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 없다·명단 비공개" 등 모르쇠···빈손 청문회
정부, 의대생 2000명 증원 결정 관련 배정委 회의록 '폐기' 번복 등 혼란
2024.08.17 05:49 댓글쓰기



[서동준‧이슬비 기자] "교육부까지 함께 하는 청문회라 기대가 많았는데 지난번 보건복지부 청문회 때 봤던 장면과 사실상 똑같은 기시감이 든다."


지난 16일 국회 연석 청문회가 열린 지 11시간이 넘어가던 시각, 이주영 보건복지위원회 위원(개혁신당)이 마지막 질의를 시작하며 이같이 청문회 소회를 밝혔다.


이주영 위원의 말처럼 이날 청문회에서도 정부는 제대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채 '노력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국회도 질타만 거듭했을 뿐 숨겨진 의대 증원 내막을 밝혀내지 못했고 여‧야‧정 간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


7개월여 의정 대립으로 대한민국 의료 축이 허물어져 가는 상황에서 두 개 상임위원회의 연석회의가 열려 큰 관심을 모았던 이번 청문회. 하지만 사실상 빈손으로 마무리돼 앞으로 해법의 단초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배정위원들에 대한 신의는 지키고 국민 신뢰는 잃은 교육부 


"저도 상당히 머리가 복잡하네요."


의대 정원 배정심사위원회(이하 배정위) 자료들의 행방을 쫓던 김영호 교육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탄식했다. 야당 의원들 추궁과 교육부의 번복되는 해명 속에 이날 핵심으로 떠오른 배정위 자료들은 청문회 내내 논란이 됐다.


결론부터 정리하자면, 회의 결과를 정리한 자료는 청문회 전에 제출됐다. 배정위 위원들 명단은 교육부가 비공개를 관철했고, 회의록은 애초 작성되지 않았다. 회의 당시 참고한 자료 일부가 청문회 진행 중에 제출됐다.


회의 결과 자료는 교육부가 법원에도 제출한 12페이지 요약본이다. 대학별 증원분 등 이미 공개된 내용들로, 야당 의원들은 배정위와 관련된 다른 자료를 요청했다.


야당 의원들이 강력히 요구했던 배정위 위원 명단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배정위 위원에 대한 정보는 개인정보이고, 또 배정 사항이 워낙 민감하기 때문에 배정위원들을 모셔 올 때 항상 개인정보는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며 "그런 신뢰에 따라 알려드리지 못하는 점은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야당 측 교육위 간사를 맡고 있는 문정복 위원(더불어민주당)은 "개인정보를 비식별 처리해서라도 달라고 했다. 교육부가 그것도 안 된다고 해서 그러면 의료계, 학계 등 분야별 인원수라도 달라고 했는데 그것마저 거절당했다"면서 "그 정도까지 양보했는데 정부가 명단을 안 주려고 그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 오전 청문회서 발언 잘못 인정 등 세차례 사과


청문회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회의록과 회의 당시 참고자료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청문회 오전 회의 중 "회의를 마치고 바로 회의록을 폐기했다"고 말했으나 오후 회의 때 다시 "회의록은 작성하지 않았다"며 "회의 때 참고했던 자료들을 폐기했다"고 말하며 혼동을 줬다.


더군다나 배정위 회의 당시 교육부가 배정위 위원들에게 제공했던 자료 일부는 뒤늦게 문서 파일로 보관한 것이 발견되며 청문회 후반부에 제출됐다.


오 차관은 오전 회의 중 발언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며, 청문회 중 세차례 사과를 했다.


결국 회의록은 애초에 작성되지 않은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교육부는 배정위가 공공기록물관리법상 회의록 의무 작성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청문회 중 제출된 자료에는 증원신청서 심사지표와 대학별 배정 범위 등이 기재됐으나 교육부는 언론 등에 자료를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주호 장관 "내년 의대 관련 예산, 기존 2배 상회"


교육부는 그간 의료계 안팎의 강한 요구에도 철저히 공개하지 않았던 내년도 의대 관련 예산을 일부 밝혔다. 이 예산은 의대 증원에 따른 시설, 교원 확보 등에 투입될 재원으로 실질적인 정부의 지원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주호 장관은 청문회에서 내년 교육부 의대 관련 예산은 기존의 2배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획재정부와 논의가 진행 중"이라면서도 "관행에 따르면 지금 논의하는 규모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구체적인 액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장관은 의대 증원에 따른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했으나, 실제 대학들이 원하는 만큼의 규모에는 이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고민정 교육위 위원(더불어민주당)이  내년도 의대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대학 30곳으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 대학은 교육부가 금년 4월에 실시한 수요조사에서 2030년까지 의대 교육여건 개선에 총 6조5966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써냈다.


박주민 복지위 위원(더불어민주당)이 "6조5000억원 예산을 책임질 수 있냐"고 묻자 이 장관은 "6조5000억원은 아니지만, 의대 선진화에 필요한 실수요를 파악해 그에 대해 충분히 투자하겠다"고 했다.


박 위원이 "너무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고 지적한 것에 이 장관은 "정부가 집중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말씀드린 것"이라고 답했다.

고창섭 충북대 총장(왼쪽)과 배장환 전 충북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


“없는 얘기 꺼내지 말라” VS “증거도 있다” 고창섭 총장-배장환 前 비대위원장 충돌 


49명에서 200명으로 32개 대학교 중 가장 많이 증원된 충북대학교에서 2명이 참고인으로 참석해 충돌을 빚기도 했다. 고창섭 충북대 총장과 배장환 前 충북의대·충북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두 사람은 의대 증원 수요조사 과정과 전임교원 확보 방안을 묻는 의원들 질의에 상이한 입장을 내놨다. 


문정복 위원은 “고창섭 총장께서 4월 某매체와 인터뷰에서 증원 신청 시 학장을 포함한 의대 교수들과 의논해서 진행했다고 했는데 사실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배장환 前 위원장은 “금년 2월 28일까지 의과대학 교수회장이었고 그 이후 의대 증원 사태가 터지면서 의과대학 교수의 잠을 놓고 비대위원장이 됐으니 사실 평교수 대표였다”며 “그러나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다”고 증언했다.


이어 “5월 셋째주 쯤 총장께서 의과대학에 오셔서 교수들을 만나 이야기했고, 증원에 반대하는 교수들 명단을 적어갔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고창섭 총장이 “없는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제지하자 배 위원장은 “증거도 보여드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두 사람은 전임교원 확보 방안을 두고도 입장차를 보였다. 정부가 “증원 후속 조치로 국립대 전임교원을 3년 간 1000명 늘리겠다”고 밝힌 데 대해 엇갈린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김준혁 교육위 위원(더불어민주당), 정성국 교육위 위원(국민의힘) 질의에 배 위원장은 “총장 발령으로 있던 기금교수를 전임교수로 직급 변경하는 것에 불과하다. 수가 느는 게 아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고 총장은 “우리 대학에는 기금교수가 17명 뿐이다. 최소한 150명 내외 증원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의대 교수 정원이 137명이고 명예퇴직가 2명, 의원면직 2~4명만 사직했다”고 설명했다. 


다시 배 위원장은 “전임교수 2명만 사직한다고 했지만 병원의 주축이 되고 교육을 담당하던 교수는 다 나가고 있다”며 “심장내과의 경우 10명 중 2명은 은퇴급에 가깝고 7명 중 3명이 사직했다. 있는 사람도 나갈 판에 새 사람이 들어오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대생 구제책 관련 질타···“의대 수업 모르냐·상식 무너져·조건부 구제” 


7개월 째 수업 거부 중인 의대생들 집단유급을 막기 위해 정부는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 ‘I학점 도입’ 등 각종 당근책을 내놓고 있다. ‘기다리겠다’는 방침으로 일관 중이지만 통상 8월 말인 등록금 납부 기간이 다가오자 2학기 수업도 파행 운영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의사 출신 이주영 복지위 위원(개혁신당)은 의대 수업 환경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정부의 학사 운영책이 얼마나 무리한 발상인지 지적했다. 


이 위원은 “시간표가 단순명료한 이유는 의대생들이 교실을 안 옮겨다니기 때문이다”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 교실에 있고, 대부분 2월 말 개강을 일찍하고 방학도 1년에 7~8주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 어떤가. 2월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했다”며 “다음주에 의대생이 모두 복귀한다고 가정하면 계절학기든 I학점이든 끼워넣으면 물리적으로 가능하냐”고 꼬집었다. 


또 “생리학과 병리학을 안배운 학생은 내과를 못 배운다. 단 한과목만 F가 나와도 의대는 1년을 유급한다”며 “의대 공부를 한번이라도 한 사람은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보는 순간 의대 쪽과 협의를 안했다는 걸 안다. 이러니까 의료계가 신뢰 안 한다”고 질책했다. 


이에 대해 이주호 장관은 “대학 측과 협의하며 만든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이다. 그러나 집단유급을 피하기 위한 임시책이고, 교육 질 저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학교 측과 협의 중이다”고 답변했다.


이어 “한 과목만 F점을 받아도 진급 못하는 것이 세계 표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의대 선진화를 하며 의대 교육과정도 조금 더 유연하게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가 내놓는 임시책이 상식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의대생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성적처리 기한 연장, 등록금 납부 기한 연장, 학년제 전환 등 기존에 없던 조치를 모두 꺼내놓고 있다. 


강경숙 교육위 위원(조국혁신당)은 “본래 대학등록금 규칙은 학생이 납부 연기 신청 후 부득이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2개월 내 등록금을 납부토록 한다“고 말했다. 


강 위원 조사 결과 충북대의 경우 2학기 등록금 납부 시한을 연말까지 미루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부산대·전남대·강원대 등 6곳도 1학기 성적 처리 기한을 내년 초로 미룰 계획이다. 


강 위원은 ”유급과 제적을 막기 위한 각종 조치를 냈는데 상식이 무너진 방법을 계속 취한다”며 “정말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보느냐. 장관께서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질타했다.  


정부 방침인 의대생 보호도 중요하지만 전체 학생 공정성에 비춰서 무조건적 유급 구제를 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지영 교육위 위원(국민의힘)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대안으로 유급을 구제하는데도 불구하고 똑같이 집단수업 거부 사태가 일어날 수도, 모두가 똑같이 구제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과생의 경우 교양수업도 있는데, 다른 학생들이 ‘의대생은 다른 방식으로 평가받고 구제될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며 “공정성을 염두에 두고 유급 구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주호 장관은 “지금은 의대생 한 명, 한 명이 돌아오도록 설득해야 하는 시기다. 의원님이 말씀하신 공정성 문제도 염두에 두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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