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진료 처방 가능' 판결후 합법·위법 갈림길
대법원, 파격적인 의료법 해석…의사들 향후 추이 촉각
2013.07.11 18:15 댓글쓰기

대법원 판결 하나가 의료계에 크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세칭 ‘전화진료’ 판결로 살빼는 약 처방을 대면진료 없이 내린 의사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직접 진찰’의 의미를 ‘대면 진료’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지난해 3월 결정과는 다른 판결이라는 점에서 판결 당시 파장을 예고했다. 그 가운데 이를 바라보는 의료계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진다.

 

대법원 “전화 진료 후 처방 위법 아니다” 헌법재판소와 또 대립


지난 4월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전화 통화로만 환자를 진료하고 약을 처방해 준 혐의로 기소된 의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서울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신모 원장은 지난 2006년 1월∼2007년 5월까지 총 672차례에 걸쳐 환자를 ‘직접(대면)’진찰하지 않고 살 빼는 약의 처방전을 내준 혐의로 기소됐다.


한 차례 이상 병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고 살 빼는 약을 처방받은 환자 중 내원이 어렵거나 추가 처방전을 의뢰한 사람들에게 전화 통화로만 진료하고 처방전을 써줬다는 게 공소 사실의 요지였다.


환자들은 병원 창구에서 직원으로부터 처방전만을 받아가거나 이전에 약을 조제 받은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내달라고 병원에 요청한 뒤 택배로 약을 전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처방전을 발급하는 경우에도 전화 통화를 한 경우, 전화 통화 없이 접수 창구에서 바로 처방전을 발급해 준 경우 등 다양했다.


기존 판례와 헌법재판소 결정은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직접 진찰한’이란 ‘대면하여 진료한’을 의미한다고 해석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의료법상 ‘직접 진찰한 의사’라는 조항은 스스로 진찰을 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일 뿐 대면 진찰이나 충분한 진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방전을 발급하는 행위 일반을 금지하는 게 아니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대법원은 “따라서 전화 진찰을 했다는 사정만으로 ‘직접 진찰’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전화 진찰은 직접 진찰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은 위법함이 있다”고 판결했다.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보건복지부 역시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확대 해석은 금물이며 혹여 전화로 진료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며 “전화 진료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라고 선을 그었다.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한 셈이다. 그러나 향후 유사한 판결이 내려졌을 경우에는 어떠한 법적 조치를 내릴 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화 통화 후 처방-직접 진찰 ‘엇갈린 판결’


현재 의료법 17조 1항에 따르면 ‘환자를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 및 검안서, 처방전을 작성해 교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7년 4월 개정 이전의 의료법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자신이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주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개정 의료법에서는 ‘자신이 진찰한 의사’ 문구가 ‘직접 진찰한 의사’로 수정됐다.


눈에 띄는 점은 법의 해석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직접 진찰에 전화 또는 이와 유사한 정도의 통신 매체에 의한 진찰은 포함될 수 없다고 봐야 한다”라며 신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2심은 200만원을 각각 선고한 바 있다.


1심, 2심 재판부는 “의사가 전화 통화로 진료를 하는 것은 환자가 치료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진료 의무가 소홀해질 수 있고 약물의 오남용 우려도 크다”는 논리를 펼쳤다.


헌법재판소 결정도 1심과 같았다. 신씨는 항소심 도중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당시 헌재는 신씨에게 적용된 의료법 규정을 재판관 4(합헌):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의료법상의 ‘직접 진찰한’은 ‘대면해 진료한’ 이외에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다”고 했다. 합헌을 선택한 이유다.


이와 관련, 대법원 관계자는 “헌재 결정은 해당 의료법의 헌법 위배 여부를 따져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고, 대법원은 합헌인 의료법 조항을 해석한 것”이라며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을 소지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 관계자는 “합헌 결정은 법원에 기속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금년 5월 초 또 해석을 달리한 판결이 나왔다. 지난 5월 1일, 의사가 전화로만 진료하고 내원 진료한 것처럼 속여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했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그것이다.


대법원 1부(양창수 대법관)는 환자를 전화로만 진료한 뒤 건강보험관리공단에 요양급여를 청구한 혐의(사기)로 기소된 의사 김씨(44)에게 벌금 1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전화 등을 이용한 진찰을 ‘직접 진찰’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구 ‘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과 복지부 장관 고시는 내원을 전제로 한 진찰만을 요양급여 대상으로 정했다”며 “전화 진찰을 내원 진찰인 것처럼 해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한 것은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전제했다. 
 
“의사 진료가 교과서 아닌 판례에 좌지우지”


문제는 일선 현장에서 진료의 기준점이 개별 판례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당장 환자 진료가 교과서가 아닌 판례에 의해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의사들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은 “대법원의 태도에 의하면 굳이 대면진료를 할 이유가 없게 된다.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대부분 감기와 같은 경증 질환,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자가 많다. 이 경우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로 진료를 한다거나 처방전만을 발급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의료기관을 방문할 환자 수가 급감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용선 회장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아마 초진 진찰료의 경우에도 대면진료와 비대면진료에 차등을 주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계에서 더 걱정되는 것은 처방전 리필제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일중 회장은 “전화진료조차 하지 않고 처방전만 받아간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굳이 의사의 진료가 필요하다고 할 이유가 없다. 만성질환자의 경우 그냥 이전 처방전을 재활용할 경우 의사 진찰료를 줄일 수 있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싫어할 이유가 없다. 과연 이것이 대법원이 바라는 바인가”라고 반문했다.


일명 ‘살빼는 약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해 대법원이 너무 간과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서울 강남구 소재 A내과 원장은 “대부분의 살빼는 약 복용자들의 1개월이 아닌 수 개월치의 처방을 원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주는 의료기관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속적 복용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복용자에 대한 주기적 점검이 필요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방점을 찍었다.


그 가운데 의료법 제17조 제1항을 개정하여 진단서·검안서·증명서에 대한 규정과 처방전에 대한 규정을 분리해 처방전에 대한 독자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윤용선 회장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는 직접 대면진찰하지 않은 환자에 대해 처방전을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하도록 한다. 다만, 질병의 특성, 또는 의료기관의 사정 등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에는 유선통화 또는 대리인과의 면담 등의 방법을 사용해 처방전을 작성하거나 교부할 수 있다로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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