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취소' 파문 후 첫 개강 서남의대
신입생·재학생, 학교 정상화 믿음↔사태 악화 불안감 교차
2013.03.05 01:45 댓글쓰기

[르포]여느 신입생과 다르지 않았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또래 친구들과 같이 서남의대 학생들 얼굴에서도 새로운 생활에 대한 설렘과 낯섦, 긴장과 흥분이 묻어났다. 서남의대를 바라보는 외부의 위태로운 시선이 무색 할 만큼 신입 의대생들의 첫날은 순조로웠다. 교수의 개인적 사정으로 마지막 수업이 결강되긴 했지만 나머지 수업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신입생 49명 모두가 아침 9시 첫 수업부터 마지막 수업까지 함께했다.

 

이들의 첫 출발을 지켜보니 신입생에게 만큼은 서남의대를 둘러싼 논란의 태풍이 비켜가는 듯 했다. 실제 몇몇 학생들은 ‘서남학원 폐교’가 작금의 부실교육 문제를 타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목소리를 냈다. 기존 재학·졸업생, 그리고 학교가 서남의대 정상화를 위해 교육과학기술부와의 첨예한 갈등을 감당하며 태풍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13학번 서남의대의 신입생이 의사로 가는 첫  발을 디딘 지난 4일 남원에 있는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찾았다.

 

 
▲서남대학교 의과대학 전경

 

사실, 새 학기 첫날을 평범하게 맞이하는 이들의 의연함(?)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들은 부속병원인 남광병원의 수련기관 취소 등 지속되는 부실교육과 사학비리 논란이 불거져 나왔던 지난 1월 서남의대에 진학원서를 냈다.

 

경쟁률도 높았다. 2011년도 입시에서 3.4대 1이던 서남의대 지원율은 2012년 4.9대 1로 크게 뛰었고, 2013년도 입시에서도 5.0대 1을 기록했다.

 

2월 말 다군 마지막 합격자를 발표까지 서남의대는 그야말로 격동기를 겪었다. 교과부가 서남대학교에 대한 특별감사를 벌인 결과를 공개했고, 이에 따라 재학·졸업생들의 학점 및 학위 취소 등을 명령했다.

 

김모 총장을 고등교육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기타 김 총장과 의학부장 직무대리 등 20명에 대해 해임 등 중징계할 것을 대학 측에 요구했다.

 

이어 교과부는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 ‘폐과·폐교’하겠다는 강수를 뒀다. 물론 전남예수병원이 서남의대와의 협약을 통해 임상실습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다행스러운 일도 있었다.

 

어쨌든, 이들은 이 모든 상황을 이미 알고 서남의대를 선택했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학의 공대를 버리고, 또 어떤 이는 한의학과 장학생 자리를 박차고 서남의대에 왔다.

 

그들은 왜 크게 요동치는 서남의대를 선택했을까, 불안하지는 않을까.

 

 
▲의과대학 1층에 세워진 신입생 환영 화환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선 후 가장 먼저 눈에 뛴 것은 신입생 입학을 축하하는 화환과 선서 내용이 새겨져 있는 히포크라테스 동상이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은 엄숙히 서약하노라”

그제야 논란의 진원지가 아닌 의료인을 길러내는 의대에 왔다는 걸 인식할 수 있었다.

 

 
▲105호 강의실에서 영문독해 강의를 듣고 있는 서남의대 신입생들

 

학교에 도착하니 수업이 한창이었다. 새 학기 첫 강의가 늘 그렇듯 쑥스러운 자기소개와 어색한 인사들이 오갔다.

 

신입생들끼리도 지난 27일 입학식 때와 1일 신입생 OT 때 본 것이 전부다. 이름, 나이 등 서로에 대해 알기에는 아직 이른 시기다.

 

시간이 흐르니 강의실에서 웃음소리와 박수가 흘러나왔다. 책상의 배열을 바꿔 조를 만들었고, 조원들끼리 즐겁게 토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전 수업을 마친 후 퇴실하는 학생들

 

오전 수업이 끝난 후에야 학생들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의 공통된 인식은 혹여 학과나 학교가 없어져도 의대생으로서 자신들의 학습권은 보장받는다는 믿음이었다.

 

의대생이 된 이상 서남의대에서든 다른 의대에서든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는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학생은 대한의사협회, 국회의원 등의 동향을 훑으며 "학습권 보장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면 서남의대에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어디서든 의사만 될 수 있다면 괜찮다는 말이다.

 

‘어디서’ 공부하든 상관없기 때문에 서남의대에서 청춘을 불태운 선배들만큼 학교 정상화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 학생은 “10년 간 계속된 부실 교육이 쉽게 바뀔 수 있겠냐”며 “선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역시 부실 교육으로 학점 취소 등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폐교가 낫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선배들이 설문조사를 통한 의견 수렴으로 ‘학교 정상화’에 무게를 뒀다는데, 사실 우리는 참여하지도 않았고 그 설문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는 학교 정상화를 위해 투자되는 시간 동안의 불안함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고백이자, 선배나 학교 측과는 다른 배를 탈 수 있다는 의미인 셈이다.

 

실제 2013 신입생 학부모를 중심으로 구성된 ‘서남의대 학부모 비상대책회’는 학교 폐쇄를 강력 주장하고 있어 학생 내부의 갈등도 곧 가시화 될 전망이다.

 

또 다른 학생은 “지역민이 걸어놓은 학교 폐쇄 반대 현수막도 보기 싫다”며 “지난 10년 간 방치하다가 (교과부가) 폐쇄하겠다고 나서니 자기들 이권 때문에 우리 앞날은 아랑곳 않고 반대하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물론, 학교 정상화를 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 학생은 “학교가 쇄신을 위해 교칙을 바꾸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만큼 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복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학생들

 

학습권 보장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음에도 마음 한 켠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남의대를 둘러싼 각종 음모론, 매각설 등이 돌고 있었다.

 

서남학원의 설립자를 비호하는 거대 세력이 있다는 둥, 의대 설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정치세력이 서남의대 폐교를 돕고 있다는 둥의 이야기가 나왔다.

 

대기업에서 의대를 매각해 병원 설립까지 염두 했으나 설립자가 반대했다는 등 있을 법하지만 사실 확인이 필요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오후 수업 직전, 선배들의 동아리 홍보를 관심 있게 듣고 있는 신입생들

 

점심식사를 마치고 6교시 수업을 위해 학생들과 함께 강의실로 향했다. 마침 신입생을 선점하기 위한 선배들의 동아리 PR이 한창이었다. 각종 음모론에서 벗어난 평범한 일상으로의 귀환이다.

 

마지막 강의가 갑작스럽게 결강됐다. 이 소식을 들은 학생들은 의대생으로서의 첫 날을 무사히 마쳤다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의과대학을 나섰다.

 

이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일부는 기숙사로, 또 다른 일부는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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