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낸 의대인데…” “학생들이 무슨 죄라고…” “명백한 사기극에 당했다”
초여름 비가 추적추적 내린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 울분과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느덧 30명을 훌쩍 넘겼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정부청사 의경들이 예의주시했지만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다. 이들은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른채 해당 공무원에게 담담히 의견을 전달했다.
정부청사를 찾은 이들은 부실교육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관동대학교 의과대학 학부모들로, 며칠 전 입법예고된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교육부 항의 방문이 목적이었다.
일명 ‘관동의대법’으로 불리는 이 개정안은 의과대학 부실교육을 방지하기 위해 교육부가 추진한 것으로, 의대생 교육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학교에 대한 처벌 강화가 주내용이다.
즉, 부속병원이 없는 의과대학이 의대생 실습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1차적으로 입학정원 100% 모집정지, 2차 위반 시에는 학과를 폐지토록 했다.
의과대학 부실교육의 고리를 끊겠다는 취지의 이 법안에 학부모들은 왜 반발을 하는 것일까?
관동의대 학부모들은 이 법안이 겉으로는 부실 의과대학에 대한 처벌이 강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상세히 들여다 보면 되레 학교 측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실제 이 개정안에는 ‘부속병원을 직접 갖추지 못한 의과대학이 해당 기준을 충족하는 병원에 위탁 실습할 수 있는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를 위반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부속병원이 없더라도 수련기관으로 인정받은 병원에 위탁, 실습을 진행한다면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학부모들은 현재까지 부속병원을 마련하지 못해 부실교육 논란에 휩싸인 관동의대에게 이 법안은 면죄부나 다름없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이러한 개정안의 허점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학부모들이 직접 교육부를 찾은 것이다. 학부모들은 이날 교과부 측과 1시간 넘게 면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학부모들은 관동의대가 부속병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탁 실습에 대한 여지를 열어둬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명지학원과 관동대학교 측은 이 개정안을 빌미로 부속병원 확보에 나서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게 학부모들의 판단이다.
관동의대 학부모 모임의 한 관계자는 “이 법안이 진정 학교 측에 압박 수단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위탁 실습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명지학원과 관동대학교는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조속히 부속병원을 확보해야 하고, 이행에 자신이 없다면 폐과를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부모는 “그 동안 너무나 많이 속아왔다”며 “더 이상은 참고 이해할 수 없다. 학교는 부속병원과 폐과 중 양자 택일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학부모들은 차선책으로 위탁 실습을 인정하더라도 일정기준 이상의 기관으로 제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개정안대로라면 인턴 수련기관으로 인정받은 모든 병원에 위탁 실습이 가능하다. 현재 인턴 수련병원은 전국 202개에 달한다.
이들 병원 중에는 의대생 실습기관으로 부적합한 곳이 적잖은 만큼 20위권 내의 수련병원으로 위탁 실습 인정기관을 제한해야 한다는게 이들 학부모의 입장이다.
한 학부모는 “현재 관동의대 학생들의 임상실습이 이뤄지고 있는 광명성애병원도 교육환경이 너무 열악한 수준”이라며 “위탁 실습을 하더라도 교육의 질이 담보된 곳에서 하도록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