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요인에 번번히 발목을 잡히며 ‘구호’ 수준에 머물었던 의료전달체계에 획기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의미 있는 변화의 진원지는 국내 대표적인 공업도시 ‘울산광역시’이다. 특히 지역 의료기관들이 똘똘 뭉쳐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라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그 기저에는 지역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이자 권역책임의료기관인 울산대학교병원이 자리한다. 지방의료 위기론의 해법을 ‘상생(相生)’에서 찾으려는 병원의 시도가 결실로 이어졌다.
사실 울산대병원은 수 년 전부터 지역 의료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동반 성장을 기치로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를 모색해 왔다.
가장 먼저 의료전달체계 구심점인 상급종합병원, 즉 울산대병원 스스로 자격을 갖추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전담 부서를 꾸리고 진료협력센터를 대폭 강화했다.
‘경증환자는 병‧의원, 중증환자는 상급종병이 맡는다’는 지극히 간단한 명제를 실현하기 위해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전체 내원환자 중 중증환자 비율을 50% 이상 유지토록 하고, 2023년부터 매년 경증환자 비율을 15% 내외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의료 인프라 고도화를 위해 디지털병리시스템 구축과 MRI, 방사선암치료기 등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장비는 물론 전문 의료진을 대거 충원했다.
지역 의료기관들이 중증환자를 믿고 보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초진환자 심증진료와 다학제진료 등 환자 만족도 및 치료결과 향상을 위한 프로세스도 강화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울산대병원은 파트너인 지역 병의원 설득에 나섰다. 정융기 병원장을 비롯한 보직자들이 직접 지역을 순회하며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 필요성을 알렸다.
울산광역시도 지역의료를 살리려는 의미 있는 행보에 힘을 실었다. 시(市) 주도로 울산대병원 등 7개 병원이 울산지역 중증환자 진료 및 의료전달체계 고도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긴밀한 진료 협력을 통해 상호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적 기능과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지역환자 유출을 방지하고 병원경영에도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의료전달체계 구심점 기관으로서 역량 갖추고 역할 확대
지역의료 살리기 공감대 형성하면서 지역완결형 의료시스템 지향
더 편하고 더 효율적인 환자 의뢰‧회송 매진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의 백미(白眉)는 울산대병원이 직접 개발한 ‘회송 및 전원병원 관리 시스템’이다.
울산대병원은 지역 의료기관들과의 의뢰‧회송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1년 6개월에 걸쳐 자체 시스템을 개발했다.
물론 기존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제공하는 시스템이 있었지만 접근 단계가 복잡하고, 진료정보나 영상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의료기관들이 적잖은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다.
울산대병원은 이러한 의료기관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별도 시스템을 개발했다. 편의성을 제고하되 단편적 의뢰‧회송이 아닌 보다 실효성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뒀다.
이를 위해 1년 넘게 협력 의료기관 시설, 장비, 인력 상황을 모두 파악하는 노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환자 상황에 맞는 치료 가능 역량을 병원별로 정리, 의료진에게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협력병원이 의뢰한 환자의 경우 울산대병원 입원기간에 이뤄진 각종 검사 정보와 의무기록을 환자 동의 하에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가 회송 또는 전원 될 경우 사후관리에 필요한 환자 상태를 별도 메모해 추가로 전달하는 등 연계 시스템 효율화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상급종합병원 입장에서는 환자를 회송할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 확인이 가능해 환자 상태에 맞는 최적의 병원을 조언할 수 있다.
또한 병‧의원에서는 환자의 진료정보를 미리 파악해 회송 후 보다 세심한 회복기 치료가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의료전달체계인 셈이다.
여기에 환자 의뢰에 대한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과 연계시켜 보다 편리하게 별도의 수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협력 의료기관에 무상으로 제공되며, 활용법에 대한 자문과 컨설팅도 이뤄진다. 협력 의료기관들 입장에서는 환자 의뢰‧회송이 부가적인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구조다.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진두지휘한 울산대학교병원 신은아 행정본부장은 “위기 지방의료가 살아남고 발전하는 길은 분명 존재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협력은 누군가 먼저 시작하고 손을 내밀어야 가능하다”며 “울산대병원은 그 일을 시작했고, 작은 결실을 하나씩 맺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