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上] 근래 펜타닐, 옥시콘틴, 프로포폴, 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중독으로 최근 6년 간 21만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마약류 오남용이 청년층 사망 원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도 더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님을 선포하고 청소년층의 펜타닐 오남용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또 의사의 마약류 셀프처방 증가, 대학병원 간호사가 마약류를 빼돌려 상습 투약한 사건 등 의료인發 오남용 문제가 사회적 파장을 낳기도 했다. 이에 처방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의료기관이 마약류 오남용 단속의 주 타깃이 돼 가는 모습이다. 데일리메디가 우리나라 마약류 관리·단속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편집자주]①의료기관 마약류 단속 본격화···'의사 셀프처방' 타깃
②잊을 만하면 연구실 마약류 이슈···의료업자-학술연구자 차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국회가 계묘년 들어 의사와 의료기관 등을 대상으로 단속을 강화한다. 실질적인 처방이 이뤄지는 곳에서의 관리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다.
현재 국회에서는 의사가 스스로 마약류를 처방하는 소위 '셀프처방'을 금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연숙 의원(국민의힘)[사진]은 이달 1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마약류 취급 의료업자인 의사는 자신이나 가족에게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제공할 수 없다. 또 자신이나 가족에게 이들 의약품을 기재한 처방전도 발급하면 안 된다.
마약류 처방 후 보험 청구 과정도 까다로워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요양급여비용 심사자료를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과 연계한다는 복안이다.
이 같이 의사들의 처방권을 제한하는 조치는 의료인이 마약류를 처방하고 투약했던 사례가 상당했던 점이 단초가 됐다.
지난 2018년 12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스스로 마약류 500정을 처방해 투약까지 한 의사가 덜미를 잡혔고, 이처럼 셀프처방을 하는 의사들은 연간 7000~8000여명에 이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2021년에는 서울 소재 대학병원 간호사가 약 세 달 간 환자에게 처방된 마약성 진통제 페티딘을 정량보다 적게 투여하고, 나머지를 자신에게 투약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최연숙 의원은 지난해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의사들이 마약류 오남용으로 처벌받는 경일이 반복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당국의 모니터링이 소홀하다"고 일침했다.
이어 "해외에서 셀프처방을 금지시킨 사례도 있다"며 "의사들의 양심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마약류 처방 시 환자 투약이력 조회 의무화…펜타닐 등 우선 적용
비슷한 시기 식약처도 나섰다. 의사가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할 때 환자 투약 이력을 조회토록 한 것인데, 권고에서 의무로 그 단계를 높였다.
이달 10일 식약처는 "금년 업무계획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지난 2021년 초부터 이를 가능케 하는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 정보망'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사용이 의무가 아니었던 탓에 가입자는 8%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식약처는 단계적으로 투약이력 조회 의무화를 실현키로 했다. 의사가 환자의 마약류 과다 투약 여부를 점검할 수 있도록 처방통계 정보제공을 확대하고, 우선적으로 오남용 우려가 높은 펜타닐, 프로포폴 등부터 적용한다는 제안이다.
의료기관에 대한 불시 점검도 잦아질 전망이다. 5억5000만건에 달하는 의료용 마약 처방·투약 빅데이터를 토대로 불법 또는 오남용 의심사례가 포착되면 불시 점검한다. 위반사항 적발 시 행정처분도 강화된다.
대한신경과학회·통증학회 "일차적 마약성진통제 처방 자제"
앞서 마약성 진통제 등 의료용 마약류를 자주 처방하는 의사들도 비슷한 의지를 표명했다. 다만 의학계가 현장에서 불필요한 진료를 덜어내자는 자정 취지로 선언한 점이 다르다.
구랍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주최한 '현명한 선택 캠페인 심포지엄 2022'에서는 의료용 마약류가 일부 항경련제, 진통제 등과 함께 불필요한 치료 수단으로 지목됐다.
만성질환 치료 시 우선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면 부작용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의학계는 이 같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한신경과학회는 "편두통 환자에서 마약성, '바르비탈' 계열 약제를 가능한 사용하지 않는다"며 "이들 약제는 의존과 중독을 유발해 두통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면 부작용 위험이 커 가능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대한통증학회는 비암성의 급만성통증 환자들에게 일차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학회는 "환자에게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약물치료 전(前) 행동치료와 물리치료 등 비약물 요법을 포함한 다방면 치료를 고려하고, 반드시 비마약성 약물 치료를 먼저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