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실도 응급실처럼, 보상체계·근무환경 개편"
전문가들 해결책 제시···"모니터링 시스템 등 새 접근법 필요" 주장
2024.07.08 11:21 댓글쓰기



[구교윤·최진호 기자 下] 최근 '필수의료'가 대한민국 보건의료 대표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필수의료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만큼 원활한 운용이 이뤄져야 하지만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 및 불합리한 보상체계 등 고질적인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필수의료 중에서도 '분만'은 저출산 시대에 중요성은 커져가지만 의료진 기피현상이 심화되며 해법 찾기가 사실상 막막한 실정이다. 이에 데일리메디는 서울특별시병원회와 대한민국 산모들이 안심하고 출산할 수 있는 분만환경 조성을 위해 '분만 의료전달체계 모색'을 주제로 전문가 정책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분만 인프라 확충을 비롯해 효율적인 분만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됐다. 좌담회에서는 고도일 서울특별시병원회 회장이 좌장을 맡았고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 회장, 이재협 보라매병원 원장, 이정재 순천향대서울병원 원장, 오수영 대한산부인과학회 분만인프라TF 위원장, 오상윤 예진산부인과 원장, 임강섭 보건복지부 지역의료정책과장이 참석했다.


Q. 국내 분만 의료전달체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 회장

무엇보다 상급종합병원이 고위험 산모만을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고위험 산모의 경우 3차 병원을 가야하는데 자리가 없다는 경우가 많다. 이는 1~2차 병원을 가야할 산모들이 3차 병원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이 고위험 산모만을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수가를 4배 이상 인상해야 한다. 그래야만 병원에서도 분만실과 병실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전공의들 역시 고위험 진료를 제대로 배워야하는데 일반 환자만 만나다 보니 소위 '뒤치다꺼리'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다 보니 4년을 배우고도 분만을 하지 못하는 생기는 것이다.


이정재 순천향대서울병원 원장

산모를 받을 수 있는 병원과 받지 못하는 병원을 분류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데 이러한 네트워크가 없는 게 문제다. 결국 지역에 있는 대부분 의원급 병원들은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 환자를 전원시키고 있다. 분만병원의 경우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 모니터링시스템과 같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산과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지원해 주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지금 의정 갈등으로 모든 게 멈춘 상태다.


오상윤 예진산부인과 원장

언제 응급이 될지 모르는 고위험 산모는 미리 3차 병원에 가는 게 중요하지만 상급종합병원에 인력이 많다는 이유로 고위험 산모를 모두 보낼 경우 의원, 2차 병원은 모두 환자를 놓을 수 밖에 없다. 1~2차 병원에서도 고위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곳이 많기에 분만 인프라가 열악한 만큼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정부에서는 지역 국·공립병원을 거점으로 분만 인프라를 유지하겠다는 정책을 추진 중인데, 그 방법도 옳지만은 않다. 국·공립병원으로 지원이 쏠릴 경우 그 지역 병원들은 문 닫을 수 밖에 없다. 통합적인 기구를 만들어 지역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한 쪽만 성장하고 한 쪽은 무너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임강섭 보건복지부 지역의료정책과 과장

산모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체계를 갖춰 언제 어떤 산모가 고위험으로 바뀔지 파악하는 네트워크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문제는 분만실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NICU(신생아집중치료실)에 문제, 마취과 문제 등 필수의료 전반적으로 협력체계를 갖추는 게 핵심이다. 이에 대한 평가도 진행해 적절한 보상을 주는 것도 재정당국과 논의 중이다.


왼쪽 위부터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 회장, 임강섭 복지부지역의료정책과 과장, 이정재 순천향대 서울병원 원장, 고도일 서울특별시병원회 회장, 이재협 보라매병원 원장, 오상윤 예진산부인과 원장, 오수영 대한산부인과학회 분만인프라TF 위원장


"분만의료 전달체계 확립 위해 정부 과감한 지원 절실"

"응급의료 벤치마킹, 분만의료 네트워크 구축 시급"

"분만실 유지비용 보상 등 지원체계 대대적 개편돼야"


Q. 분만의료 유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의료기관 종별로 역할을 달리하는 이상적인 전달체계는 어떻게 확립해야 하나?


신봉식 대한분만병의원협회 회장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이유 중 하나는 저수가다. 종별에 따른 수가가 차이가 없기에 산모들 입장에서도 내는 돈에 큰 차이가 없어 큰 병원을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산모가 큰 병원으로 가겠다며 의뢰서 요청하면 병원들도 어쩔 수 없이 써줄 수밖에 없다. 환자들이 막연히 큰 병원에 가야한다는 인식과 이를 부추기는 체계를 고쳐가야 한다.


임강섭 보건복지부 지역의료정책과 과장

산과 특수성 고려와 함께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다. 국민적 반발이 있겠지만  2차 병원에서 의사 의뢰서를 받아야만 3차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등 무분별한 3차 병원 이용을 억제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이정재 순천향대서울병원 원장

개인적으로 응급의료센터 모델을 분만실에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다. 분만실을 보면 응급실하고 상당히 유사하다. 단지 분만실은 임산부만 이용한다는 것 뿐이다. 특히 고위험 산모를 받는 수련병원에 지원하고 정부에서는 무조건 지원할 수 없으니 학회와 상의해 기준을 만들고 이를 충족했는지에 대한 평가도 시행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인력과 시설이 모두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고도일 서울특별시병원회 회장

국립의료원에서 병상 현황을 보여주는 것처럼 분만이 가능한 병원도 공유할 필요가 있다. 특히 환자가 있든 없든 분만실을 운영하면 응급실에 준하는 보상을 해야한다. 보상을 해주면 분만도 가치가 생길 것이다.


오수영 대한산부인과학회 분만 인프라TF 위원장

전반적인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시급하나 3차 병원에서 고위험 산모를 받지 못하는 경우는 저위험 산모를 많이 받아서 아니라 실제 인력이 없어서다. 인력 문제는 근본적으로 의료소송에 대한 부담을 해소해야 해결할 수 있다. 동시에 응급실 같은 근무체계로 일을 할 수 있다면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기에 분만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Q. 정부도 분만의료 위기 극복을 위해 지역수가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현장 체감도는 어떠한지?


※ 지난해 10월 26일 열린 21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의결된 분만수가 인상안에 따르면 특별‧광역시 등 대도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분만기관에 대해 ▲지역수가(55만원) 산정 ▲산부인과 전문의 상근 및 분만실을 보유한 의료기관에 안전정책수가(55만원) 신설 ▲고위험분만 가산 인상(자연분만 현행 30%에서 100~200% 인상) 및 고위험분만마취 정액수가911만원) 신설 ▲응급분만수가(55만원) 신설 등을 담고 있다.


이재협 보라매병원 원장

저는 정형외과 의사지만 산부인과 의사라 하더라도 현 상황에서 분만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병원 입장에서는 불합리적인 보상체계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등 여러 걸림돌이 있지만 이런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고위험 산모를 진료할 경우 기본적으로 산과가 필요하지만 배후 진료과도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환경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라매병원도 공공병원임에도 불구하고 분만 진료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여전히 취약하다. 환자 입장에서도 병원을 찾기 힘든 게 가장 큰 문제다. 고위험 산모인 경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신생아중환자실이 있는 병원에 가야하는데 이러한 정보가 환자 입장에선 전혀 정리되고 있지 않다. 


오수영 대한산부인과학회 분만 인프라TF 위원장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100% 책임지는 법안이 도입된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보상금이 3000만원으로 매우 적기에 실효성은 매우 떨어진다. 실제 의료소송 비용은 너무 크기에 크게 와닿지 않는 상황이다. 무과실 보상제도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상향해야 한다. 또 인력 지원이 시급하다. 고위험 환자를 보는 산과 전문의가 5~6명이 되면 1명이 일하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기 마련이다.


임강섭 보건복지부 지역의료정책과 과장

복지부에서 단편적,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타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산과의 경우 필수의료 중에서도 대표적인 분야라고 입장이고 특수성이 있는 만큼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보상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의료 행위마다 가격을 책정하는 행위별 수가제도를 채택 중인데 저출생 상황에서는 행위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행위별수가로는 보상할 수 없는 시설 및 장비, 당직 등 유지 비용은 사후 일괄보상 등 다양한 지원책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일부 의료기관에 우선 적용하면 역차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종별에 따른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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