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往診) 부활…의료 新패러다임 '재택의료'
"전문의료진 확보·적정보상·시스템 구축 등 풀어야할 과제 산적"
2023.04.06 12:34 댓글쓰기




‘병원’이라는 공간에 국한됐던 의료가 이제 퇴원 이후까지 책임지는 개념으로 패러다임 변화를 시작했다. 그동안 의료전달체계는 동네의원에서 시작해 상급종합병원에 이르는 단계별 의료기관 이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이제 퇴원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재택의료는 ‘4차 의료전달체계 영역’으로 간주된다. 실제 제도권에서는 △암환자 △재활환자 △결핵환자 △중증소아 △복막투석환자 △1형 당뇨병 환자 재택의료 등 13개가 넘는 재택의료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특히 정부의 커뮤니티케어 정책에 편승한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재택의료 서비스 제공에 나서는 등 ‘재택’을 향하고 있는 제도권 의료정책 패러다임 변화는 상당히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치솟는 노인 진료비…건강보험 재정 위협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20년 815만명, 2024년 1000만명, 2049년 1901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구성비율 역시 2020년 15.7%에서 2025년 20%, 2035년 30%를 넘어서고 2050년에는 40%를 초과할 것이라는 추계다.


고령인구 증가는 필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지출 증가로 이어진다. 실제 65세 이상 노인 건강보험 진료비가 4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전체 진료비의 43.4%를 차지하는 수치다.


2017년 28조3247억원이던 노인 진료비는 2020년 37조6135억원, 2021년에는 41조3829억원으로 급증세다. 4년사이 무려 1.5배 증가했다.


특히 노인 1인당 진료비는 전체 평균보다 2.7배 높은 수준이다. 1인당 연평균 진료비는 전체 연령대에서 186만원이었는데, 노인만 따지면 509만원이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노인 진료비 탓에 건강보험 재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023년 건강보험 수지는 1조4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여기에 감사원은 “건강보험 적립금이 2029년 모두 소진돼 2040년 예상 누적적자가 680조원에 달할 것”이라며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경고했다.


이 때문에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억제하고 의료를 단지 사망률이나 급성기 치료에 국한한 분절적 관점이 아닌 돌봄과 함께 전(全) 생애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의 접근이 부상하고 있다.


급성질환 중심 의료체계를 유지할 경우 노인인구 의료이용 폭증이 불가피한 만큼 모든 자원을 노인인구 뒷바라지에 쏟아 부여야 한다는 우려에 기인한다.


일명 왕진(往診)으로 불리는 ‘재택의료’는 작금의 상황을 가장 효과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재택의료를 통해 환자 만족도를 높이고 의료취약계층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 국민들 건강복지도 제고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세계적 흐름 ‘재택의료’, 후발주자 한국


사실 재택의료는 이미 세계적인 흐름으로 빠르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각 나라들이 인구 고령화에 대비, 의료진이 직접 환자 집을 방문해 진료하는 형태로 의료서비스 공급 방식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메디케어 대상자가 재택의료지원소(Home Health Agency)라는 방문전담기관을 통해 재택의료 및 돌봄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방문시간과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사 왕진 서비스’를 지원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싱가포르는 중앙조직인 통합치료관리국 중재를 통해 지역사회의 재택의료 전담기관으로 의뢰, 회송해 그곳에서 재택의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일본도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의료기관에서 재택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진료, 간호, 재활, 복약상담, 영양상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야간이나 휴일에 왕진이 필요한 경우 스마트폰으로 의사를 호출할 수도 있다.


특히 일본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어플리케이션과 연동된 혈압계, 체온계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처방 및 처방약을 배송하는 스마트진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기시간 절약 및 통원 부담 경감, 치료 유지율 향상, 환자 만족도 제고 등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우리나라도 늦게나마 재택의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통해 질병이나 부상으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경우 의료진이 직접 방문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다양한 형태의 재택의료 시범사업들이 추진됐다. 가정간호 방문서비스를 시작으로 가정형 호스피스, 장애인 주치의, 중증소아환자, 분만취약지 임신부 대상 재택의료가 시행 중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퉈 재택의료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의사, 간호사, 영양사, 운동지도사 등 건강 돌봄 팀이 환자를 직접 찾아가 건강을 돌봐주는 방식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앙정부가 요양병원, 요양시설, 지역사회 노인 돌봄서비스를 통합해 대상자를 결정하는 의료·요양·돌봄 통합판정체계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재활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택의료 시범사업도 본격 시행하는 등 대상도 점차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금년 4월 대한재택의료학회 출범 예정


최근에는 국내 재택의료 길라잡이를 자청한 학회도 출범을 예고했다. 대한재택의료학회는 오는 4월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노인 의료비에 대한 사회적 부담 완화와 취약계층 의료 접근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재택의료’가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적잖다.


전문가들은 “시대적 요구에 편승한 단편적 접근이 아닌 정교한 설계를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실질적인 재택의료를 수행할 의료인력, 비용지불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수요과 공급의 균형추가 맞게 설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재택의료 주요 운영기관인 일차의료기관은 의사 1인에 의한 단독개원인 경우가 절대적인 만큼 내원환자 진료와 함께 재택의료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때문에 팀단위 진료가 불가능한 개원가의 구조적 한계를 감안해 거점병원 재택의료센터 등을 신설해 의원급 의료기관들의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과 인력 등 인프라의 수도권 편중현상 역시 재택의료 활성화의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지방의 경우 의료진 부족으로 재택의료 방문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거리상 접근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


보상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현재 시행 중인 재택의료 시범사업 수가는 10~15만원 정도로 책정돼 있다.


획일적 수가가 적용되다 보니 의료계에서는 벌써부터 적정보상 필요성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진료 소요시간, 이동거리, 야간·휴일 등에 대한 가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재택의료는 포괄적이고 연속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단편적으로 방문진료 수가만을 인정하는 현행 방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총진료비의 30%를 부담토록 하는 환자 본인부담률 완화도 풀어야할 과제다. 취약계층의 경우 그 마저도 재택의료 접근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한재택의료학회 박건우 이사장은 “급속한 고령화 속에 재택의료가 노인 돌봄의 필수적 서비스로 대두되고 있지만 이를 활성화 하기 위한 제도와 인프라는 미흡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재된 재택의료 제공 주체들을 아우르는 정교한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며 “인력, 보상, 시스템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묘책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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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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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긴다 04.06 17:09
    수술할 의사도 없는 왕진 같은 소리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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