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외면 '암(癌) 다학제 평가지표'…의료진 불만
적정성 평가, 진료과정→환자·성적 중심 개편…"암 질환별 세부 설계 절실"
2023.10.05 12:33 댓글쓰기



[기획 上] 국내 암 치료 상향 평준화는 이미 상당수 전문가도 수긍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빅5 병원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대학병원 쏠림현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의료현장의 암 치료 역량 강화 추세와 달리 국민 인식과 차이가 존재하는 탓이다. 특히 수술과 치료 수준이 생명에 직결되는 ‘암(癌)’은 이러한 현상이 가장 심각한 영역이다. 치료 전반에 고도의 의료 수준을 요구함에 따라 암 환자 누구라도 국내 최고 의료진에게 수술받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보건당국은 수도권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지난 2021년부터 암 질환 적정성 평가를 도입했다. 막연한 수도권 대학병원의 치료 맹신과 무분별한 원정진료를 막기 위함이었다. 즉, 수도권과 지방 간 동등한 지표로 암 치료 성적을 비교 및 분석해 선택의 폭을 넓혀 주겠다는 의도다. 물론 평가제도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인정한다. 그러나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진료현장에서 새로운 문제를 초래해 지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암 치료 이상향으로 주목받고 있는 ‘다학제 진료’에 대한 불만이 가장 비등한 상황이다. [편집자주]


“환자들이 다학제 진료를 통해 좋은 치료를 받고, 이를 선별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조금 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해 보입니다.”


데일리메디가 올 상반기 개최한 ‘빅5 암병원장 좌담회’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암 질환 적정성 평가에 대한 쓴소리가 적잖게 쏟아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22년 하반기부터 대장암·위암·폐암에 대한 2주기 암 질환 적정성 평가지표를 치료과정 중심에서 환자·성과 중심으로 개편했다.


그동안 암 적정성 평가는 환자 치료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달성이 쉬운 탓에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수술이 어려운 전이암 등은 평가하지 않아 사각지대가 존재해 왔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심평원은 암 적정성 평가를 환자·성과 중심으로 개편했다. 


우선 수술 전 정밀검사 시행률, 병리보고서 기록 충실률과 같은 진료 수행과정과 관련된 지표는 삭제하고 수술 사망률, 합병증 등 진료 수행 성과와 직접 연결되는 지표를 대폭 확대했다.


특히 새로운 평가지표로 ▲전문인력 구성 여부 ▲암환자 대상 다학제 진료 비율 ▲암 확진 후 30일 이내 수술받은 환자 비율 ▲수술환자 중 중증환자 비율 등을 신설했다.


심평원은 “암 치료법이 다양해지고 수술치료 이후 장기 생존자가 증가함에 따라 그간 의료환경 변화를 반영하고, 환자·성과중심 평가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의료현장과 동떨어진 평가지표로 '역효과'불필요한 진료 등 속출


하지만 암 적정성 평가 개편 이후 정작 진료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현장 실정을 외면한 평가지표로 인해 오히려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논란의 핵심이 된 영역은 바로 ‘다학제 진료’다. 다학제 진료란 환자 진단 및 치료에 관련된 3~9인의 분야별 전문의들이 한 팀을 이뤄 최선의 치료 방법을 찾아내는 진료시스템이다.


환자에 대해 다각적인 분야에서 진단과 치료 계획을 세울 수 있고 환자는 한 자리에서 치료에 대한 궁금증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다학제 진료로 암 치료 전반의 질(質)을 제고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모든 암 환자를 대상으로 다학제 진료를 유도하는 것은 진료를 왜곡할 수 있는 입장이다.


특히 다학제 진료가 필요없는 환자까지 대상을 확대한 탓에 치료 효율성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위암의 경우 진단 후 수술적 치료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지만, 다학제 진료가 평가지표에 포함되면서 불필요한 절차를 거치게 됐다.


A상급종합병원 암병원장은 “위암은 진단 후 수술을 할 수 있지만 모든 암에 다학제 진료를 해야 하는 건 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위암환자가 다학제 진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는 5% 내외다.


특히 다학제 진료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에게 여러 전문의가 적지 않은 시간을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다른 환자 치료기회를 박탈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대부분 암은 1기에서는 다학제 진료가 필요하지 않는다”며 “모든 암 환자에게 다학제 진료를 실시토록 설정한 평가지표는 문제가 있다”고 일침했다.


의료기관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평가지표도 문제로 거론된다.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열악한 중소병원에서 다학제 진료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지역 간 양극화 현상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암 확진 후 30일 이내 수술받은 환자 비율에 대한 평가지표 역시 불만이다. 심평원은 대장암 확진 후 수술까지 기간이 30일 이내인 환자 비율을 평가지표에 포함했다.


암 조기 진단 및 치료를 위해서라는 설명이지만 이 같은 지표는 진료현장을 왜곡한다는 지적이다. 


환자가 개인 사정으로 수술을 미룰 경우도 있고, 병원이 무리한 일정으로 수술을 진행하다 보면 환자 안전과 환자 결정권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B상급종합병원 암병원장은 “30일 내 수술을 못하면 점수가 낮아지는 탓에 신규 환자를 막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며 “현장을 외면한 평가지표로 환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암 적정성 평가로 진료현장이 왜곡되지 않도록 정교한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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