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환자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치료받은 환자 중 타지역 거주자는 약 42%에 달했다.
이에 대한 원인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왜곡된 의료전달체계와 대형병원 선호 현상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대형병원 선호는 의료적 필요보다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내 의료전달체계가 그 욕구를 억누르기 힘든 구조를 지녔다고 분석됐다.
서울대 의대 보건정책관리학과 연구팀은 국내 15세 이상 1만3456명을 대상으로 동네의원과 병원 선호도와 그 이유를 설문조사, ‘대한의학회지’에 최근 그 결과를 게재했다.
설문에서는 참가자들 만성질환 수, 건강상태와 함께 최근 1년간 방문한 의원, 병원, 한의원, 치과 등 의료기관 종류를 조사했다. 또 해당 의료기관을 선택한 이유로 친절, 첨단기술 및 장비, 평판, 지인의 추천, 비용 등을 객관식 형태로 제시하고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전체 설문 참여자 중 최근 1년 안에 의료기관을 방문한 7782명이 가장 많이 방문한 의료기관은 병원(대형병원 포함)이었다. 다음으로 의원, 한의원, 치과 순이었다.
고령층이거나 만성질환자 또는 건강상태가 안 좋은 경우 병원을 선호했고, 교육수준과 소득이 높을수록 의원을 선택한 비율이 높은 특징이 있었다.
의원을 방문한 가장 큰 이유로는 접근성과 의료진 친절이 꼽혔다. 구체적으로는 환자 질문 및 고민을 터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의사가 형성해주거나, 간호사가 진료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경우를 들 수 있다.
반면 병원을 찾은 것은 첨단기술 및 장비, 평판이 중요했다. 병원을 선호한 사람들은 의료기관 시설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강했다.
연구팀은 “환자들이 감정적인 속성보다 의료 질을 우선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원보다 병원을 선호한 이번 조사 결과는 환자의 본질적인 욕구를 정확히 반영한 셈”이라고 말했다.
"병원 접근이 쉽고 비용이 낮은 상황에서 환자들 욕구 통제하기 어렵다"
또 설문에서는 의원을 선호한 집단은 현재 의료체계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는 경향이 강했으나, 병원을 선호한 집단은 현 의료체계에 높은 만족감을 보였다.
이에 연구팀은 “병원을 선택한 환자들의 욕구가 상대적으로 잘 충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병원에 대한 접근이 쉽고 비용이 낮은 상황에서 환자들 욕구를 통제하기 어려울 것이며, 이는 대형병원 방문을 줄이려는 정책들이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런 병원 선호 현상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의료시스템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연구팀은 “일차진료에서 게이트키퍼 역할을 할 일반의가 부족하고, 병원 외래진료 비중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1~2021년 대형병원의 외래 건수는 76.4%, 외래 진료비는 18.9% 증가한 것과 대조적으로 의원 외래 건수는 8.2% 감소했고, 진료비는 2.8% 증가한 데 그쳤다.
연구팀은 “병원 선호 경향이 강해지며 의료비 지출이 급증하고, 의료인력과 시설 등을 과도하게 이용해 자원 낭비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병원 선호 현상은 개인 욕구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국민의 자발적인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은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