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쑥했다. 조금은 힘겨워 보이기도, 조금은 야위어 보이기도 했다. ‘국무위원’이란 자리의 책임감과 중압감 탓이었을까? 3개월 만에 다시 마주앉은 모습은 병원장 시절과 사뭇 달랐다. 특유의 온화한 인상은 그대로였으나 내공의 단단함은 결을 더했다.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각종 국회 일정 등 연속된 강행군에 몸은 고단했지만 국무위원으로의 정체성을 다져준 시간들이었다. 의료 전문가 출신으로 17년 만에 보건복지 정책 수장 자리에 오른 정진엽 제52대 복지부 장관. 그는 취임 100일에 즈음해 전문기자협의회와 간담회를 갖고 그동안의 소회와 향후 정책 추진 방향을 전했다.
-취임 100일을 앞두고 있다.
정말 정신없이 지냈다. 시간의 전광석화(電光石火)를 절감했다. 여름과 가을을 모르고 지나갔다. 하지만 역으로 아주 오랜시간이 흐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방대한 업무를 파악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건의료 분야는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복지 분야는 솔직히 힘들었다.
-복지부의 광범위한 업무 파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복지부 업무는 상대, 사회대, 법대 등 4~5개 학과 내용을 한꺼번에 섭렵해야 한다. 용어 자체도 낯설고, 내용은 더더욱 힘들었다. 의대 보다 더 치열하게 공부했다.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입에 붙지 않은 용어들도 상당 수다.
-현장방문 일정이 많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아직까지는 여유가 없었다. 최근 신체적 과부하가 생기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쉽지 않다. 운동은 못하지만 음식이라도 열심히 챙겨먹고 있다. 특히 아침은 꼭 먹으려 노력한다.
-장관 취임 후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병원장과 장관의 차이점을 묻는 분들이 많다. 대답을 하자면 “비교가 안된다”이다. 병원장은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면 되지만 장관은 여러 부처와 함께 일을 해야 하는 만큼 제약이 많다. 고민의 정도 역시 비교가 어렵다.
-감성행정, 잘 진행되고 있나
메르스로 인해 직원들이 많이 지쳐있다는 느낌이다. 직원들 사기를 올리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자주 대면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외부 일정 탓에 쉽지 않다.
-소통부재 해결을 위해 구상 중인 방안은
일단 화상회의 시설을 이용해 직원들과 자주 만나려고 한다. 서울 집무실에 화상회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그 것을 이용할 생각이다. 또 실국장 외에 과장이나 사무관이 직접 보고하는 기회를 늘릴 계획이다.
역시나 취임 초기인 만큼 눈코뜰새 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업무 파악부터 직원들과의 소통까지 지난 3개월에 이 모두를 하기는 사실 버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소신을 펼쳐볼 생각이다. 때로는 강력하게, 때로는 우아하게 정책을 추진하고 직원들과 호흡해 나가겠다는 의지다. 특히 보건복지 정책 수장으로서 현안과 실무에 보다 전문성을 발휘해 볼 생각이다.
-의료전달체계 개선 복안은 있나
워낙 복합적인 사안이다. 단편적, 지협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이 각각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그에 맞는 보상 시스템을 함께 마련해야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그 방법을 고민 중이다.
-간병문화 개선 권고안이 나왔다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다. 병원장 시절 일본의 한 병원에 지인을 만나기 위해 갔는데 사전 예약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국민 정서를 감안해 갑작스러운 변화나 강제화 보다는 점진적인 유도가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원격의료 빠뜨릴 수 없는 주제인데
원격의료는 공공의료의 완성이다. 도서벽지 오지에도 의사가 있으면 최상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이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원격의료다. 물론 법적으로 허용 대상이 제한돼 있는 만큼 의료계가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격의료에 대한 의료계 반발과 우려가 크다
대형병원으로의 쏠림현상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원격의료 1명에 소요되는 시간이면 일반환자 3명을 진료할 수 있다. 그렇다고 수가를 3배나 주는 것도 아니다. 수익적인 이득이 없는 만큼 일반 병의원에서 활성화 될 것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이 여전히 국회에 묶여 있다
의료계가 꼭 도와야 할 법이다. 이 법의 목적은 국익창출이지 의료영리화가 아니다. 과거에는 공대 출신들이 국가 경제를 부양했지만 이제는 의대 출신들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의료산업화과 의료영리화는 명확히 다른 개념이다.
-직역, 직능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해결 방안은
‘타협’이 필요한 문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금씩 양보하는 미덕이 수반돼야 한다. 각자 기득권 주장하면 협상은 불가하다. 기득권이 많은 사람은 양보하고 적은 사람도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근래 복지부에 외부인사 영입에 대한 우려가 높다
개인적으로 희망해서 이뤄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 상황에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외부인사라고 하더라도 복지부에 왔으면 같은 식구다. 호흡을 맞춰 당사자가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게 성숙한 조직이다.
-의료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결국 복지부와 의료계의 공통된 목표는 국민건강 증진이다. 이를 위해 협조해야 한다. 의료계가 필요한 부분은 기탄없이 얘기하고 복지부 역시 의료계 협조를 구할 일이 생기면 편하게 논의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