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대형병원들의 효자 진료과였던 소화기내과가 선택진료 개편 이후 달라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입지 위축에 이어 일각에서는 ‘붕괴’ 우려까지 제기되는 모습이다.
핵심 영역이었던 내시경 시술이 선택진료 개편으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일부 시술의 경우 시행하면 할수록 손해가 발생하는 구조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내과 전문의들은 현실적이지 못한 급여기준과 일방적인 심사삭감으로 인해 기본적인 진료행위마저 발목 잡힌다고 토로한다.
또 해마다 이슈가 되는 전공의들의 내과 기피현상 역시 저수가 문제와는 떼어놓고 보기가 힘든 상황이 됐다.
소화기내과 의사들은 해결이 시급한 급여 시안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내시경 수가 △ 소독 수가 △내시경 시술 및 부속기구의 급여기준 문제점이다.
빠듯한 내시경 수가···연말 수면내시경도 급여화
우리나라 행위별 수가제 상에서는 의료 수가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특히 내시경 관련 수가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실제 상부위장관내시경검사의 현행 수가가 4만4392원으로 가격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책정된 가격도 속내를 알고 보면 빠듯하다.
여기에는 내시경에 사용되는 목마취제를 비롯한 주사기, 휴지 등의 각종 재료와 함께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인건비 및 추후 의료분쟁 해결 비용까지 합쳐졌기 때문이다.
2014년 의원급 기준 원가는 인건비 4만7000원, 재료비 3만3745원으로 총 8만745원으로 계산됐다. 타과의 검진 비용과 비교해 보면 차이는 두드러진다.
실례로 병리과의 병리조직검사 비용은 조각 개수별로 금액이 가산되고 특수염색이 추가되면 비용이 15만원에서 25만원까지 더해진다.
하지만 내시경 시술료 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1개의 조직 채취나 10개 조직 채취 모두 동일한 8620원이 책정된 것이다.
소화기내시경학회에선 1회 내시경 시술에 투입되는 원가를 산정해보면 감가삼각비 및 보수료, 소모품 등에 3만3745원이 들어가고, 의사 1인과 간호사 1인 등의 인건비에만 약 4만7000원을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시설관리비나 부대비용, 기술료를 제외해도 상부위장관내시경 한 건당 원가는 8만7450원 정도 요구되는데, 현행 내시경 수가는 이에 절반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여기에 수면내시경 급여화는 소화기내과를 더욱 힘들게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반 검진은 비급여로 남겨둔 채 ESD 시술 등을 위한 수면내시경은 급여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복지부는 오는 10월 급여화를 목표로 지난 3월 첫 논의를 시작했다. 7월 첫째주 5차 회의를 거쳐 빠르면 7월 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김용태 이사장[사진]은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수면내시경 급여화는 반대할 명분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다만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치료재료 및 내시경 세척에 대한 별도 수가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시경 클립’ 등 치료재료 급여화 가능성?
2시간 전 한사발 정도의 선홍색 피를 토하며 응급실에 온 22세 남성. 소화기내과 전임의 1인, 소화기내과 교수 1인, 내시경실 간호사 2인의 보조로 상부위장관내시경 지혈술을 시행. 에피네플린을 위궤양의 출혈부위에 주사했음에도 출혈 지속. 내시경 클립 5개를 이용해 지혈 성공.
피를 토하는 응급 환자의 출혈을 멈추게 한 후 병원은 상부내시경출혈지혈술 명목으로 14만원의 수가를 인정받았다.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은 20~30%의 가산을 적용해 최대 18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환자를 살리는데 실제로 지출된 비용은 얼마일까.
일단 에피네플린 투여를 위해 일회용 내시경 주사기(6만원)를 사용했고, 출혈이 멈추지 않아 일회용 내시경 클립 5개(개당 2만원)를 환자의 몸에 넣었다.
의사 및 간호사 인건비 이외 부수적인 치료재료에 대한 비용은 배제하고도 16만원을 지출했다. 해당 병원은 14만원 이외 나머지 비용을 병원에서 충당해서 환자를 살린 셈이다.
올해 소화기연관학회 춘계학술대회 소화기 관련 보험정책 토론에서 소개된 사례다.
충북대병원 한정호 교수(소화기내과)는 이날 주제 발표를 통해 치료재료인 내시경 클립의 급여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 교수는 “병원은 14만원의 수가를 받고 환자를 살렸지만 의사, 간호사 인건비는 고사하고 수억원의 내시경장비와 이때 사용한 일회용 기구에 대한 비용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회용 장비에 대한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하면 부당징수이고 정부에 청구하면 부당청구한 파렴치한 병원이 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대장용종 절제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용종 절제술 과정에서 천공이 발생했을 때 사용하는 내시경 클립 등 치료재료에 대한 비용 보상은 없다.
용종절제술 중 천공이 발생해 내시경 클립을 사용하더라도 비용은 병원이 전적으로 부담해야한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한 부작용을 지적하며 소화기 내시경 시술에 사용되는 치료재료에 대한 급여화를 촉구했다.
그는 “검사만 하고 큰 수술은 기피하는 현상이 치료내시경 분야에서도 생기고 있다. 동네의원은 작은 용종은 제거하지만 리스크가 있는 용종은 상급병원으로 전원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재 학회 차원에선 소화관 출혈의 예방 및 지혈에 사용되는 헤모클립에 대한 보상을 심평원에 요청했지만 검토할 예정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학회는 올해 합리적 보상을 거듭 요구할 계획이다.
인정조차 되지 않는 내시경 소독수가
올해 하반기 위·대장 내시경 검사에 따른 의료보험 수가 조정을 앞두고 이를 담당하는 의사들 사이에선 ‘내시경 소독 수가 현실화’가 현안으로 급부상 하고 있다.
세척 및 소독 후 안전한 내시경기기로 검사하는 것은 당연한 필수 과정이지만 현재 건강보험에선 이에 대한 수가를 인정치 않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내시경기기 소독 비용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관련 학회들은 국내 한 대학병원의 사례를 수집,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가 마련한 지침에 따를 경우 소요되는 비용을 산정했다.
내시경 세척 및 소독의 총 소요기간은 40분 이상이다. 1분당 간호사 인건비를 244원으로 최소한으로 산정해 계산했을 경우 9760원이었다.
소독에 사용되는 소독액은 보통 1갤런 당 약 4만원에 구입하게 된다. 자동세척기에 소독액을 채우는데 약 3.5갤런이 필요하다.
약 25사이클을 돌린 후 소독액을 교체하므로 내시경을 1회 소독하는데 소요되는 소독액의 가격은 약 5600원이 발생한다.
자동세척소독기 가격은 2500~3500만원대 제품이 많다. 최근엔 100만원 내외의 제품도 시판된다. 고가의 제품은 많게는 10년 저가의 제품은 5년 정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병원의 상황이 달라 일률적으로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1일 10회 365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1회 소독당 342.5~958.9원의 감가상각이 발생한다.
전세척 및 세척에 필요한 세척액은 효소세척액이나 의료용 중성세척액을 사용하게 된다. 이 역시 1회 소독에 최소 224원이 소요된다.
이 외의 지대, 시설관리, 부대비용 등의 간접비는 비용 추정의 편의를 위해 배제하더라도 1회 내시경 시행시 소요되는 세척 및 소독 원가는 인건비, 소요재료, 내시경 보관장(감가상각), 자동세척소독기(감가상각)의 합인 최소 1만7860원이다.
지난 2006년 언론에서 문제제기를 한 후 내시경 소독이 국민들의 관심사가 된 이후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수차례 수가 산정에 대해 질의했다.
사안을 끌던 심평원은 결국 2014년 서울지역 한 대학병원의 현지 실사결과를 토대로 내시경소독 원가를 1회 기준 6400원으로 평가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내시경 소독수가를 학회에서 산출한 1만7860원이 아닌 심평원에서 제시한 6400원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관행수가여서 100%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2차 상대가치점수개편 과정에서 논의되는 소독수가는 6400원의 30%인 1900원대로 잠정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범 위장내시경학회장은 “감염사고 위험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 내시경을 제대로 소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소독수가와는 별도로 소독액은 정부가 정책 급여로 원가만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태 대한소화기내시경학회 이사장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내시경을 국민들이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의사들의 희생이 강요됐지만 더 이상은 힘들다. 현재 내시경 비용은 세계에서 제일 저렴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국민건강보험 상대가치점수 체계에서 내시경 소독수가를 반영할 수 없다면 새로운 수가를 신설하거나 국민 안전을 위한 별도 재원을 확보, 보상 형식을 취해서라도 세척 및 소독 비용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