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 의료정책에 병원계 불만 넘어 '탄식'
정부 추진 의료규제 완화·투자활성화 등 '산 넘어 산'
2014.07.10 18:08 댓글쓰기

[기획 下]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의료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래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으로 지목한 것은 물론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도 반복했다.


실제 의료를 5대 유망 서비스산업에 포함시켜 관련부처 합동 TFT를 만들기로 했고,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겠다고 확언했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다짐은 지난해 12월 내놓은 투자활성화 대책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정부는 부대사업 목적의 의료기관 자법인 설립을 허용키로 했다. 현재 산후조리원, 장례식장 정도였던 부대사업 범위를 대폭 확대해 준다는 취지다.


의료법인 간 M&A도 허용하고, 현행 5% 미만으로 묶여있던 외국인 환자 병상기준을 12%로 두 배 이상 늘려 외국인 환자 유치를 독려키로 했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지난 6월 10일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를 위해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당초 예고했던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논란이 많았던 병원 내 의원 개설이 빠지고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메디텔 설립이 새롭게 포함됐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꽁꽁 닫혀 있던 빗장이 풀린 모양새다. 정부 역시 투자활성화 대책이 시행되면 일선 의료기관들의 경영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작 투자활성화 대책의 수혜 대상자인 의료기관들은 그다지 달가운 눈치가 아니다. 의료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기대와 의료기관들의 체감도 차이는 확연하다.


우선 의료기관들은 정부가 내놓은 선물이 지나치게 이상만 지향한다는 불만이다.


실제 메디텔의 경우 성실공익법인으로 자격을 제한했는데, 아직까지 의료법인 중 성실공익법인 인정을 받은 곳은 전무한 상황이다.


복지부 역시 현 의료법인 중 성실공익법인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곳을 3~4개 정도로 추산했다. 결국 극소수 병원만 메디텔 설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일선 병원들은 당장 직원 월급 주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정부의 이상 놀음에 맞장구 쳐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경영지표를 좌우하는 수가가 현실화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리 규제를 완화해 봐야 소용이 없다며 긴 한숨만 내쉬고 있다. 여기에 영상수가 인하를 비롯해 포괄수가제, 4대 중증질환 급여화, 3대 비급여 개선 등 의료기관들의 숨통을 조이는 정책이 잇따르고 있어 ‘이율배반’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대한병원협회 정영호 정책위원장은 “의료산업 육성 정책의 이면에 각종 경영압박책이 쏟아지고 있다”며 “신성장 동력은 고사하고 당장 생존을 고민하고 있는게 병원들의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실질적 수가인상 없어 병원계 경영난 가중


실제 의료계는 현재 비상이 걸렸다. 중소병원은 물론 대학병원들까지 휘청거리고 있다. 정부의 저수가 정책이 심화되고, 여기에 환자까지 줄면서 경영전선에 빨간불이 켜진지 오래다.


병원계의 위기론은 각종 지표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조사한 ‘2012~2013년 병원경영현황’에 따르면 병원계의 경영수지는 점점 악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병원급 의료기관의 의료수입은 지난해 2분기 대비 3분기에 -16%까지 하락했다. 4분기 들어 약간의 상승세를 보이며 전체평균 -3.9%의 감소를 나타냈다.


종합병원 역시 2분기 대비 4분기에 약 -4.6%까지 하락했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에 비해서도 1억원 넘게 줄어든 수치다.


진료비 감소세도 두드러졌다. ‘2012 건강보험 주요통계’에 따르면 빅5 병원 급여비는 입원환자 기준으로 2011년 1조3721억원에서 2012년 1조3375억원으로 346억원이 줄었다.


중소병원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수년 째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도미노 파산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 2011년 4.4%에 불과했던 병원 폐업률은 1년 만에 8.4%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병상 규모별로 살펴보면 100병상 미만이 11.9%로 가장 높았고, 200병상 이하가 6.4%, 300병상 이하 4.3%, 300병상 이상 1.2%로,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일수록 폐업률이 높았다.


해가 다르게 폐업률이 증가하고 있지만 회생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실제 2011년 병원급 의료기관들은 760억원의 의료이익을 냈지만 2012년부터는 203억원 손실로 돌아섰다.


2010년 10.9%에 달했던 의료이용 증가율 역시 2011년 6.0%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데 이어 2012년에는 3.5%로 반토막이 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극단적 선택을 하는 중소병원 원장들이 속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3명의 원장이 경영난을 못이겨 자살을 시도했고, 이 중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한중소병원협회 백성길 前 회장은 “정부는 병원들의 경영난 호소를 단순한 엄살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도대체 몇 명이 더 죽어나가야 병원들의 고충을 알아줄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행위 정당 보상 없는 의료산업 육성의 ‘함정’


사실 ‘의료산업 육성’을 외친 것은 비단 박근혜 정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도 의료의 고부가가치에 주목, 각종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실제 2006년 12월 참여정부가 발표한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 대책’에도 의료산업 활성화 방안이 포함돼 있었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병원 경영 지원 회사(MSO)를 통해 산업화 가능성을 전망했다.


즉 MSO가 외부 자본 유치 후 병원 시설 임대, 경영 위탁 등을 통해 외부 자본의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 시킬 것이란 분석이었다.


여기에 MSO는 의료기관에 대한 수수료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내놨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반대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했다. 비영리 병원의 부대사업을 전면적으로 확대하고 영리 자회사와 병원 간 인수합병을 허용하자는 주장은 이명박 정부들어 ‘법 개정안 발의’로 현실화 됐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2월 13일 발표한 ‘투자 활성화 대책’은 이명박 정부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추진했던 의료법 개정안과 흡사하다.


이명박 정부는 병원도 외부 투자를 받고 수익을 나눌 수 있도록 한 ‘의료 채권법’과 원격의료를 도입하고 병원 부대사업을 확대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 역시 저항에 밀려 실패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각 정권 마다 ‘의료산업화’에 대한 언급과 논쟁이 되풀이 됐지만 정작 먹고살기 힘든 의료기관들은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의료산업화’를 둘러싼 민영화나 영리화 논란도 정치권, 시민단체들의 다툼이었지 당사자인 의료기관들은 끼어들 여지도, 관심도, 기력도 없었다.


의료계 한 원로는 “의료는 공공재적 성격 탓에 정쟁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며 “의료계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규제완화도, 투자활성화도 아닌 의료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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