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부실 의과대학 양산을 막고 협력병원의 겸직교수 남발 등을 방지하고자 교육병원 지정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협력·교육병원 지정에 관한 평가인증을 통해 교육, 연구능력, 시설 등에 대한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임상의학교육과 전문의 질을 보장하기 위함이지만 민감도가 높아 접점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정책과제를 맡은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은 25일 의협 3층 회의실에서 ‘교육병원 지정에 관한 평가인증 기준 및 규정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의평원은 이번 연구를 통해 겸직교수 남발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협력·교육병원의 사회적 책무성을 높이면서 임상교원 직능을 강화하는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날 교육병원 평가인증 규정안 및 영역별 기준안에 대한 중간보고를 진행하고, 의견 수렴에 나섰다.
연구팀에서 제시한 규정안에 따르면 평가인증은 의학교육 평가인증 대학이 학생교육을 위해 위탁한 병원 혹은 수련병원 중 학생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병원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순천향의대 김영창 교수는 “어느 병원을 대상으로 평가를 할 것인가는 민감한 문제”라며 “앞으로는 대학병원이나 특수법인 병원 등 모든 대학이 기준 대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이해관계가 많아 실제 시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토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평가인증 유형은 인증(인증기간 4년), 불인증, 인증철회 등으로 구분되며 서면 및 방문평가 등 동료평가 방식을 띈다.
영역별 기준안에서는 학생교육병원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운영체계 △교육프로그램 △교육자원 △교수개발체계 △지역사회와 국제교류 등 5개 영역 총 28개 항목을 마련했다.
고려의대 박종훈 교수는 “이번 영역별 기준안은 현재 시행 중인 의과대학 인증평가의 병원 관련 평가 항목, 방대한 영역에서 교육병원 평가를 하고 있는 대만 사례, JCI의 교육병원 관련 기준을 참고해 우리 실정에 맞게 꾸려 봤다”고 전했다.
"또 다른 악용 소지 우려돼 방향 제시해야"
하지만 현재 의과대학·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각종 평가인증과 중복돼 이중 규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평가인증 목적이 애매모호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을지의대 유승민 교수는 “부속병원은 의과대학 행정체제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의과대학 인증을 받았는데 다시 체계를 마련하라면 중복되는 부분이 생긴다. 또 똑같은 팀이 비슷한 평가를 다시 받아야 할 수도 있어 고민스럽다”고 피력했다.
서울의대 이윤성 교수도 “부속병원 혹은 적어도 한 개의 주 병원은 의대 인증평가를 받도록 하고 추가로 교육병원 지정을 받고자 할 때는 요청을 통해 하는 식이나 아예 의대 인증평가에서 교육병원 내용을 빼서 비슷한 내용으로 두 번 평가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교육병원 평가인증의 목적을 보다 구체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주의대 임기영 교수는 “가톨릭대처럼 대학 소유 부속병원이 늘어나면서 전임교수 수가 증가한 경우가 있다. 이중 일부는 현행법상 문제없는 대학(부속)병원임에도 실습을 나오지 않아 학생 교육 경험이 없는 곳도 있다. 또 인제대나 을지대처럼 병원은 많은데 의료법인 소속 의료기관이어서 전임교수 불인정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처럼 의료법인도 아니고 공익법인 병원 등의 전혀 새로운 체제가 생겨났으며,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관동·서남의대처럼 부속병원도, 재단 소유 병원도 없어 교수가 없는 곳에 수련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각인시켰다.
이에 따라 평가인증을 통해 국내 교육병원이 어떠한 모습의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다.
임 교수는 “교육병원 지정이 어떠한 모습을 갖춰가기 위한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없다면 의도와 다르게 악용될 소지가 생길 수 있으며,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번 기준안은 공청회를 비롯 전문가 의견 청취 후 수정보완 과정을 거치며, 최종보고서는 2월 말 정도에 제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