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 없는 보건소…농·어촌 의료 '역차별'
전공의 집단사직 파동 불똥 튄 격오지…도심 대학병원 파견 부작용
2024.05.09 18:19 댓글쓰기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발생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공중보건의사 차출이 계속되면서 정작 의료취약 지역 의료공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 건강권 사수’라는 명목으로 도심권 대학병원에 공보의를 파견함에 따라 정작 격오지 주민들은 의료 역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농·어촌 주민들은 “정부와 의료계 싸움에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여론의 시선이 집중돼 있는 대형병원 의료공백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과 의대교수들의 진료 축소로 의료공백에 발생하자 3월 11일부터 대도시 대학병원에 공보의 파견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전국 공보의 1367명 중 30.2%에 해당하는 413명이 상급종합병원으로 파견됐다. 전체 공보의 10명 중 3명은 차출된 셈이다.


충북 지역은 공보의 76명 중 32.9%에 해당하는 25명이 차출됐다. 전남 45명, 경북 44명, 경남 32명, 강원·충남 27명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 대형병원 진료현장으로 징집되고 있다.


적은 인구에 고령자가 대부분인 농·어촌 지역은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탓에 공보의 의존도가 높지만 공보의 차출로 사실상 기능을 멈춘 보건소나 보건지소가 부지기수인 상황이다.


더욱이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공보의 파견이 연장됐고, 추가 연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격오지 주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현재 충북은 증평 1명, 보은·제천에 각각 3명의 공보의가 남아 순환근무를 하고 있다. 전남 담양은 5명, 화순 7명, 구례 5명 등의 지역민 건강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의료공백이 생긴 지역은 인접 보건지소 공보의가 요일별 순회 진료를 오거나 원격진료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중증·응급환자의 진료 차질은 점점 심화되는 상황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공보의 휴가 제한 지침을 내리는 등 대형병원 파견에 따른 격오지 의료공백 최소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지자체 보건소 관계자는 “가뜩이나 공보의 부족으로 시름이 깊은 상황에서 이번 의료대란 사태에 차출까지 되면서 그야말로 격오지 의료는 빨간불이 켜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응급·중증환자를 먼저 돌봐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공감은 하지만 농·어촌 주민들의 불편과 우려는 도외시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대도시 대학병원 파견에 취약지 의료공백

10명 중 3명 차출…보건소 진료기능 멈춤

씨 마르는 공보의, 앞으로가 더 문제


사태 초반 국가의 부름에 순순히 응했던 공보의들도 파견근무 연장이 이뤄지면서 점점 불만이 쌓여가는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 10일 전공의 이탈에 따른 상급종합병원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파견한 공보의 근무기간을 1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복귀를 희망하는 공보의들을 복귀시키고 연장을 희망하는 인원 중심으로 연장근무에 나섰다고 설명했지만 공보의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이성환 회장은 “공보의 중 파견 연장을 원하지 않은 경우 최대한 반영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파견 연장을 거절했음에도 계속 근무하는 공보의들이 부지기수”라며 “협의회 조사결과 본인의 의사에 반해 파견 근무가 연장된 경우만 15명이 넘는다”고 덧붙였다.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로 어쩔 수 없이 연장에 들어간 경우도 적잖다. 파견근무 종료 후 복귀를 원했지만 연장근무를 거부할 경우 전혀 새로운 지역으로 배정될 수 있다는 우려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보의 수급 상황이다. 젊은의사들 사이에 공보의 인기가 수그러들면서 그 숫자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2000명대로 떨어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4월 기준 전체 공보의 수는 2865명이다.

 

2013년 3876명에 달했던 공보의는 2023년 3175명으로 감소했고, 올해는 3000명 선도 무너졌다.


특히 전체 의과 공보의는 2013년 2411명에서 2024년 1213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 상태로 가면 머지않아 공보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이유다.


실제 신규 편입되는 공보의 규모는 지난해 1106명에서 일년 새 390명(35.3%)이 급감했다. 이에 따라 전체 공보의 규모도 총 302명 감소할 예정이다. 


공보의 감소는 군 복무환경 개선과 복무기간 단축으로 젊은의사들 사이에 몇 해 전부터 현역병 입대를 선호하는 경향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역병 복무기간은 육군 기준으로 24개월에서 18개월로 꾸준히 줄어든 것에 반해 공보의는 37개월로 2배 이상벌어졌다.


‘20개월’이라는 시간을 군대 대신 펠로우, 대학원 또는 연구와 같이 다른 분야에 투자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입대를 앞당기려는 경향이 짙어지는 모습이다.


한국의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10월 의대생 18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37%만이 군의관 또는 공보의 복무를 희망했다.


군의관·공보의 지원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로 응답자 중 44%가 긴 복무기간을 들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가 최근 실시한 설문에서도 응답자 5016명 중 절반 가까운 2460명이 오는 8월 내에 현역병 입대를 신청할 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과도한 복무기간을 피해 18개월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의대생들이 늘고 있다”며 “격오지 의료공백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전반적으로 공보의가 감소 추세이고 새로 배치된 신규 인력도 대폭 줄어 지역의료에 상당한 부담이 예상된다”며 “앞으로도 수급 전망이 밝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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