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서남의대에 다니는 한 의사 아버지는 아들이 어떤 의사가 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환자에 대한 연민이 있는 똑똑한 의사가 됐으면 한다. 그래야 환자를 죽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서남의대가 이러한 의사를 키우기에 "해로운 환경"이라고 단언했다. 아버지 이전에 의사 선배로서 서남의대 교육 환경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12일 오후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서남의대 재학생 아들을 둔 의사 아버지를 만났다.[편집자주]
-아버지이자 의사로서 서남의대 사태를 바라보는 마음이 남다를텐데
"학부모 모임에 적극적인 분들을 보면 대부분 의사 부모들이다. 의사 자격증이 예전과 같이 신분적, 경제적 안정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의대 교육의 질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학교에 직접 가서 살펴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 받은 아들을 누가 전공의로 뽑아줄지 의문이다. 아들이 나중에 교수가 되든, 종합병원 의사가 되든, 개원의가 되든 과연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머리가 복잡하다."
-서남의대에서 교육받는 것에 대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의사가 되기 위해 받아야 할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점이다. 의사로서의 양심이 있다면 그 누구도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인턴, 레지던트도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 내 외할머니는 레지던트가 낸 의료사고로 돌아가셨다. 수술 후 너무 많은 수액을 공급한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의사가 된 후의 일이다. 만약 내가 의사가 아니었다면 의료사고인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전형적인 인재(人災)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은 매우 무거운 일이다. 그 레지던트는 이 일을 50~6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이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은 의사도 이러한 데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으면 어떻겠는가. 내 아들이 그 레지던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서남의대 사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측면은 무엇일까
"간단 명료하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의대는 이런 의사를 양성하는 곳이다. 과연 서남의대에서 양질의 의사를 배출할 수 있느냐를 논의의 중심에 둬야 한다. 서남의대 사태를 논의 할 때 지역 상권 및 정치 논리, 학력 세탁 의혹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정말 화가 났다. 각자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돼 생명의 가치나 의료 교육의 무게감을 잊은 것 같다. 상식적인 일을 비상식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이런 상항에 자괴감이 든다."
-서남의대 부실교육 논란은 10여년 꾸준히 제기됐다. 그럼에도 왜 자녀를 거기 진학시켰고 이제 와서 폐교를 주장하는 이유는
"입학 전 이렇게 교육이 부실 할줄 몰랐다. 사실 이러한 교육 환경이 알려진 것도 교육과학기술부가 감사를 한 후 확인된 것이 아니냐. 부실교육 논란은 꾸준히 있었지만 국가에서 인증한 학교인 만큼 어느 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의사로서 아들의 교육 환경 중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교수진이다. 일단 교수들이 너무 적다. 현재 서남의대에 기초학 교수가 13명, 전공 교수가 25명이라고 알고 있다. 보통 내과만해도 11개 분과로 나눠져 있어 40명 정도의 교수가 필요하다. 의과대학의 꽃이라고 하는 해부학 하나만 보더라도 학생 50명이면 교수 3~4명이 필요하다. 교수 4명이 파트를 나눠서 해부 시범을 보여준 후 학생 4~5명이 조를 이뤄 실습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교수 한 명이 시범을 보이면 50명 모두가 제대로 볼 수나 있겠나. 비디오 시설이 잘 돼 있는 것도 아니다. 교수 25명이 학생 전체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현재 초빙 교수나 외래 강사가 정교수 대신 1학기 수업을 진행 중인데
“외래 교수나 시간 강사로 꾸려진 교수진이 과연 전임 교수만큼 학생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가질지 의문이다. 의사를 정의하는 가장 간단하고 정확한 논리가 바로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의대 교수님으로부터 배운다. 나 역시 그랬다. 당시 그 분야 최고의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게 ‘환자에 대한 연민을 가져라’다. 배울 때는 시시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을 배우며 의사로서의 인간됨이 길러졌다. 현재 서남의대 학생들이 지금의 교수진으로부터 이러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열악한 학교 시설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학부모들 대부분은 기숙사 등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것은 부가적인 것이다.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의료교육 시설이다. 기본적으로 도서관에 의학 관련 책이 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학교에 중앙도서관 자체가 없다. 병리학은 사람의 조직을 검사하는 것이다. 학생 한 명 당 현미경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약리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쥐 등을 대상으로 약물 실험을 할 수 있는 실험실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남의대에는 의대에 있어야 할 당연한 시설이 없다."
-전주예수병원과 협약을 맺고 임상실습을 진행 중인데
“전주예수병원이 서남의대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교육에 대한 로드맵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발표 된 적이 없다. 교육의 질도 의심스럽다. 감염예방과 등 일부 과는 아예 교수가 없고, 안과 교수는 1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인력으로 임상실습과 진료 등을 제대로 꾸려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 더욱 중요한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교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교수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위치에 있다. 전문의 자격을 가졌다고 해서 교수 역할을 맡기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전주예수병원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남의대 학생들 교육을 맡았다는 의미인지
"그렇다. 전주예수병원이 학생들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면 학생들을 교육하기 전에 강의실, 교수 등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병원에 무슨 과가 있고, 그 과에 어떤 의사가 속해 있는지 알려야 한다. 현재 전주예수병원 의사들의 학력, 전문의 자격 유무, 임상 경력 등의 자료가 없다. 검증 자료들을 먼저 공개해야 한다."
-학교나 일부 학생들이 원하는 서남의대 정상화는 어렵다고 보나
"학교 정상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학점·학위 취소가 걱정되는 재학·졸업생들, 부실교육에도 설립자 눈치만 봤던 교수들, 자신의 이익만 보는 지역 주민과 정치인들이다. 서남의대 학생들이 의사가 되어 사회로 나가면 의사인 내가 가장 무섭고 두렵다. 의학 교육의 중요성과 의료계 현실을 알기 때문이다. 의료의 무게감을 잘 알고 있는 대한의사협회, 의평원이 정상화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교수, 수련병원 등 의대로서 인증을 받은 후 다시 교육을 하면 모를까, 지금의 상황에서 학생 교육은 무리가 있다."
-아들이 어떤 의사가 되길 바라는가
"환자에 대한 연민을 가진 똑똑한 의사가 됐으면 한다. 불확실한 지식은 환자를 죽인다. 이런 면에서 서남의대는 부적합하다. 좋은 의사를 키우는 데 해로운 환경이다. 아버지 이전에 의사 선배로서 이 학교에서 교육 받고 의사가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우리 아들이 의대를 못 다닌다고 해도 폐교가 낫다는 생각이다. 적당히 타협해서 의사가 돼도 아들은 물론 사회에 좋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