와 혁신형제약기업 인증을 통해 신약 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업계이지만 아직까진 제네릭 경쟁을 펼쳐야 하는 터라, 이 같은 영업방식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던 것이다.


국내 제약사 한 관계자는 “사실 누구보다 우리가 가장 꼼짝 못하는 곳이 의료계다. 말 한마디 하기가 무서운 관계다. 다만 사용자가 공급자보다 갑의 위치에 서있는 것은 어느 산업에서나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특별할 것은 없다. 문제는 지나친 경쟁 구도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리베이트는 정상적인 갑을관계에서 파생된 큰 부작용인 셈”이라고 전했다.


이에 더해 작년 초 국내 제약계 역사의 획을 그으며 시행된 ‘일괄 약가인하’는 정부의 파워게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 국내 제약사들이 서울 동대문구 장충체육관에 모여 유례없는 대규모 궐기대회를 여는 등 정부에 규탄의 목소리를 냈지만 정작 ‘약가인하 취소 소송’으로까지 그 기세를 이어가진 못했다.


누가 먼저 골리앗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할 것인지에 대해 등 떠밀기식 목소리만 있었을 뿐 실제 소장을 제출하며 총대를 멘 곳은 KMS제약, 에리슨제약, 다림바이오텍 등 극소수의 소규모 영세기업들 뿐이었다. 이들의 행보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도 같았다.


당시 국내 굴지의 제약사들도 동시에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약가인하를 시행한 보건복지부 대항마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53.55% 약가인하에 따른 매출 급감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갑을관계 형상은 깨지지 못했다.


리베이트 쌍벌제 등 제약업계 옥죄기 정책 속에서 국내 업계에는 새로운 영업방식이 각광을 받게 됐다. 바로 다국적제약사들의 ‘오리지널’ 제품 들여오기다.


정부의 수위 높은 리베이트 감시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로서는 제네릭으로 더 이상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너도 나도 오리지널 품목 들여오기 전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국적사 ‘갑’, 국내사 ‘을’의 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외자기업 입장에서도 국내 영업력을 보완하고자 국내 제약사의 손을 빌리는 게 좋지만, 소수의 오리지널 대비 다수의 국내사가 존재하다 보니 애가 타는 것은 국내사 몫이 될 수 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코마케팅 계약 성사를 위해 국내사가 다국적사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타사보다 적게 책정하는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A제약사 관계자는 “외자사 오리지널 품목을 도입하기 위해 국내사들은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등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 어느 회사가 코마케팅을 통해 추가 성장 매출액 대비 20%의 수수료를 받겠다고 제안하면, 다른 기업은 18%로 더 낮게 책정하는 등 외자사 입맛에 맞도록 경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갑의 위치에 있는 외자기업은 계약을 성사시킨 이후에도 그 영향력이 유지된다.


실제 모 제품의 경우 추가 매출 성장 대비 30% 수수료 계약을 통해 그 금액을 정기적으로 코마케팅 국내사가 받아왔지만 일정 시간이 흐른 뒤 해당 외자사 요구에 따라 28%로 낮아진 것이 업계에 회자됐다.


이 관계자는 “외자사 입장에선 코마케팅 계약 기간 종료 시, 그 제품을 다시 가져가면 그만이다. 때문에 국내사로서는 수수료가 낮아지더라도 힘을 쓸 수 없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이어 “어떤 다국적사는 시장에서 잘 안 나가는 약을 국내사를 통해 팔게 하고 어느 정도 매출을 키우면 신약을 코마케팅 하겠다는 전제 조건을 걸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약가인하를 했고, 국내사는 이익이 없기 때문에 점점 외자 품목 도입에 힘을 써야 한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글로벌 의료기기업체 '슈퍼 갑'…수입사·대리점주 '울며 겨자 먹기'


 

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막강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세를 과시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대다수 제품군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제외하면 국내 의료기기 시장 현황을 아예 논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의료기기 업계에서 글로벌 기업은 소위 ‘슈퍼 갑(甲)’으로 통칭된다. 수입업자와 대리점 모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글로벌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계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다.


국내 A사 관계자는 “엄연히 계약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의 담당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적용해도 항의조차 할 수 없다”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업체와 계약하겠다는 식으로 암묵적인 협박을 하기 때문에 견딜 재간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글로벌 기업 J사 관계자는 “서류 조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경우에만 새로운 업체를 선정한다”며 “엄연히 계약조건 법규가 있는데 이를 무시할 업체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심지어 글로벌 기업이 인사발령을 통해 어떤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가에 따라서도 국내 수입업체와 대리점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B사 관계자는 “예전에 계약을 맺고 있는 글로벌 기업에 담당자가 새롭게 부임한 적이 있다”며 “담당자가 바뀌자마자 그 사람과 유대관계가 높은 업체를 재선정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높은 영업이익률 유지위해 교묘한 쥐어짜기 방식 적용”


우리나라 사회 특성상 ‘정(情)’이라는 것 때문에 기껏 맺어왔던 계약 관계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기 직전까지 갔다는 전언이다. 다행히 B업체는 글로벌 기업 담당자를 설득해 서류 상 나온 시기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글로벌 의료기기 10대 기업의 2011년 총매출액은 1341.2억달러로 2009년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름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권 공략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이들 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국내 업체보다 7.5% 높았으며, 연구개발비 규모는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 10대 기업의 연구개발비를 모두 합쳐도 한 글로벌 기업의 27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이 신흥국에서 영업이익률을 높게 얻을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대리점 마진을 줄이는 방식이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높은 영업이익률로 얻은 수익을 그대로 연구개발비에 재투자하기 때문에 좀처럼 격차가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C사 관계자는 “30% 정도 수준이었던 마진이 글로벌 기업의 일방적인 통보로 7%까지 줄어든 경우가 있었다”며 “결국 글로벌 기업 본사만 배불리는 행위에 울화통이 터졌지만, 그마져도 끊길까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글로벌 기업 본사와 국내 대리점 간 상생은 꿈도 꾸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의료기기 대리점 관계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극단적 상황 직면해도 소송전 가면 국내 수입업자 등 대부분 포기


일부 글로벌 기업 중에는 대리점이 납품 단가를 낮추면 아예 공급을 중단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법적 소송에서 승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D사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은 소송 비용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후 시간을 끌어 국내 수입업자 및 대리점주가 포기하게 만든다”며 “지금까지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가장 큰 문제는 글로벌 기업이 국내 수입업체와 대리점과 상생을 추구하지 않을 경우 반사이익은 고스란히 국부 유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국내 의료기기 업계가 발전시켜 온 제품군 시장을 후발 글로벌 기업이 점령한 사례도 있다.


E사 관계자는 “중소기업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기관이 영세한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라며 “부당한 계약 조건을 힘없이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업계의 현실을 잘 이해해주길 당부 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구매대행업체(간납업체)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왔으나, 원공급자와 대리점의 유통체계에 대한 공론의 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글로벌 기업에게만 적용되는 규제를 마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올바른 유통 구조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맞다”며 “앞으로 소상공인들에게 정보와 자료를 수집해 유통 시스템 개선에 정책적인 연구를 실시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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