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수가 무려 1만2382개. 직원수는 2만5140명. 연간 입원환자 304만명‧외래환자 283만명. 일본 최대 병원그룹 IMS(이므스)를 대변하는 숫자의 위용이다.
5병상으로 시작한 지방도시의 작은 의원이 산하에 35개 병원 등 총 135개 기관을 거느린 초대형 병원그룹으로 성장한 그 기적같은 성공 비화가 국내 병원인들에게 최초로 공개됐다.
양국의 의료제도와 환경의 상이함을 차치하더라도 국내 병원 경영자들과 의료정책 입안자들에게 주는 울림이 적잖다는 평가다.
일본의 최대 종합의료‧복지그룹 IMS(이므스)를 이끌고 있는 나카무라 테츠야 회장은 최근 열린 2023년 한국만성기의료협회 송년 특별강연에서 IMS그룹의 70년 성장 비화를 소개했다.
IMS그룹의 모태는 1956년 일본 도쿄 이타바시에 문을 연 이타바시중앙의원이다. 테츠야 회장의 부친이 5병상에 9명의 직원과 함께 중소도시에 개원한 작은 의원급 의료기관이었다.
이타바시중앙의료원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첫날 환자는 16명이 전부였다. 조바심에 환자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도록 현관에 위장용 신발을 두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새로 부임하는 의료진으로 하여금 일부러 사람들에게 병원 이름을 물어보도록 당부하는 등 개원 초반 절절한 마케팅을 벌여야 했다.
부친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응급환자를 진료했고, 내원이 어려운 환자를 직접 찾아가는 왕진도 마다하지 않으며 지역의료를 수행했다.
차츰 지역사회에 인지도가 오르면서 외래환자도 하루 100명으로 늘었고, 2년 만에 40병상, 8년 후에는 146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주목할 부분은 부친의 혜안(慧眼)이었다. ‘병원경영’이란 개념도 생소하던 1960년대 초반 의료와 경영을 분리했고, 간호사 수급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간호사학교를 설립했다.
훗날 의료와 경영을 분리한 결단은 IMS그룹 탄생의 주춧돌이 됐고, 간호사학교는 안정적인 간호인력 수급의 원천으로 작용하며 그룹의 비약적 성장을 가능케 했다.
부친은 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학술활동을 독려하고 미국 등 의료 선진국으로의 연수도 아낌없이 지원했다.
또한 CT, MRI, 혈관촬영기 등 의료장비 고도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환자들에게 최상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역량과 검사장비가 필요하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기반이 탄탄해지면서 병원은 승승장구했다. 새로운 병원을 설립하고 경영난에 처한 병원들을 인수하면서 1989년까지 25개 병원, 총 5297병상을 보유한 병원그룹으로 성장했다.
5병상 작은 동네의원으로 출발, 1만2300병상 품다
직역별 전문성 강화‧의료장비 고도화
급성기‧회복기‧만성기 아우르는 지역의료 지향
장남인 나카무라 테츠야 회장은 1991년 경영권을 넘겨 받았다. 당시 나이 31세였다. 순환기내과 전문의인 그는 취임 후 IMS그룹의 고도화를 이끌었다.
규모는 물론 기능 확장성에 박차를 가했다. 병원수는 35개로 늘어났고,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요양, 복지시설 등을 설립하며 산하 150개 기관을 거느리는 최대 병원 그룹으로 거듭났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위기도 있었다. 한창 병상수를 늘려가는 시점에서 병원 증설을 제한하는 의료법 개정이 이뤄졌고, 일본의 부동산 버블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나카무라 회장은 직원들 시선에 맞춰 협조를 구했다. 각 직역별로 난국을 타개할 묘책을 도출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충언을 토대로 위기를 극복했다.
이후 의사 및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직 등 각 직역들이 단기, 중기, 장기계획을 수립해 변화무쌍한 제도 흐름에 순응토록 했다.
초반에는 10년 단위로 계획을 수립했지만 워낙 제도 변화가 급격한 탓에 기간을 5년, 또 3년으로 단축시켰다.
그 과정에서 나카무라 회장은 의료 패러다임이 급격히 초고령 사회에 맞춰 흐르고 있음을 간파하고 대응하기 시작했다.
의료와 돌봄을 아우르는 기능을 강화하고 지역의료와의 연계 시스템도 구축했다. 환자 상태에 따라 급성기, 회복기, 만성기 등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만성기 의료에 대한 확신도 맥(脈)을 같이 한다.
고령환자가 급성기 병원에서 아무리 치료를 잘 받아도 퇴원 이후 삶을 준비하지 않으면 일상 복귀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절감, 비슷한 문화권인 한국, 중국과 함께 아시아만성기협회를 설립했다.
나카무라 회장은 IMS그룹의 70년 성장사를 술회하면서 가장 중요한 성공비책으로 ‘적재(適材), 적소(適所), 적시(適時)’를 꼽았다.
그는 “병원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인재를, 꼭 필요한 곳에, 알맞은 시점에 배치하고 그들이 재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역으로 환자 입장에서는 좋은 의료와 돌봄이 가능한 병원과 시설에 가장 적합한 시점에 배치되도록 하는 노력이 IMS그룹 존재의 이유이자 변하지 않는 가치”라고 설파했다.
나카무라 회장은 끝으로 “한국 의료환경이 녹록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본 역시 의사 근무시간 개혁, 고령화 등으로 힘겨운 상황이지만 위기가 아닌 기회로 여기고 슬기롭게 헤쳐나가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