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부터 장관까지’ 조문 줄이은 故 임세원교수 빈소
2일 오후 서울적십자병원 마련, 복지부 “조만간 예방책 마련”
2019.01.03 05:31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정승원 기자] 진료 중 피습을 당해 세상을 떠난 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가 마련되면서 각계의 조문이 줄을 이었다.


강북삼성병원은 2일 공지를 통해 故 임세원 교수의 장례일정을 알렸다. 빈소는 강북삼성병원 장례식장이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관계로 인근의 서울적십자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병원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오는 4일 오전 7시 30분이다.
 

부검을 마치고 시신이 안치된 2일 오후 2시부터는 조문이 시작됐다. 아직 진료가 진행 중이던 시간이었지만 고인의 동료 교수 및 직원들은 하나둘 빈소를 방문했다.

강북삼성병원 소속 교수와 직원들은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달고 있었다. 고인이 근무하던 정신건강의학과 로비에는 보안요원이 배치돼 환자 외에는 접근이 제한됐으며,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진료가 이어졌다.
 

이날 빈소에는 임 교수에게 진료를 받던 환자와 보호자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자신이 故 임세원 교수로부터 진료를 받던 환자의 보호자라고 밝힌 한 여성은 “뉴스를 보면서 그 선생님이 아니겠지 생각하다 맞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서 천안에서 달려왔다”며 “아들이 우울증을 10년 동안 앓다 목숨까지 끊으려 했는데 선생님을 만나고 난 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은인 같은 분인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고인과 절친한 사이였던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도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백 교수는 고인과 함께 한국형 자살예방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 개발에 참여했다.


백 교수는 “고인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환자에게 따뜻한 임상가였다. 동료간호사들의 안전을 걱정해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 측에 따르면, 고인은 피습을 당할 당시 대피할 수 있던 상황임에도 간호사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서둘러 도망치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협·학회 “우선 고인 애도 집중”


 

오후 6시경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빈소를 찾았다. 최 회장은 서울시의사회 박홍준 회장, 의협 정성균 총무이사 등과 조문했다.


의협은 우선적으로 애도에 집중하고 향후 대책 마련 방안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최대집 회장은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이번 일은 개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의료인 및 국민과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보호하는 문제와 관련 있다”며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 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들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최 회장은 “지금은 장례기간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방침”이라며 “의협 차원에서 장례식 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13만 의사들이 고인에 대해 어떻게 추모할지 법적·제도적 개선을 어떻게 이룰지 논의하고 있다. 정책적인 대안은 다음주에 제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학회 차원의 추모식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회는 오는 15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다음 주 중 별도의 추모식도 예정하고 있다.


빈소를 찾은 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이사장은 “병원장으로 장례를 지내지만 학회 차원에서 추모식을 다음 주 별도로 마련할 예정이다. 장소는 (고인의 모교인) 고대병원이 될 것 같다”며 “이번 한 번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고인을 기리고 추모하는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가족이 신경정신의학회를 통해 밝힌 뜻이기도 하다.


권 이사장은 “이번 사건으로 정신과 환자가 전체가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됐다. 정신과 환자 전체의 범죄나 사고비율은 일반인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떨어진다”며 “문제는 급성기 환자가 약을 먹지 않아 증상이 재발한 경우다. 이에 대해 어떻게 치료를 할지 논의해야지 정신과 환자가 위험하다는 편견을 갖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위험성 높은 환자가 외래에 왔을 때 재빨리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청원 경찰을 배치하거나 정신과 진료실에 출구와 통로를 확보해야 하는데 결국 비용과 관계된다”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박능후 장관 “예방에 초점 맞춘 방안 마련 모색”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도 오후 6시 30분경 고인을 조문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박 장관은 이기일 보건의료정책관을 비롯해 정윤순 보건의료정책과장, 홍정익 정신건강정책과장, 권준욱 건강정책국장 등과 함께 조문했다.


박 장관은 조문을 마치고 강북삼성병원 신호철 원장, 대한병원협회 임영진 회장, 의협 최대집 회장, 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이사장과 면담했다.


박 장관은 “사건 직후 보고를 받고 황망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생각이 들었다”며 “유가족과 현장 의료진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예방책 마련도 약속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사후 처벌에 대한 부분인데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예방책 마련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이번 일을 계기로 예방을 위해서는 어떤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연구해 이른 시일 내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처벌 강화는 국회에 맡기고 예방에 초점을 두고 미리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신호철 원장은 “병원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충격이 크다. 의료인들이 직종을 막론하고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사건은 도를 넘은 듯하다. 의료인이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제도적으로 만들어
줘야 한다”고 요청했다.


유가족 “모두가 낙인 없이 치료받는 환경 조성되길”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뒤 서울적십자병원 3층에 마련된 빈소에는 취재진이 가득했다.

이에 고인의 동생인 임세희 씨[사진]는 기자회견을 통해 유가족 심경을 전했다.


임 씨는 “모든 사람이 정신적인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인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임 씨는 “병원에서 확인해준 바에 따르면, 가해자가 위협했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으면 좋았을텐데 두 번이나 멈칫하며 도망치라 하고, 신고하라고 했다고 한다”며 “아마 그 영상을 평생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입장도 밝혔다.


임 씨는 “오빠가 책을 냈었는데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그 어떤 낙인도 없는 의사도 고통 받을 수 있는 사실을 알렸던 것으로 생각한다. 사랑했던 환자들을 위해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라며 “이 과정을 보면서 오빠가 얼마만큼이나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을 갖고 사람들이 낙인 없이 치료 받길 원했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 씨는 “오빠처럼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자신의 진료권 보장이나 안위도 걱정하지만 환자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질환을 빨리 극복하길 원한다고 확신한다”며 “고인이 평생 환자를 위해 살았던 것만 생각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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