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병원 떠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 호소
"소아과 오픈런 정부 방임이 초래, 최근 쏟아진 정책은 상황 모면용 땜질 처방"
2024.03.28 05:11 댓글쓰기



사진제공 연합뉴스

17개 병원에서 사직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들이 "의사들이 왜 사라졌는지 의문이 든다면 우리 이야기에 잠깐이라도 귀 기울여달라"며 호소했다.


이들은 지난 27일 호소문을 내고 "의·정 갈등 핵심 당사자들로서, 현장에 있는 의사로서 국민 여러분께 저희 실정과 문제점에 대해 용기를 내 말씀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호소문에는 강북삼성·건양대·고대구로·대구파티마·부산대·분당제생·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순천향대천안·아주대·양산부산대·울산대·원주세브란스기독·이대목동·전남대·전북대·한림대성심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수련받던 전공의들이 함께 했다.


"낙수과라는 오명과 실효성 없는 정책에 실낱같은 희망·자긍심 잃었다"


이들은 "소청과를 선택하기 전에 10년 이상 임상경력 전문의도 낮은 수가로 진료를 포기하고, 상급병원은 적자라는 이유로 전문의 고용을 늘리지 않는 현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럼에도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와의 눈맞춤,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가 회복해 짓는 미소, 매일 성장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보람 등 저울로 잴 수 없는 가치를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을 잘못 제시하고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전공의들은 "지난해 시작된 '소아과 오픈런'은 원가보다 낮은 수가와 환자 수 감소로 소청과들이 폐업하면서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며 "그동안 정부는 적극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소청과 전문의들 호소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2000명 의대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 패키지는 '낙수과'라는 오명과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실낱같은 희망과 자긍심마저 잃게 했다"고 한탄했다.


"증원보다 저평가된 수가 개선 및 소아 특수성 고려한 정책이 효율적인 문제 해결책"


이들은 "소청과 의사가 부족한 이유는 이미 배출된 전문의들이 소청과 진료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정책과 정부의 방임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성인과 달리 소아진료는 장시간과 많은 일력, 기술을 요하지만 현재의 수가체계는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반면, 나날이 증가하는 의료 소송으로 인해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진료를 하다 보니 대다수 소청과 전문의들이 다른 진료과를 선택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2000명의 의대생 중 일부가 소청과 전문의가 돼도 이후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정책"이라며 "2000명 중 극소수를 10년동안 기다리는 것보다 저평가된 수가의 개선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정책으로 숙련된 전문의 유입을 시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문제해결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또 "단순 수가 위주의 개선이 아닌 진료실과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 보전을 위한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대해서도 '고질적인 의료계의 문제들을 지속하는 패키지'라고 꼬집으며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에 대해 성숙한 협의 과정 없이 막대한 세금으로 1년 안에 해결하겠다는 것은 허황된 꿈이며 지금까지 반복된 실책의 연장"이라고 힐난했다.


"현 상황 모면 위한 땜질처방 아닌 필수의료 소생시킬 정책 논의해달라"


전공의들은 정부 소통 방식도 비난했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코자 했으나 정부는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저희들을 밥그릇을 뺏길까 두려워하는 집단으로, 환자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도 언론을 통해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기서 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소청과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임을 알고 있는 저희는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좌절감과 실망감으로 깊은 고민 끝에 사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후 발표된 소청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월 100만원의 보조금, 일시적인 수가 인상들을 포함해 매일 검증없이 쏟아내는 정책들은 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땜질 처방에 불가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2000명의 무리한 증원을 고집하는 것보다 증원 필요성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며 "더불어 동반해서 쏟아내는 단발성 정책이 아닌 소청과를 비롯해 붕괴를 앞둔 필수의료 과들의 특수성에 걸맞는 정책과 보상을 통해 필수의료를 소생시킬 정책을 논의해달라"고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저희 사직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을 아이들과 보호자분들게 믿음에 보답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교수님들과 전임의 선배님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들을 포함 병원의 모든 가족들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전한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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