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근본 치료제가 없었던 치매 질환 분야에서 2년 만에 신약이 또 승인되면서 국내 치매학계와 제약바이오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바이오젠과 에자이 ‘아두카누맙(상품명 애듀헬름)’이 지난 2021년 승인된 데 이어 ‘레카네맙(상품명 레켐비)’도 신년 1월 6일(미국시간)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가속승인을 받았다.
아두카누맙이 조건부 승인 과정 투명성 및 효과·부작용·가격 등의 숱한 논란을 떨쳐내지 못하면서 사실상 미국 시장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이번 레카네맙이 임상 현장에서 활발히 쓰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레카네맙은 치매 초기 단계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3상 시험에서 투약 18개월 시점에서 위약군 대비 인지 및 기능 저하를 27% 지연시킨 것으로 나타나며 유효성을 입증했다.
다만 임상 과정에서 항응고제 복용 등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와 관련, FDA는 “혈액 응고 방제제를 복용하는 환자에게 처방할 때는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그동안 아두카누맙 조건부 승인 단계부터 임상 4상 중단 등 일련의 과정을 지켜봐온 국내 치매학계가 이번 레카네맙에 거는 기대는 컸다.
일라이 릴리 ‘도나네맙’ 등 글로벌 픽파마의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표적 치료제가 개발 중인 상황에서 이뤄진 이번 레카네맙 승인은 치매 극복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 청신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양동원 이사장 “국내 승인 전(前) PET 검사 급여화 등 환경 조성 고민”
대한치매학회 양동원 이사장(서울성모병원 신경과 교수)[사진]은 데일리메디와의 통화에서 “일부 고용량군 및 일부 임상에서만 효과를 보였던 아두카누맙과 달리 레카네맙은 연구가 끝났고 효과도 입증됐기 때문에 상반기 내 정식 승인이 유력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어 “타 치료제들은 아직 3상 시험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러한 추세라면 지난해 임상에 실패했다고 밝힌 ‘간테레누맙’도 새 방법으로 재시도될 가능성이 있다”며 “워낙 큰 시장이기 때문에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술대회 등에서 아두카누맙 사용 여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국내 치매학계의 쟁점은 앞으로 레카네맙 등 새 치료제를 ‘처방 또는 비처방’에서 ‘어떻게 하면 바르게 쓸 것이냐’로 옮겨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약제 보험 뿐 아니라 대상자 선별을 위한 PET 검사 보험 적용도 국내 치매 환자들의 초기 치료 환경 조성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는 게 양 이사장 시각이다.
실제 레카네맙의 연간 투약비용은 약 2만7000불(한화 약 3400만원)으로 아두카누맙 초기 비용이었던 약 5만6000불보다는 절반 넘게 낮아졌지만 여전히 비싸다.
양 이사장은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까지는 약 2년 이상 걸릴 것 같은데, 환자 수를 고려하면 약가 인하 조치가 쉽지는 않다. PET 검사 등의 보험화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진단 시 1번, 투여 후 추적 시 1번 등의 보험 적용 방식이 가능해 보인다”고 소개했다.
부작용 우려와 관련해서 그는 “뇌 내 아밀로이드 제거 과정에서 혈관 내 아밀로이드도 함께 제거돼 일시적으로 혈관이 약해지기 때문에 뇌부종·뇌출혈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조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투여하지 않거나 모니터링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 조기 진단 수요 증가 예측되면서 제약바이오업계 ‘기대감’
치매 예방 및 조기 진단을 주력으로 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역시 아두카누맙에 이은 레카네맙의 승인과 뒤따라올 분위기로 향후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번 레카네맙 승인으로 아밀로이드 베타 물질이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유발한다는 가설이 더욱 힘을 얻은 게 사실”이라며 “이에 조기 치료 및 예방 목적의 ‘진단’ 수요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서 치매 진단에 필요한 방사성의약품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듀켐바이오 측도 이번 레카네맙 승인을 청신호로 봤다. 실제 듀켐바이오는 레카네맙의 한국 임상시험에서 약 200명의 방사성의약품을 공급하기도 했다.
듀켐바이오 관계자는 “치매 치료제를 환자에게 투약하기 위해서는 아밀로이드 베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며 “앞으로 치매환자를 대상으로 조기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도록 글로벌 제약사들과 마케팅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플바이오는 알츠하이머 혈액진단 상용화에 성공한 최초 기업으로, 레카네맙 승인 소식 전후로 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회사는 지난 2018년 알츠하이머 혈액검사키트에 대한 의료기기 품목허가를 받았다.
이밖에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한 기전에서 나아간 다중기전의 국산 치매 치료제 탄생도 임박해 기대감을 키운다. 치매 진행 억제 뿐 아니라 인지기능 개선을 목표로 한 임상 3상 단계에 다다랐다.
가장 속도가 빠른 곳은 아리바이오로 이 회사는 알츠하이머 진행 억제 등을 돕는 다중기전 경구 치료제 ‘AR1001’을 개발 중이다. 지난해 FDA 임상 3상에 착수하고 연말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잼백스앤카엘은 국산 21호 신약 ‘리아백스’를 약물 재창출 방식을 통해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개발 중이며, 현재 국내 임상 3상및 글로벌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